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에 재즈 매력에 심취해 클럽 몽크 운영한 소아청소년과 의사 양돈규
"스트레스를 받았던 본업에서 재즈를 통해 스스로 위안을 많이 얻었죠."
재즈의 매력에 빠져 의업과 재즈 클럽 운영을 20년 넘게 겸업한 의사가 있다. 어려서부터 팝송과 로큰롤을 좋아했던 그는, 30세가 될 즈음 재즈의 매력에 푹 빠졌다. 부산의 한 음악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던 중, 재즈 클럽을 운영하던 회원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자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부산 최초의 재즈 클럽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재즈 이론서(재즈가 뭐니)까지도 낸 그는 재즈를 얼마나 사랑하는 걸까. 소아청소년과 의사, 양돈규 원장의 이야기이다.
재즈가 대중적이지 않은 건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어렵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영화, 드라마, TV 광고 음악 등에서 재즈를 접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지요.
저는 듣기 편안한 보컬 재즈부터 들어보라고 권합니다.
라이브 재즈 클럽의 이름인 '몽크(Monk)'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에서 빌려왔다. 몽크는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빌 에반스(Bill Evans)'와 더불어 20세기 재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이다.
이전의 관습적이고 정형화된 음악과는 달리, 20세기에 등장한 재즈는 변칙적이고 즉흥적이다. 그 흐름 속에서도 몽크의 음악은 단연 독보적이다. 다른 뮤지션들과는 차별화된 익살스러운 연주 방식은 듣는 이의 귀를 즐겁게 했다.
그가 운영한 '몽크'는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역사가 깊은 재즈 클럽이다. 1976년 이태원의 '올댓재즈'를 시작으로, 작년에 타계한 재즈가수 박성연 씨가 만든 신촌의 '야누스'에 이어 부산에 문을 연 국내 3번째 재즈 클럽이다. 세계 재즈클럽 소개 사이트인 'Jazz Clubs Worldwide'는 한국의 재즈 클럽 중 맨 처음 '몽크'를 소개했다.
"재즈 공연 외에도 '봄여름가을겨울', '크라잉넛' 등 국내 음악인들의 공연도 있었습니다. 또 부산 출신 젊은 재즈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며 실력을 키우는 장소였기에, 이곳에서 배출된 몇몇 재즈 뮤지션들은 제법 유명해지기도 했죠."
'몽크'에서는 국내 유명 재즈 뮤지션들은 물론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유명한 재즈 뮤지션들도 공연했다. 프랑스의 재즈 피아니스트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 영국 출신 캐나다 색소포니스트 '시무스 블레이크(Seamus Blake)'가 무대에 올랐다. '걸 프롬 이파네마(Girl From Ipanema)'로 유명한 미국 색소포니스트 '스탠 겟츠(Stan Getz)'의 아들이 가끔 찾아와 재즈를 즐기기도 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재즈 클럽 '몽크'를 찾는 데는 재즈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 일과 클럽 운영을 병행한 것도 모자라 재즈 입문서 '쉽고 재미있는 재즈의 이해'도 남겼다.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도서관에도 그의 저서가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도 어려움은 없었을까?
"진료 외에 재즈 클럽을 운영하는 것이 왜 어려움이 없었겠어요. 음향학과 실무적인 사운드엔지니어링을 알기 위해 해외에서 외국 서적을 주문해서 혼자 공부했어요. 30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손해 본 금액은 말할 필요도 없죠."
그러나 그의 피나는 노력에도 코로나19는 너무나 큰 장벽이다. 많은 자영업자가 영업 제한으로 문을 닫았는데, 재즈 클럽이 유독 타격이 컸다. 매일 새로운 재즈 뮤지션들이 밤늦게까지 클럽에서 공연하고, 잼(Jam:재즈곡을 하나 정해놓고 연주자들이 모여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을 하는 특성상 방역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몽크 뿐 아니라 '올댓재즈', '디바 야누스'(원래 이름은 야누스였다가, 현재의 교대역 인근으로 이사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홍대의 재즈 클럽 '클럽 에반스'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무기한 휴업을 결정했다. 홍대의 또 다른 재즈 클럽 '에반스 라운지'는 아예 영업을 종료했다. 몽크도 지난 6월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가 30주년을 앞둔 최근 영업 종료를 선언했다.
"작년부터 운영진들에게 1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원했고, 올해부터는 월세도 매월 100% 지원했어요. 결국 운영진들이 손을 들어서 그만두게 됐어요."
그는 현재 자신이 운영하던 소아청소년과도 문을 닫고, 경남 함안의 한 병원에서 병원의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재즈에 대한 그의 열망만은 아직 그대로다.
"코로나19가 좀 잠잠해지면 부산의 재즈 뮤지션들을 위해 조그마한 라이브 재즈 클럽을 다시 만들기로 했습니다."
재즈는 대중들이 많이 즐겨 듣는 음악 장르는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의 한 줄기를 지키기 위해 재즈 클럽을 도맡아 운영하고, 시련이 와도 또 다른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는 그의 모습에 대단한 존경심이 든다. 이것이 마니아의 마음일까.
마지막으로 그에게 대중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재즈곡을 요청했다.
"재즈가 대중적이지 않은 건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어렵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영화, 드라마, TV 광고 음악 등에서 재즈를 접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를 뿐이지요. 저는 듣기 편안한 보컬 재즈부터 들어보라고 권합니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가 부르는 'I'm A Fool To Want You' 같은 대중적인 보컬 곡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