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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사의 현재에서 공공의료의 미래를 본다
공중보건의사의 현재에서 공공의료의 미래를 본다
  • 임진수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9.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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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지·코로나19 감염병 현장 의료진 전문성 무시…공보의 처우 개선 외면
공공의료 걱정한다면 공보의협의회 의견 경청해야…말로만 '덕분에' 사양
임진수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 ⓒ의협신문
임진수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 ⓒ의협신문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35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으로서 대한의사협회 제41대 집행부에서 정책이사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의협 내에서 젊은 의사의 한 축인 공중보건의사(공보의)를 대표하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질병관리청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한복판에서 공보의가 바라보는 의료계의 현실에 대한 단상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코로나19 초기 대구 경북지역 대유행 당시, 공보의 1년차로 섬에서 근무하던 저는 대구지역 파견 근무를 자원했습니다. 하지만 섬 지역이 의료공백에 놓일 수 있다는 이유로 대구 파견 근무는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공보의 2년차가 되면서 의사로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질병관리본부 근무를 자원했습니다. 막연히 '중앙이라면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전국 각지의 공보의들이 다같이 노력하면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사명감으로 희망을 품었습니다. 코로나19 초기부터 수 많은 공보의들이 감염병 현장에서 땀을 흘렸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즉각적으로 대규모의 의사인력을 감염병 현장에 동원할 수 있었을까요? 여태 쏠쏠하게 사용하고 있는 'K-방역'이란 말을 꺼낼 수 있는 것도 공보의들이 헌신한  덕분일 것입니다. 

올해 3년차 공보의가 되어 대공협 회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질병관리청에 남기로 했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곧 시작할 대규모 예방접종 업무에서 일선 공보의들의 목소리를 더 잘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해 초 질병관리청이 세운 예방접종센터 운영 계획을 살펴보면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질병청의 운영 계획에는 불과 몇 달 전에 인플루엔자 백신 이상반응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던 경험을 반영하지 않은 채 주 6일 근무에 의사 1인당 하루에 150명 이상을 예진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많은 공보의들은 "일선 보건소 인력은 탈진한 상태다. 백신의 안전성도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주 6일 근무와 150명 예진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상황에 따라 일일 접종량과 운영 일정을 유연하게 조절해야 한다. 민간 의료기관의 접종 역량이 충분하므로 위탁의료기관을 최대한 확대해야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하루에 수백 명씩 기계적으로 예진해 속도전 식으로 예방 접종을 진행하는 운영 계획은 위험하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의료진의 수당 지급 기준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자체가 공보의를 파견하면 하루 4만 5000원을, 중앙사고수습본부가 파견하면 하루 12만원의 수당을 지급했습니다. 업무의 종류, 근무지의 위치에 관계없이 '파견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수당에 차이를 보였습니다. 더욱이 원 근무지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될 경우에는 공보의 혼자 하루 종일 코로나19 확진자를 진료하더라도 파견이 아니기 때문에 수당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원 근무지에서 공보의 수당 지급을 위한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방에서 왕복 세 시간 거리에 있는 대도시로 파견 근무를 가더라도 같은 지역이라는 이유로 4만 5000원의 수당만 책정했습니다. 

물론 수당이 적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공보의는 없지만 같은 업무를 하는데 차이가 난다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해 달라고 숱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건의했지만 불합리한 지침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A지역 공보의는 담당 공무원에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지금 군복무를 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B 지역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B 공보의는 예방접종 이상반응 역학조사 후 외국의 사례를 근거로 추가검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질병청에 요청했지만 자문단이 아닌 조사팀 선에서 거부를 당했다고 합니다. 역학조사 현장에서 케이스 리포트가 쌓여야 안전한 예방접종의 근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처음 도입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백신의 안전성을 기존의 레퍼런스로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감염병 최전선에서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는 의료진의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B 공보의가 느꼈을 허탈함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공보의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명령을 통해 해결하려 하거나 불안한 신분을 악용해 압력을 행사하는 일들은 지금도 숱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의 와중이라 다들 바빠서 그러는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의 공식 질의에도 돌아오는 답이 없습니다. 

'2020년 신규 의과 공보의 중앙직무교육'이 2020년 3월 5일 열렸다. 신규 의과 공보의들이 코로나19 진료에 대비, 개인 보호구 착탈의 실습을 하고 있다. 공보의들은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 생활치료센터, 선별진료소를 비롯해 역학조사관을 맡아 방역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섰다. ⓒ의협신문 김선경 ⓒ의협신문
'2020년 신규 의과 공보의 중앙직무교육'이 2020년 3월 5일 열렸다. 신규 의과 공보의들이 코로나19 진료에 대비, 개인 보호구 착탈의 실습을 하고 있다. 공보의들은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 생활치료센터, 선별진료소를 비롯해 역학조사관을 맡아 방역 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섰다. ⓒ의협신문 김선경 ⓒ의협신문

공보의는 처음으로 학교 밖, 병원 밖으로 나와 공공의료의 주춧돌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고향에서, 혹은 보건소나 공공의료원에서, 혹은 역학조사관으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도 합니다. 공직에 뜻을 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공보의 가운데 일부만 공공의료 분야에 남더라도 공중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보의로 근무하는 시간이 공공의료의 현실을 직시하고, 좌절을 경험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뜻과 열정이 있는 공보의들의 사기를 다 꺾어놓고 이런 부당한 처우와 불합리한 일들을 겪게 하면 누가 기꺼이 남으려고 하겠습니까.

정치권에서는 공공의대가 생기면 공중보건의료 인력 문제를 아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공의대 졸업생은 최소 10년 간 지방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미 의료 취약지와 감염병 현장에서 의무 복무를 하고 있는 공보의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알면서 10년 동안 복무를 하라고 합니다. 3년 짜리 의무 복무를 하고 있는 저는 이 제도가 어떻게 굴러갈지 눈에 선합니다.

저는 역학조사관이 되고 싶어 질병청 근무를 자원했지만 이제는 꿈을 접었습니다. 전역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다음에 이곳에 올 일이 있다면 그때는 선출직일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지를 하나 줄여준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저처럼 공보의로서 마주하는 현실에 실망하고 뜻과 희망을 내려놓는 다른 공보의가 또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참으로 속상합니다.
 
공보의들을 전문가로서 존중하고, 현실적인 처우 역시 개선해야 합니다. 의사로서 공공의료에 첫 발을 내딛는 젊은 의사들에게 좌절감이 들게 해서는 안됩니다. 진정 공공의료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미 공공의료의 최전선에 있는 공보의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온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공중보건의사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영해 주십시오. 말로만 '덕분에'는 말고요.

■ 칼럼과 기고 등은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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