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57 (목)
4대악 의료정책 저지 투쟁 1주기를 회고하며
4대악 의료정책 저지 투쟁 1주기를 회고하며
  • 강석태 전 범의료계투쟁특별위원회 상임위원장·전 강원도의사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8.12 16:2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협·여당·정부 '9·4 합의' 의대정원 확대·공공의대 신설 논의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명문화
의협 중심으로 갈등 치유, 하나 돼야...전공의 처우·필수의료·건정심 구조 개선 등 해결하길
강석태 전 범의료계투쟁특별위원회 상임위원장·전 강원도의사회장
강석태 전 범의료계투쟁특별위원회 상임위원장·전 강원도의사회장

정부, 여당의 일방적인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 정책 발표에 의사들이 파업투쟁으로 맞섰던 뜨거웠던 2020년 여름으로부터 벌써 1년이 흘렀다. 정부와 여당이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가 안정화 되면 의료계와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의료계는 파업 당시보다 오히려 더욱 큰 갈등을 내부적으로 겪어내야 했다.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회원, 특히 전공의 회원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파업을 중단했다는 비난에 휩싸였고, 비록 부결되었으나 회장을 포함한 이사들의 탄핵안이 상정된 임시총회까지 열렸다. 한편, 투쟁의 주축이었던 대한전공의협의회도 내홍에 휩싸이면서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이러한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의사협회는 새 집행부가 출범했고 대전협 역시 투쟁 후 새롭게 선출된 회장의 임기가 끝나감에 따라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경선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선배와 후배 의사 사이의 어색함은 여전하고 가슴 벅차고 뜨거웠던 투쟁의 기억을 뒤로한 채 우리 대부분의 마음 속에는 오해와 분열 그리고 불확실성이 혼재해 있다.

2020년 여름 의료계의 투쟁은 과연 실패했는가?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무엇보다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의대정원을 확대하겠다던 정부와 여당의 정책이 1년째 그대로 중단되어 있다. 일부 여권 인사들이 공공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비슷한 주장을 지속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공식적으로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합의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른바 '의정합의문'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의정합의 이후 출범한 범투위의 상임위원장으로서 의정협상을 할 때에도 정부측 인사들의 거듭되는 설득과 집요한 압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료계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의정합의문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9월 4일, 의협은 두 개의 합의를 했다. 첫 번째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정책협약이행 합의다. 이 합의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협과 협의체를 구성하여 이를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논의 진행중에는 입법 추진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하게 약속했다.

한편, 같은 날 의협과 보건복지부는 관련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한다는 의정합의문을 체결했다. 의정합의문에서는 의협과 더불어민주당이 정책협약을 통해 구성하는 국회 내의 협의체의 논의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의대정원을 일방적으로 확정하여 교육부에 통보하는 등의 정책을 강행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명시했다.

2020년 9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의협과 더불어민주당이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를 작성했다. 여당 대권 후보인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이날 합의서 작성 자리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2020년 9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의협과 더불어민주당이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를 작성했다. 여당 대권 후보인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이날 합의서 작성 자리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이 두 가지 합의를 이행하면서 정부와 여당이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의대정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코로나19가 안정화 되어야 한다. 코로나 안정화에 대한 기준은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단순하게 확진자의 수와 같은 획일적인 수치로 정하기 어려우므로 확진자 발생의 양상과 추이, 거리두기 단계, 의료체계의 대응역량, 치료제와 백신의 수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의협과 정부가 합의를 통해 정하기로 의정협의체에서 합의한 바 있다. 

전 세계적인 백신 접종 속에서도 변이바이러스로 인한 코로나19 확산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백신 접종이 지연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의료계는 물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코로나19 안정화'는 여전히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즉, 합의문에서 재논의의 시기를 '코로나19 안정화'로 명시한 것은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더라도 매우 탁월한 한 수였던 셈이다.

설령 추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코로나19 안정화의 시기가 도래하더라도 여당은 여당대로 국회 내에서 의료계와 협의체를 만들어 협의해야 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의료계와 구성하는 의정협의체에서, 그것도 여당과 의료계 사이의 협의체에서 먼저 나오는 논의 결과를 참고, 존중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즉 정책 철회의 가능성까지 포함해 협의해야 한다. 또, 이러한 과정을 진행하는 동안 국회에서 법안 입법을 강행하거나, 정부가 의대정원 확정을 강행한다면 이는 명백한 합의 위반이다.

이상을 종합하여 판단하면 여당과 정부가 의료계와의 합의를 지키면서 공공의대를 세우고 의대정원을 늘이는 것은 한마디로 매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과 의협,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체결한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합의가 파기될 때에는 당연히 합의의 결과로서 중단되었던 의료계의 단체행동 역시 다시 시작될 것이고 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명분을 갖게 된다는 점도 당연하다.

따라서 필자는 지난 봄에 열린 의협 정기 대의원 총회에서 범투위의 활동을 정리하여 보고하면서 차기집행부와 대의원들께 의협과 더불어민주당과 체결한 '정책협약이행 합의문', 그리고 정부와 체결한 '의정합의문'의 내용과 그 의미, 그리고 중요성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강조하여 말씀드렸다.

혹자는 정책의 '철회'를 명문화하지 못한 합의가 졸속적이며 실패한 합의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지난 수 십년간의 의료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이 커질 때 그것은 단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절대 갑(甲)인 정부가 의사들과의 약속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의 문제였으며 그렇게 신뢰를 깨는 정부 앞에서 의료계가 단결하느냐 못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다시 말해서 정책이 '중단' 되더라도 의료계가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질서정연하게 대응한다면 그 '중단'은 지속될 수 있으나 정책을 '철회'하기로 백번을 약속을 하더라도 의료계가 빈 틈을 보이고 서로 헐뜯고 분열할 때 정부는 철회했던 정책도 다시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2020년 8월 14일. 의료계는 서울 여의대로에서 의대정원 증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를 열었다. 수도권에서만 약 2만 여명의 의사들(예비의사 포함)이 궐기대회에 참여했다. ⓒ의협신문
2020년 8월 14일. 의료계는 서울 여의대로에서 의대정원 증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4대악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를 열었다. 수도권에서만 약 2만 여명의 의사들(예비의사 포함)이 궐기대회에 참여했다. ⓒ의협신문

의사들의 투쟁은 언제나 진행되고 있다. 전면적인 파업투쟁이든 대화와 협상이든 모두 올바른 의료제도를 만들고자하는 투쟁의 일부다. 

필자 역시 한 평생을 의사로 살면서 부당한 제도, 잘못된 환경에 맞서고 선후배와 동료의사들을 지키기 위한 의료계의 단체행동 때마다 누구 못지 않게 의사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비겁하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단 한번도 투쟁을 위한 투쟁은 한적이 없다. 오히려 길거리로 나가 싸우는 의사가 아닌 진료실에서 환자를 치료하며 보람을 얻는 의사이길 언제나 바랐다.

어떤 세대에, 어떤 직역에, 어떤 조직에 속해있든 13만 회원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몸부림쳤던 지난 한해였다고 믿고 싶다. 더이상 서로 상처주고 원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어떤 투쟁이든 앞장서는 사람은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한다. 업적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게 하더라도 스스로를 갈아 넣은 헌신과 노력을 모두 부정하고 인격마저 모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의협의 집행부 교체는 정권교체가 아니다. 의사회 회무에 몸 담아본 사람이라면 협회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회무의 연속성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현 의협 집행부에도 이전 집행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사들이 많다. 누구를 비난하고 원망할 것 없이 과거도 자신의 일부라는 생각으로 어제와 오늘을 딛고 내일로 나가야 한다.

끝나지 않은 싸움, 이길 수도 있는 싸움을 정작 스스로만 이미 졌다면서 포기하고 자학거나 혹은 남탓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의료계 내부의 갈등이 고조되었던 시기에 사약을 마시는 심정으로 범투위를 맡은 필자로서는 의협 집행부가 PA 시범사업, 비급여 보고, CCTV와 전문간호사제 같은 당면한 문제들을 잘 헤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정부와 여당이 공식적으로 선언한 합의에 의해 잘못된 정책을 중단하고 수정하는 것은 물론, 전공의 처우 개선이나 필수의료 지원,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 구조 개선 등 의료계의 여러 숙원을 잘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

부디 내년 이맘 때에는 투쟁 2주기를 맞이한 의료계가 의협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와 직역 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가 되어 의미있는 성과물들을 얻어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