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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 의사·의료기관이 짊어져야 할 의무의 무게?

논설위원 칼럼 의사·의료기관이 짊어져야 할 의무의 무게?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2.0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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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에 이어 사망신고까지 의료기관, 의사에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의사와 의료기관이 감당해야할 의무에 대한 기대가 사회통념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의협신문
출생신고에 이어 사망신고까지 의료기관, 의사에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의사와 의료기관이 감당해야할 의무에 대한 기대가 사회통념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의협신문

의료기관과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행위가 주요 업무이지만 최근 발의되는 법안들은 각종 행정 편의를 위한 손쉬운 도구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의 자격확인 의무를 의료기관에 부과하겠다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강병원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의료기관을 공단의 하부 기관으로 치부하는 것 아닌가 분노했는데 출생·사망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나왔으니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의사나 의료기관이 국가의 건강보험체계 아래 아픈 환자를 돌보는 의료행위는 넓은 의미에선 '공익'을 행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사는 엄밀한 의미의 공익 수호자는 아니다. 의료법에서 명시된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장의 의무'는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관련감염을 예방하며 의료기술을 발전시키는 등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이다. 하지만 특정 사안에 대해 대중적 관심이 집중될 때마다 업무의 성격은 고려하지 않은 체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의사 또는 의료기관에 짐을 지우는 법안이 너무 쉽게 발의되고 있다.

20대 국회 땐 발의된 일명 '데이트폭력방지법'은 그 정점에 있었다. 직무 또는 상담 등을 통해 데이트폭력 또는 스토킹 행위를 알게 된 의료인, 구급대원 등에 대해 신고의무를 부과하겠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비록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 폐기됐지만 유사한 법안은 회기가 바뀌고도 되풀이 되고 있다.

이런 시도와는 별개로 의사와 의료기관은 현재도 많은 신고의무의 짐을 지고 있다. 의료업을 행하는 의료인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아동학대를 알게 된 때는 즉시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 진료나 예방접종 시 전염병을 발견하거나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을 발견하는 경우와 전염병 환자 사체 검안도 신고대상이다. 또 의사 등이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도중에 사망 또는 인체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위험이 있으면 관계당국에 신고해야 하고, 식중독 의심이 있는 자를 진단했거나 그 사체를 검안한 의사는 관할 보건소장에 보고해야 한다. 이런 많은 신고 의무사항 중 일부는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의무에 부합하는 것도 있지만 벌금 조항 등 과한 것도 있다.

현재 발의되는 많은 법안들은 의료기관, 의사의 고유업무의 정합성을 따지기보다 대중적 관심에 따라 즉흥적, 즉각적으로 남발되는 경향이 짙다. 출생신고에 이어 사망신고까지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수행토록 하는 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정부는 아이가 태어나면 의료기관의 장이 신생아 출생 정보를 관계기관에 제출토록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으며, 국회 역시 여야 가릴 것 없이 의료기관의 출생신고 의무화를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했다. 출생 미등록 아동의 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병·의원이 출생신고를 하도록 해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국민의 힘 주호영 의원은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사망한 경우 사망자를 직접 진료한 의사가 사망신고를 하도록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가족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아 보훈급여비나 연금 등을 부정수급하는 사태 등 사망신고체계의 허점을 보강하겠다는 것인데 출생 신고 든 사망신고 의무화 등 그 배경과 취지를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나 과연 이같은 업무가 의료기관이나 의사가 할 일인지 수긍하기 힘들다.

더욱이 출생이나 사망신고를 의료기관에 의무화할 경우 발의 의도에 부합하는 순기능 못지 않게 역기능이 클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안해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동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이지만 미혼모나 출생신고를 꺼리는 경우 오히려 병·의원에서의 출생을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산모나 신생아의 건강은 심각한 위험에 처할수 있다. 사망 신고 역시 일부 유가족이 마음 먹고 부정수급을 계획한다면 의료기관에서의 치료를 꺼리고 방치해 오히려 치료하면  회복 가능성이 있는 환자의 사망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의사, 의료기관이 해야 할 의무는 어느 선까지 인지 따져봐야 한다. 의료인의 사명이라면 "국민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정의될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각종 규제 법안들은 의사나 의료기관에 기대하는 사회적 통념을 지나치게 넘어선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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