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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2:28 (금)
중화(中華)란 무엇인가?
중화(中華)란 무엇인가?
  • 장성구 전 대한의학회장(국군 수도병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6.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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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조선·민비 등 함부로 써...청산해야 할 식민 왜색 사관
자조적 표현 삼가했으면...선조의 큰 뜻 제대로 이해해야
장성구 전 대한의학회장(국군 수도병원장)ⓒ의협신문
장성구 전 대한의학회장(국군 수도병원)ⓒ의협신문

일상 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혹은 어떤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하는 것은 각 개개인의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대한의사협회 회원들이 주로 방문하는 신문에 의료와 직접 연관성이 없는 내용을 싣는 이유는 우리가 의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사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양식(良識)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망발을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은 현학적인 지식을 자랑하거나 대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인 의사로서 신뢰를 쌓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요즘도 가끔 언론매체에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품격이 높아 보이는 분들의 입에서조차 전혀 거리낌 없이 튀어나와 듣는 사람의 얼굴이 화끈거리게 하는 말이 있다.

'이조(李朝)'라는 말이다. 풀어 이야기하면 '이씨조선' 즉 이씨가 세운 나라라는 말이다. 우리 역사에는 이런 이름의 나라는 없다. 오로지 '조선(朝鮮)' 혹은 '근세조선'만 있을 뿐이다. 이는 청산해야 할 식민 왜색 사관의 잔재다. 일본 천황의 신민이 된 것을 하늘 아래 영광으로 생각했던 자들이 천황의 나라인 일본에 대비해 조선을 열등한 국가로 취급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고려'도 '왕씨 고려'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서 파생된 말로써 '조선백자'가 옳은 말이지 '이조백자'가 아니다. 비슷한 망언의 예로 '민비'라는 말이 있다. 그분의 정치적 입지는 역사적으로 판단하면 되는 일이지 우리가 나서서 민비라고 지칭하는 것은 지극히 자조적인 행위다. 분명히 '명성황후'다. 자기들 천황의 부인을 황후라고 부르기 때문에 격을 낮춰 민비라고 한 것이다. 일국의 황후를 낭인들을 시켜 시해한 일은 전 인류역사에 없는 반인륜적 만행이다. 이런 패악한 짓을 저질러 놓고 민비라고 격하시켜 부르는 또 다른 일제의 만행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부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분들일까?

모든 잘못은 무지에서 출발한다. 한 가지만 더 예를 들겠다. 우리나라 옛 문헌 혹은 선비나 학자들 문집 또는 독자 여러분의 조상님들 문집을 보면 '중화(中華)를 존숭(尊崇)하고'라는 말을 흔히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중화(中華)'라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고 필자는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많은 사람이 중화(中華)란 중국의 문물과 사상을 흠모하는 소위 모화사상(慕華思想)에 근거해 생겨난 말로서 중국을 존경하고 숭상하는 의미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인터넷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중화(中華)'는 '세계문명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중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이르는 말. 주변국에서 중국을 대접해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또한 정말 놀랄 일이다. 명색이 국어사전에 어떻게 오늘날 중국이 원하는 개념을 그대로 기록해 놓았을까? 우리 선조가 중화라는 말을 사용했던 시기에는 국어사전도 없었고 '세계문명'이니 하는 개념 자체가 없을 때였다.

허기야 현재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공산주의 국가의 공식 명칭이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으로 되어 있으니 잘못 생각하면 중화는 중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할만하다. 저들이 사용하고 있는 중화의 의미는 우리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세계문명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자신만만하게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선조께서 사용하신 중화라는 말은 중국도 아니고 세계문명의 중심이란 뜻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면 선조로부터 내려온 중화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보자. 이 말은 본래 유학을 근거로 한 사상과 철학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조상님들의 정의가 정확한 것이다. 현재 국어사전에 어떻게 기술되어 있든 그 본래의 뜻을 찾아 규명하면 된다.

우리나라 유학의 학맥은 다양하다.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학문적으로 많이 발전하였다는 의미이다. 율곡 이이 선생의 학맥인 기호학파, 퇴계 이황 선생의 영남학파, 남명 조식 선생의 남명학파 등이 바로 다양한 학파로서 학문적 그리고 학술적으로 대단한 가지를 갖고 있다.

조선말에 유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학자가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선생이다. 그는 빛나는 별 같은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이들을 화서학파라고 한다.

필자가 이렇게 구구한 설명을 하는 이유는 이 화서학파 유림들이 우리나라 항일의병 활동의 주류를 이뤘고, 조선말 유학의 근간이 됐기 때문이다. 면암 최익현·의암 유인석·운강 이강년·괴은 이춘영·실곡 이필희·보재 이상설·도마 안중근·백범 김구 선생 등 수 많은 화서학파 유학자들이 항일의병 운동을 전개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지사가 있지만 지면 관계상 일일이 거론가지는 않겠다. 다만 이분들의 근본은 모두 큰 유학자였다는 사실이다.

이분들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우리가 해결하여야 할 중화(中華)에 대한 정의가 나온다.

항일의병대장으로 유명한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 선생의 사승(師承: 스승과 제자 관계)은 화서 이항로-성재 유중교-의암 유인석으로 내려오는 큰 학자로서 나라를 위해 항일의병을 창의했다. 의암은 유학자로서 생전에 57권의 방대한 문집을 남긴 대학자이다.

의암은 문헌을 통해 중화(中華)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남겼다.

'세상의 대의(大義)에 중화(中華)를 높이는 것 보다 높은 것은 없다. 중화(中華)란 윤리강상의 도리를 밝히는 것이고, 인의도덕이 드러나는 것이고, 예약정법이 나타나는 것이며 제도문물이 밝아지는 것으로 지극히 바르고 큰 것이다. 중화(中華)란 도(道)를 중히 여기는 것이니 인륜의 실행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화(中華)란 어떤 지역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갖고 말할 따름이다. 즉 그 도를 말하는 것이다. 설사 청(오랑캐 청나라를 의미)이 중화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적(夷狄:오랑캐)의 풍속을 바꾸었다면 이 또한 중화이니 특별히 차별할 필요가 없다.'라고 했다.

다시 말해 중화(中華)란 어떤 종족이나 특정 지역적인 개념에 머물러 고착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화의 문물제도를 따르고 있다면 곧 중화가 되는 것이다. 중화의 개념을 지역이나 종족을 뛰어넘는 문화적 우월 개념으로 명시한 것이다.

화서 선생 역시 화이(華夷:중화와 오랑캐)의 분별은 단순히 지리적인 중심과 주변의 차이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문화가 있고 없는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했다.

그렇기 때문에 화서학파에서는 중국이라는 지역을 원나라가 지배했을 때 중화는 고려이고, 청나라가 지배하고 있을 때 중화는 조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화(中華)는 지금 지도에서 보이는 중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하고, 이 말이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하기를 바란다. 중화라는 말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문화를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 선조가 '중화를 존숭한다'라는 말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사람의 도가 있는 문화를 중요시 한다'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의 큰 뜻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의미와 우리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삼가야겠다는 생각에 중언부언 글을 써 보았다.

2022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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