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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실손보험사들의 투망식 소송 문제점과 최근 진행 경과
법률칼럼 실손보험사들의 투망식 소송 문제점과 최근 진행 경과
  •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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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채권자 대위소송' 문제점 인지…무리한 소송 제동
재판 제도 악용해 손실 보전...제재 회피 시도 중단해야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소송에서 '뭐라도 하나 걸리겠지' 하는 심정으로 이런저런 주장을 하는 것을 속칭 '투망식 주장'이라고 한다.

사건이 법원에 접수되는 한, 법관은 내용이 다소 부실하더라도 원고가 제기한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검토해 판결을 하는 것이 원칙이기에 법원이 알아서 뭐라도 하나 인용해주겠지 하는 심정으로 '투망식 주장'을 하는 소송관계인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법원도 소중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헌법기관인 만큼, 투망식 주장, 투망식 소송은 자제돼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굴지의 사기업들의 계열사인 실손보험사들이 의료기관을 상대로 그야말로 투망식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보험회사와 환자 간 보험약관에 따를 때 지급이 어려운 진료행위에 대해 제대로된 심사 없이 보험금을 지급한 후 한참 시간이 경과한 뒤 의료기관들을 상대로 '당신들이 잘못된 진료를 해서 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게 됐다'는 취지로 채권자대위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소송은 널리 알려진 소위 '맘모톰' 시술 뿐 아니라 안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비뇨의학과, 심지어 한방의료 분야에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소송의 내용은 하나같이 투망식 주장으로 이뤄져 있다.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에 이르는 환자에 대한 진료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면서 단지 환자의 명단만을 제출했을 뿐, 그 환자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진료를 받았는지 주장이 없는 것이 다반사이다.

의료기관 측이 진료 내용 및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을 하라고 요구하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의료기관 측에게 환자의 진료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거나 의료기관 측이 자신의 진료가 적절함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례들도 많았다. 

특히 보험회사들은 민사소송법에서 소송 상대방이 갖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문서의 제출을 명령해달라는 신청(문서제출명령신청) 제도를 남발하고 있는데, 법원이 의료기관에 환자 진료기록의 문서제출명령을 하면 보험회사가 그 기록을 토대로 의료기관의 잘못을 가리겠다는 취지다. 

보험회사의 문서제출명령신청이 있는 경우 법원에 이를 반대하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지 않으면, 법원도 별다른 고려 없이 의료기관에 진료기록을 제출하도록 '명령'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법 제21조는 오직 '환자 자신'에게 '본인에 관한 기록'을 발급받을 권한을 부여하고, 예외적으로 환자의 동의서가 있을 때 제3자가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보험회사 역시 보험금 지급을 위해 진료기록이 필요한 경우 보험계약상 고객인 환자의 동의를 얻어 직접 의료기관을 방문, 진료기록을 발급받아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험회사들은 소송 제기 전에 최소한 진료기록을 확인하는 수고도 거치지 않은 채, 막연히 '진료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는 추측으로 소를 제기하고는 재판절차를 통해 의료기관으로부터 진료기록 일체를 넘겨받는 식으로 자신의 편의를 위해 소송절차를 활용하고 있다. 

의료기관은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을 받으면 보험회사가 제출을 요구하는 환자 명단과 자신이 보유하는 진료기록을 하나하나 대조해 가며 자료제출을 준비해야 한다. 

심지어 어떤 사건에서는 보험회사가 제시한 환자 명단의 환자 이름이나 인적사항이 틀려 의료기관이 온갖 수고를 감수하며 진료기록을 찾아 제출한 경우도 있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에 대한 진료를 놓고 보험회사가 소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데, 보험회사가 가장 내밀한 진료기록을 마음대로 가져가는 셈이어서 환자들이 이를 안다면 과연 제공에 동의할지도 의문이며, 이 진료기록을 보험회사들이 어떻게 활용할지 알 수도 없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더라도 환자의 진료기록은 민감정보로 분류되는데, 이처럼 손쉽게 보험회사들이 환자의 내밀한 기록을 확보할 수 있다면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셈이다. 

보험회사는 이처럼 '아님 말고'식으로 손쉽게 소송을 하지만, 대응하는 의료기관은 소송의 가액에 관계없이 큰 부담을 지게 된다. 

본래 보험회사가 계약한 상대방은 환자이고 보험금을 받은 것도 환자이기에 보험계약상 지급돼서는 아니되는 보험금이 지급됐다면 환자에게 반환청구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럼에도 환자에 대한 보험금 반환청구 대신 의료기관에 소를 제기하는 방식을 택했느냐는 법원의 질문에 어떤 보험회사는 이렇게 답했다. 

피보험자인 환자는 보험사에게 '고객'이기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고객에게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나쁜 평가를 받으며, 언론의 집중적인 포화를 받고 고객들로부터 항의를 받아 경영상 타격을 입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험금을 잘못 지급했다면 원칙적 절차를 거치고, 그에 따른 제재가 있다면 받는 것이 당연하다. 

보험회사는 절차상 번거로움을 없애고 금융당국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법원의 소송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대다수의 하급심 법원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인지해 실손보험사들의 무리한 투망식 소송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에 보험회사들은 새로운 방법으로서 개별 환자들에게 '당신이 의료기관으로부터 반환받을 진료비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러한 경우 반환을 청구할 권리를 보험회사에 넘기시오' 라고 제안을 하고, 환자가 이를 수락하는 경우 '채권양도양수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즉, 환자가 의료기관에 받을 돈이 있는 경우(채권), 그 채권을 보험회사가 인수해서 환자 대신 소제기를 한다는 전략이다. 

어떤 환자는 보험회사로부터 위와 같은 연락을 받았고 만약 거절할 경우 불이익(보험금 반환 청구)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서명을 함부로 해줘도 되는지 상담을 해오기도 한다. 

물론, 실제 존재하는 채권을 양수해서 본래 채권자 대신 행사하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판례에 따르면 소송행위를 대신하게 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채권양도 등이 이뤄진 것은 무효이기 때문에 보험회사가 환자들로부터 채권을 양도받은 경위나 시기 등을 고려해서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역시 보험회사가 패소하고 있다. 

나아가 보험회사는 '의료기관이 잘못된 진료라는 불법행위를 저질러 자신들이 손해를 입었다'라는 주장도 하고 있지만, 법원은 만약 의료기관 측 진료에 문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보험금이 지급됐다 하더라도 의료기관은 제3자인 보험회사와 직접 관계가 없기에 보험사의 손해와 의료기관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급심에서는 보험회사 측의 패소판결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서인지 여전히 제대로 된 주장과 증거를 갖추지 않은 채 소송절차를 통해 환자의 진료기록을 통째로 요구하는 투망식 소송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실손보험 재정에 위기가 온 원인은 지급률에 대해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고 상품을 설계하고, 보험금 지급 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보험회사 측에 있다. 

재판제도를 악용해 손실을 보전하고 제재를 회피하려는 시도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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