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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 이런 일이
  •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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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재판이 있다. 어느 요양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 병원은 암환자들 중 거동이 불편한 환자는 병실에서 일반식으로 배식을 했다.

반면 거동이 가능한 환자는 식당에서 일반식 후에 과일 및 채소를 추가적으로 더 먹을 수 있도록 제공했다. 채소와 과일은 일종의 뷔페식사 비슷하게 운영한 것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 및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현지실사 후 요양병원이 "의료법 제36조와 의료법 시행규칙 제39조, 국민건강보험법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제5조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부당이득 환수처분과 과징금 부과처분을 내렸다.

부당이득 환수처분 대상은 3억 3662만원,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처분은 8억 4155만원이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에 따르면 공단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해 보험급여 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

이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은 1년의 범위에서 업무정지처분을 내릴 수 있고 이에 갈음하여 5배 이하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내릴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요양병원이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을 저질렀다고 봤다. 의료법령에 따르면 환자 음식은 '뚜껑이 있는 식기'에 넣어 공급해야 하는데 요양기관이 이를 위반했기 때문에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식대를 청구했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건강보험법령에 따르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일반식을 제공해야 하는데 과일과 채소를 추가로 제공한 것은 의사의 처방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식대를 청구했다는 것이다. 

이 요양병원은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히 돈을 주고 좋은 재료를 사서 영양사가 정성껏 식사를 만들고 의료법 관련 규정에 맞추어 '뚜껑'이 있는 식기에 넣어 식사를 제공했다. 더 한 게 있다면 과일과 채소를 추가적으로 더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이것도 돈이 들어가지만 환자들이 조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행위가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무려 12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요양병원에 부담시켰다. 

요양병원은 억울함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과일과 채소를 추가로 자율배식했다고 해서 의사 처방에 의한 식사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건보법이 정한 요양급여 기준에 미달하거나 초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고 요양병원의 손을 들어 줬다. 

법리적으로 이 소송에는 중요한 논점이 있다. 의료법 위반이 무조건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의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위 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요양병원은 환자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고 환자들은 그 식사를 잘 먹었다. 그런데 사소한 의료법 위반을 이유로 이미 환자들이 잘 먹은 밥값까지 병원이 다 부담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밥값의 3∼5배에 해당하는 과징금 부과처분까지. 이런 것을 법이라고 말해야 할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보건복지부는 비교적 경미한 의료법 위반도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의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간주해 전체 금액에 대한 환수처분을 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 2019년 네크워크 병원 부당이득 사건에서 법원은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의 입법 목적이 다르며 의료법 위반이 곧바로 국민건강보험법상 부당이득 환수처분의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늦었지만 타당한 판결이다. 

의료법령에는 수많은 의무 규정이 포함돼 있다. 중요한 의무 규정도 있고 조금은 사소한 의무 규정도 있다. 이를 구별하지 않고 무조건 관련 금액 전체를 국민건강보험법상 부당이득 환수처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위 요양병원 사건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항소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스로도 무리한 처분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부당이득 환수처분을 할 때 의료법 위반사항의 경중을 고려한 합리적 건강보험 행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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