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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6-19 22:27 (수)
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 수상작 '거꾸로 숨바꼭질'

한국 의학도 수필공모전 수상작 '거꾸로 숨바꼭질'

  • 조한결 경희대학교 의학과 3학년 johangyuel1@khu.ac.kr
  • 승인 2022.1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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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주최·한국의사수필가협회 12회째 주관...은상(대한의학회장상)
후원 서울시의사회·대한개원의협의회·대한의학회·한국여자의사회·박언휘슈바이쳐나눔재단

"[거꾸로 숨바꼭질]은 어린 시절 친근한 놀이를 묵직한 암 환자에 접목하여 잔잔히 그려낸 솜씨가 돋보인다. 환자가 암 재발을 선고받는 진료실에서 같이 숨죽이며 인간의 감정을 느끼는 대목은 썩 인상적이다"(심사평 중에서) [사진=pixabay] ⓒ의협신문

어릴 적 동생들과 집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곤 했다. 나에겐 남동생이 3명 있는데, 너무 어려 게임에 서툴던 막내를 깍두기로 하더라도 적절히 번갈아가면서 술래를 하기 충분한 인원이었다. 넓지도 않은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니 매번 숨는 장소도 비슷하고 서로의 숨소리도 들릴 법했지만, 몰래 숨어 술래가 내 주위를 맴돌 때의 그 떨림과 발이 삐죽 나온 동생을 찾았을 때 서로 깔깔대며 웃는 것은 숨바꼭질이 처음이기라도 한듯 즐거웠다. 유독 숨바꼭질을 많이 한 것은, 발견되었다고 씩씩대는 일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끝나는 놀이여서였을까?

"안녕하셨어요?"

시간을 내어 먼 곳까지 찾아온 그녀에게, 교수님께서 어렵사리 인사를 건네셨다. 젊은 나이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4개월 전 수술 후 항암치료까지 마친 그녀는, 언니라고 하지만 그녀보다 10살은 더 어려 보이는 여자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다 없어진 줄로 알았던 암 덩어리가 다시 자란 것도 모자라 간으로, 뼈로 전이되었다는 소식을 곧 듣게 될 판이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무시무시한 암 덩어리들을 확인하고 재발을 선고받고는, 암과의 완전한 이별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과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삶의 끝을 떠올리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내 그녀는 진료실에 오롯이 혼자인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한껏 성이 난 그녀의 언니와 할 말을 잃어버린 그녀를 바라보며 나도 숨을 죽였다. 

나는 병에 대해,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향한 과정에 대해 날마다 지겹도록 공부하면서 단 한 번도 이를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에 들고 있던 수첩에는 항암제들만 적혀있을 뿐 그녀가 겪을 절망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그녀의 눈물 앞에서 나의 얕은 지식이 부끄러워졌다. 동시에 내가 서 있는 이 방에서 얼마나 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눈물을 흘렸을지 상상했다. 나는 앞으로 나에게 찾아올 무수히 많은 타자의 고통의 순간에 함께하고, 그들의 신음에 귀 기울이겠다고 결심해 본 적이 있던가. 어쩌면 나는 환자를 위해 공부하고 실습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왔다는 방어적 지위 뒤에 숨어 그들에게 무관심했었다.

외래가 끝나고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배정받은 입원 환자의 문진을 준비했다. 담도암으로 시작하여 온몸에 암이 퍼져 이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 공부를 위해 이것저것 묻는 것이 할머니에게도, 학생에게도 꽤 민망한 일이었다. 

염증 수치가 많이 낮아졌던데 옆구리에 달아놓은 튜브는 이제 좀 괜찮으신지, 간병인께서 보시기에 오늘은 할머니 상태가 좀 어떠신지, 욕창은 좀 가라앉았는지, 이것저것 묻다가 문득 오늘 하루 기분은 어떠신지, 오늘 날씨가 참 좋은데 창밖은 좀 보셨는지 넌지시 여쭈었다.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할머니께서 살포시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자꾸 나를 찾아줘서 고마워요."

"'수첩에는 항암제들만 적혀있을 뿐 그녀가 겪을 절망을 적어본 적이 없기에'…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훌륭한 의사 탄생을 기원해본다. 독자에게 울림을 주기에 손색없는 글이다"(심사평 중에서) [사진=pixabay] ⓒ의협신문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한 번도 동생들과 숨바꼭질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타인의 눈을 피해 꼭꼭 숨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그들은 숨어 혼자 울고, 아파하다가 그들을 사랑하는 술래들이 그들을 찾아낼 때에서야 혹은 그들만큼 아픈 사람을 마주해야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함께하기 시작했다. 

아픔의 숨바꼭질은 어릴 적 하던 숨바꼭질보다 숨는 이에게도, 술래에게도 참 어려운 일이다. 숨는 이는 꼭꼭 숨어 발견되지 않길 바라는 동시에, 아무도 자신을 찾지 못해 밖이 깜깜해진 후에야 나올까 두려워할 것이다. 

조한결 경희대학교 의학과 3학년 ⓒ의협신문
조한결 경희대학교 의학과 3학년 ⓒ의협신문

술래는 또 어떤가? 발끝만 보고도 찾았다고 외쳤던 어릴 적과 달리 아픔을 진심으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눈에 벗어나는 것이 십상이다.

신기하게도 병원에서는 이 아픔의 숨바꼭질이 거꾸로 일어난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병원에서 숨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환부를 가리키며 찾아와 술래들이 그들의 고통을 직면하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발끝을 삐죽 내밀며 힌트를 줄 뿐이지 발끝만 보고 성급하게 찾았다고 외치면 언제든 도로 숨을 수 있다. 그들의 환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두려움이, 외로움이, 걱정과 슬픔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술래를 기다리다 지쳐 울며 돌아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으로 그들을 찾기로 다짐한다. 또 그들을 찾았을 때 진정으로 기뻐하며 웃길 다짐한다.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하면 모두가 웃으며 놀이가 끝났듯, 거꾸로 숨바꼭질 놀이에도 우는 이가 없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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