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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어게인 영리병원?
논설위원 칼럼 어게인 영리병원?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2.04.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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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지난 4월 5일 제주지방법원 행정법원이 제주도의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관광객만 진료하도록 조건부 허가를 낸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영리명원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사진은 2019년 본지가 촬영한 녹지국제병원. 개설허가 취소로 문을 닫은 모습이다.ⓒ의협신문

영리병원 논란이 재점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주지법 행정법원이 이달 5일 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진료하도록 조건부 허가를 낸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동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을 승인했다. 이후 2017년 8월 제주헬스케어타운이 778억원을 들여 녹지국제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제주도에 개원 허가 신청을 냈으나 당시 시민단체들이 숙의민주주의 조례에 근거해 제주도에 공론조사를 청구했고, 공론조사위원회가 녹지국제병원 개설 불허 권고안을 제주도에 제출했다.

하지만 2018년 12월 원희룡 제주지사가 권고와 달리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조건부 허가를 한 것인데, 녹지국제병원이 이에 불복해 2019년 2월 소송에 돌입해 3년여 만에 1심 판결이 나온 것이다.

사실 당시에도 이 소송은 녹지국제병원이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영리병원 개설 허가 근거가 되는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조항은 없다는 사실이 근거였다. 더욱이 의료법에는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고 돼 있어 내국인 진료를 막을 수 없다는 주장도 이를 뒷받침했다.

이번 행정법원 역시 제주특별자치도법과 관련 조례에는 외국 의료기관 개설허가 조건에 내국인 진료제한 등과 같은 진료대상을 제한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녹지국제병원 측이 따로 제기한 병원 허가취소 무효화 소송도 올해 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2018년 제주도의 조건부 승인에 대한 의료계를 비롯해 시민사회계, 국회에서 우려를 표명했을 당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일반적 영리병원은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 제주특별법을 비롯한 경제자유구역법에서 외국인 환자에 한해서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법을 고치는 것에 대해서는 소관부서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이지만 적극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국회에서 답변했으나 사실 문재인 정부는 관련법 제정에 손을 놓고 있었다.

당시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문재인 정부가 영리병원 정책에는 반대의견을 내면서도 녹지국제병원에 대해서는 어떠한 개입도 없이 '강 건너 불구경'하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는 말이 이번 판결로 사실이 된 셈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이 "기존 의료기관 설립기관을 비영리법인으로 한정한 기존 의료법을 뒤집고 영리병원 합법화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고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우려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영리병원은 투자자의 이윤추구가 목적이고 건강보험체계의 적용도 받지 않아 의료비 폭등과 의료 양극화를 초래해 우리나라 공공의료체계 토대를 붕괴시킬 것이란 우려다. 

물론 아직 상급법원의 판결이 남아있지만 1심 법원의 판결이 그대로 인용된다면, 다른 8개 지역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 설립의 걸림돌은 사실상 제거되는 것이어서 새 정부의 영리병원에 대한 기조가 확실히 정리되지 않는다면 영리병원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뜨겁게 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주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지난 12일 제주도가 제출한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취소 안건을 심의한 결과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가 규정한 허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시 허가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제주특별법에 따르면 영리병원은 외국인 투자 비율이 50%를 넘어야 설립 가능한데, 국내법인이 녹지국제병원 지분 75%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취소 결정에 반발해 녹지국제병원이 다시 소송으로 맞설 경우 또다른 지난한 법적 다툼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그동안 영리병원이 불러올 폐해를 국민에게 인식시키고 공감을 통해 저지해왔지만, 이 지루한 공방의 끝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돌이켜 보면 영리병원을 비롯한 의료민영화는 보수정권, 진보정권을 가리지 않고 추진돼 왔다.

김대중 정부 말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전용 병원 설립 허용이 논의됐으나 당시엔 그나마 개설 주체는 외국인만 투자 가능한 비영리법인으로, 내국인의 이용은 불가하고 외국인만 진료 가능한 것이었다.

이후 참여정부 들어 의료서비스 산업의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추진, 영리병원 허용 방안의 단계적 검토 결정이 내려지고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민간의료자본의 활성화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됐으며, 박근혜 정부는 현재 논란의 단초가 된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승인을 계획했다. 

새 정부가 영리병원과 관련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국토교통부 장관 내정자는 2018년 다름 아닌 조건부 허가를 내준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지난 2월 제주 MBC 대선 기획 보도에서 "법원 판결의 취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역시 당시 "의료산업 육성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지난한 논쟁과 법적 다툼, 새 정부의 기조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영리병원의 문이 마침내 열릴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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