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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내 월급 왜 압류됐나요" 봉직의 A씨의 기구한 사연

법률칼럼 "내 월급 왜 압류됐나요" 봉직의 A씨의 기구한 사연

  • 이은빈 변호사(하모니법률사무소)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7.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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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친척 부탁으로 써준 '차용증', 채권 압류로 돌아와
서명 전 문구 하나도 신중히…처분문서 중요성 간과했다간 '낭패' 

ⓒ의협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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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빈 변호사(하모니법률사무소) ⓒ의협신문
이은빈 변호사(하모니법률사무소) ⓒ의협신문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쓰지만 때때로 법적 중요성을 간과하기 쉬운 것들 가운데 하나로 '처분문서'를 꼽을 수 있다. 

'처분문서'란 그에 의하여 증명하려고 하는 법률상의 행위가 그 문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가령 부동산을 사고팔 때 당사자 사이에 작성하는 매매계약서나 개원가에 불현듯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행정처분서, 법원에서 보내주는 판결서 등. 통상 이 같은 문서는 받거나 가지고 있는 그 자체로 상당한 심적 부담감을 동반하므로, 굳이 처분문서라는 용어를 모르더라도 일정한 법률효과를 인지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

그러면 실제 채무관계가 없지만 친척의 부탁으로 써준 차용증은 어떨까?

여기 '처분문서'에 발목 잡혀 재직 중인 병원에서 하루아침에 급여를 압류당하고, 기약 없는 송사에 휘말렸던 봉직의 A씨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한다. 바쁘게 사느라 부당한 상황을 맞닥뜨려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함이다(당사자의 정보 보호 및 비밀유지를 위해 사건 내용은 일부 축소·각색). 

의사 A씨의 부친은 과거 사업을 하면서 누나 등 가족들과 돈이 오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가 누나에게 갚을 돈이 3천만원 정도 생겼는데, 어느 날 누나가 찾아와 2억을 빌린 것으로 차용증을 써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네 형부가 계좌금액이 모자란 걸 알면 이혼하자고 할 거야. 형부한테만 보여주고 말 거니까 제발 좀 도와줘. 응?"

A씨의 부친은 이혼 위기에 처한 누나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차용증을 써줬지만, 이는 얼마 뒤 엉뚱한 용도로 쓰였다. 누나가 자신의 아들을 A씨에게 보내어 A씨로부터도 차용증을 받아낸 것이다. 

효심이 깊은 A씨는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으라"는 사촌동생의 말을 믿고, 부친에게는 자초지종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차용증을 덥석 써주었다. 고모는 이 차용증을 근거로 이듬해 군의관이던 A씨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원격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느라 고모가 제기한 소송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매월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에 이르는 금원을 고모에게 10년에 걸쳐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이 나왔다. 

조정이나 화해결정이 당사자의 이의 없이 확정되면 당사자는 확정판결과 같은 집행권원을 얻어 상대방 소유의 부동산 압류와 같은 강제집행이 가능해진다. 

결정을 받고 깜짝 놀란 A씨는 당장 고모에게 3천만원을 지급했다. 고모는 별말 없이 이를 받았다. 사실 이것으로 부친이 졌던 채무는 갚은 셈이었다. 

세월이 흘러 가족을 꾸리고, 봉직의로 분주하게 살던 A씨는 불쑥 법원으로부터 소속 병원에서 매월 받는 급여의 절반에 이르는 금액을 압류한다는 통지서를 받게 된다. 알아본즉 고모가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에 A씨의 근무처를 알아내어 채권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은 것이었다. 

그제야 A씨는 정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고모의 부당한 강제집행을 불허하는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면서 적극 맞섰다. A씨의 부친도 뒤늦게 사태를 깨닫고 당시 차용증을 작성하게 된 경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가족들의 사실확인서 등을 부지런히 제출했다. 

그러나 자신의 채무를 스스로 인정한 차용증과, 그에 이어 확정판결의 효력을 가지는 화해권고 결정문까지 처분문서의 강력한 법적 효력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A씨는 상대방에게 막대한 금원을 장기간에 걸쳐 분할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조건을 이행하는 동안에는 월급 압류 등의 제한을 받지 않기로 하고 항소심까지 가서야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밖에 필자가 법률상담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접한 사례로는, 5남매에서 유일한 아들이었던 막내가 상속 부동산을 단독으로 차지하기 위해 당시 의식이 온전치 않았던 80대 후반 노모의 사망일 불과 5일 전 서명 등을 받아 작성한 문서의 효력을 재판부에서 인정해 나머지 상속대상자들의 소유권이전등기 의무를 명한 판결이 있다. 

의료기관 현지조사에서 흔히 작성하는 사실확인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압박적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무심코 서명을 해줬다가, 그대로 행정처분의 근거자료로 쓰이면서 곤란에 빠지기 쉽다. 

이제 다시 한번 '처분문서'의 정의를 곱씹어보기를. 우리의 소중한 개인정보를, 서명을, 응답을 요구하는 각종 문서의 법률적 효과를 깨닫는다면, 그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보다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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