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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29 (목)
의사들의 번아웃 - 의사도 아프고, 우울
의사들의 번아웃 - 의사도 아프고, 우울
  • 송성용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서울시 종로구·송신경정신과의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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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진료 '의사 환자' 단 한 명뿐…의사도 위로와 치료 필요
의사가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나 자신에 조금 더 귀 기울이길
송성용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서울시 송파구·송신경정신과의원)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서울시 송파구·송신경정신과의원) ⓒ의협신문
송성용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서울시 종로구·송신경정신과의원) ⓒ의협신문

의료정보 사이트인 'Medscape' 보고서와 국제 학술지 [Cureus]를 살펴보면 미국 의사 집단에서 자살 생각은 7.2%로 일반인의 4%보다 높다. 9%는 극단적 생각을 하고, 1%는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실정일까?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343명의 의사와 2만 4920명의 일반 직장인 정신건강 실태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20∼30대의 의사들에게서 번아웃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우울증 의심 군의 비율이 두드러지게 높았다고 한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영국·미국과 같이 보건인력에 대한 자살·상해·이별에 대한 지지프로그램이나 중독·정신질환·신체 질환·행동문제에 관해 지속적인 관리 서비스 제공 등 관심과 지원 방안을 제안하였다. 

그런데 그 감사한 제안에 덧붙인 의사들이 평생 들어온 문구가 여전히 따라붙었다. 

"의사의 정신건강은 의사 개인만이 아닌 국민의 건강과도 직결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 2월, 의료기관 업무연속성 계획(BCP)이 나왔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사회 필수기능 유지를 위해 의료기관에서 주의를 기울여 격리기간을 단축하고, 업무를 유지할 수 있게끔 한 제도다. 

이것만이 아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의료기관에 출근할 수 없는 의료진에게 집 또는 격리지에서 전화로 환자를 진료하고, 그것을 등록한 의료기관 이외의 장소에서 진료가 불법인 의료인에게 특별히 죄를 묻지 않겠다는 '특별한 예외 조항'을 허락해 주겠다는 제안도 있다. 

그리고 모 종합병원 간호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진의 출장이나 휴가는 미리 허가를 받아 더는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의료인의 책임을 끝까지 완수해 달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물론, 모든 것이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치료자의 숙명을 안고 있다. 치료자는 내 아픔보다 나를 찾아온 환자의 아픔을 우선하는 사명감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의사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적 생각 속에 산다. 

전공의 시절 감기라도 걸리고, 다리라도 삐끗하여 절게 되면 다들 "의사가 자기관리를 그렇게 못 하면 어떻게 하냐?"라는 핀잔을 받곤 했다.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출근하면 되는 것이었다. 개원하든, 병원에서 근무하든 의사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환자의 따뜻한 한마디를 들어본 경험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도 역시 "원장님이 건강하셔야 우리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라는 이야기가 따라온다. 

이렇게 환자를 위해 건강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는 의사는 정작 자신의 건강을 위해 의료기관을 찾는 일이 얼마나 쉬울까? 의사 대부분은 주중엔 내내 근무한다. 쉬는 시간엔 보통 다른 의사들도 쉬고 있다. 그래서 의료기관을 가기가 어렵다. 의사이므로 대부분 병을 이해하고 있어야 마땅하고, 자신의 증상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설명해야 한다. 처방 역시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동료 의사들에게 간단한 전화 한 통화로 최근에 많이 쓰는 약물에 관해 간단한 지식을 더해서 자가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다 잘 알아서라기보다 시간에 쫓기고, 자신에게 철저한 의사, 아픈 것이 왠지 잘못된 것이라는 강박에 창피함을 느껴서 그렇게들 하고 산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343명의 의사와 2만 4920명의 일반 직장인 정신건강 실태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20∼30대의 의사들에게서 번아웃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울증 의심 군 비율은 두드러지게 높았다. ⓒ의협신문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343명의 의사와 2만 4920명의 일반 직장인 정신건강 실태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20∼30대의 의사들에게서 번아웃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우울증 의심 군 비율은 두드러지게 높았다. [그래픽=pixabay] ⓒ의협신문

하지만 정신질환은 그렇게 쉽지 않다. 대부분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스스로 긍정적인 생각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 내가 가진 성격과 주어진 환경, 그리고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에 스스로 답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스스로 답을 찾아냈다면 아프지 않았을 테니까.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16년째 진료실을 지키고 있지만, 그동안 내가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 환자'는 단 한 명뿐이다. 물론 전화로 처방을 조언해준 의사는 많이 있다.

학창시절부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면서, 선생님과 가족으로부터 칭찬과 기대를 받고 자란다.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된 이후에 줄곧 환자 진료만을 하고 살아온 대부분의 의사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나는 만능이라는 자신감보다 부족해 보이지 않으려는 강박감이 더 크다. 

그러나 의사 생활을 하면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많은 사회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원하는 당연한 마음은 참된 의사를 포기한 속물근성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마음의 갈등은 점점 커진다. 

나약하면 안 되고,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불안과 우울감을 잊으려 하지만 사회보장제도인 의료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늘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며, 다시 지쳐 가길 반복한다. 

코로나19로 많은 희생자가 나오고 전 세계가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동료의 죽음을 겪고, 감염의 불안을 이겨가며 열심히 진료한 의사들의 감정은 아무도 신경 써 주지 못했고, 우리는 그것을 바라지도 못했다. 

어찌 보면 의사가 흔들리고, 의사가 정신적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곧 환자가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기에 아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가면 의사들은 다시 또 살아남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에 열심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위로해 줄 시간을 채 갖지 못한 채 다시 또 치료에 투입된다. 

2021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자살은 10∼39세 사망원인의 1위(43.7∼56.8%), 40∼59세에선 2위(10.1∼20.5%)를 차지했다. 그리고 60대에선 암·심질환·뇌혈관질환에 이어 4위(4.4%)다. 외인에 의한 사망률(사고사 등 질병 이외의 외부요인) 중 10세 이상 전 연령에서 가장 높은 것은 자살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연령표준화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평균(11.1명)의 두 배(23.6명)가 넘는다. OECD 전체 국가 중 두 나라만이 20명을 넘는다. 

이 통계를 보면서 필자도 그리고 대부분 국민도 이 수치 안에 의사가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의사는 그냥 그렇게 잘 지내고 있고, 돈 많이 벌고 있는 그런 다른 사람들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의사도 아프고, 의사의 마음도 아프고 때로는 많이 우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것이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의사가 아픈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 지인에게서 "골프가 왜 어려운지 아느냐?"란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다. 수 천 가지 이유가 떠올랐지만, 정답은 "원래 어려운 것인데 쉬운 줄 알아서"란다. 

많은 정신질환도 그렇다. 약만 먹는다고 회복되는 정형화된 질병이 아니다. 장기간 약물을 사용해도 쉽게 낫지 않는 이유는 환자를 둘러싼 수많은 요인 때문이다. 그 사람의 성격, 환경, 그 사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요인들. 그리고 치료를 받으면서 그런 것들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설득과 믿음을 형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생각이 생겨나는 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꼭 필요한 것이다. 동료 의사들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편하게 들락거릴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루종일 진료실에 파묻혀 지내온 의사들이 진료 이외에 조금 더 다른 세상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의업을 행하는 좋은 의도로 살지만, 그것은 인생의 한 부분일 뿐 우리가 가진 다른 역할들 가령 부모, 자식, 친구 그리고 소중한 개인 등 이 모든 다른 역할들이 당신이 쳐다봐 주길 기다리고 있다. 나 자신에 조금 더 귀 기울여 보길 당부한다.

의사의 마음도 아프고 때로는 많이 우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아픈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의협신문
의사의 마음도 아프고 때로는 많이 우울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환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아픈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픽=pixabay]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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