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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교육·상담료 급여 강행...현장에선 혼란·무관심 '혼재'
낙태 교육·상담료 급여 강행...현장에선 혼란·무관심 '혼재'
  • 이승우 기자 potato73@doctorsnews.co.kr
  • 승인 2021.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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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의료계 우려에도 '3만원 수준·일부 본인부담' 급여화 시행
산부인과 "제도개선 요구 묵살하더니...현실 무시한 제도, 실효성 요원"
ⓒ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지난 1일 정부가 인공임신중절 교육·상담료 급여화를 강행했지만, 의료현장에선 제도 시행에 따른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인공임신중절(낙태)을 하지 않는 산부인과에는 교육·상담을 원하는 환자가 찾지 않고, 갑작스런 제도 시행에 혼란스러웠던 산부인과 전문의들이나 의료기관장들은 제도 시행 전과 후로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다만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한 정보에 따라 암암리에 시행되던 낙태수술의 특성상 제도 시행과 상관없이 기존 방식으로 낙태 시술이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계는 낙태 교육·상담료 급여화 제도 시행이 기존 낙태수술 행태에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키기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보건복지부, 낙태수술 20분 이상 교육·상담 급여화 강행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25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에 따라 낙태에 관한 교육·상담을 원하는 임신 여성에게 수술 전 후에 진료실 등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에서 의사에게서 20분 이상의 개별 교육·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비용의 일부를 급여화했다.

구체적인 교육·상담 내용은 ▲낙태수술 전반에 대한 내용 ▲수술 후에는 회복 시 주의사항 ▲피임의 종류 및 계획과 임신 방법 등이다.

교육·상담료는 의료기관 종별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은 3만 650원, 종합병원 3만 180원, 병원급 2만 9710원, 의원급 2만 9240원 등이며, 임신부는 법정 본인부담률 기준에 따라 비용의 30∼60%(의원급 30%, 병원급 40%, 종합병원 50%, 상급종합병원 60%)를 지불하도록 했다.

특히 모든 의사와 의사가 근무하는 의료기관에서 낙태수술 교육·상담료 급여를 청구할 수 있지만, 청구를 위해서는 교육·상당 요청확인서를 작성·보관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요구 시 제출해야 한다. 요청확인서에는 교육·상담에 대한 평가도 포함됐다.

복지부, 산부인과계 제도 개선 요구사항 '묵살'
산부인과계는 제도 시행 행정예고 기간에 ▲낙태수술 교육·상담 요청확인서 작성 규정 삭제 ▲추가교육료 산정 ▲교육시간 단축 ▲상담수가 신설과 수가 재산정 등을 요구했으나, 보건복지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제도 개선 요구사항 중 요청확인서 작성 규정 삭제에 대해 "해당 법안 미개정으로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교육·상담을 원하는 임신 여성에게 정확한 의학정보와 인공임신중절 결정을 위한 실질적인 상담 제공을 위해 필요하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추가교육료 산정 요구에 관해서는 "인공임신중절 교육상담을 요청한 임신여성에게 수술 전과 후에 각각 1회를 초과한 추가 교육 상담은 '반복교육 및 추후관리'에 포함된다"며 역시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교육·상담시간 단축 요구에 대해서도 "인공임신중절 교육시간은 교육시연 결과 30분 이상 소요됐으나, 의료현장 시행에 대한 애로사항을 적극 반영해, 질 높은 교육상담 제공을 위한 최소 교육시간을 20분 이상으로 정한 것"이라며 불수용 입장을 고수했다.

상담수가 신설과 수가 재산정 요구에는 "향후 인공임신중절 허용한계, 교육상담 의무 등에 대한 법령 개정 시 개정 내용을 반영한 세부기준에 대한 추가 검토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산부인과 현장 "낙태시술 실태 몰이해...실효성 떨어질 수밖에"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의사회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제도 시행 공지를 했지만, 회원들의 관심과 반응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부인과계에서 시행령의 몇 가지 독소조항 개선을 요구했지만 보건복지부가 수용하지 않으면서 제도 실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재연 회장은 "급여청구를 위해서는 교육·상담 근거로 요청확인서를 작성·보관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낙태시술을 원하는 임산부는 진료기록 남기기를 꺼려 차트 작성 자체를 거부한다"면서 "(3만원 수준에 일부 본인부담금 부과 정도는) 요청확인서 작성 유인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 낙태를 원하는 임산부는 수술 전, 수술을 위해 교육·상담을 받는데, 모든 의사, 의사가 근무하는 의료기관에서 교육·상담을 허용한 것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연 회장은 "요청확인서에 20분 이상 했는지에 대한 평가 부분이 포함돼 있는데, 20분 교육·상담료는 2∼3만원 수준이다. 이는 의료현장 진료행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며, 교육·상담은 급여화하고 정작 낙태수술은 비급여인 상황에서 제도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상담 급여를 받은 임산부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농후하고, 낙태수술을 하는 의료기관의 정보 역시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밝힌 김 회장은 "2∼3만원 급여비를 받자고 임산부가 꺼리는 요청확인서를 작성하고 급여청구할 의료기관이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산부인과계에는 교육·상담 급여화는 현재 비급여인 수술과 낙태약물에 대한 급여화를 압박하는 수단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지금으로선 다소 판단이 이르지만, 낙태수술 교육·상담료 급여화에 따른 낙태시술 행태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기존 음성적 낙태수술과 불법 낙태 의약품 구매 등 상황이 유지될 것이며,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낙태 의약품 사용에 따른) 불완전 유산, 계류 유산에 대한 회피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낙태수술이 의무화돼 있는 상급종합병원의 낙태시술 및 부작용·합병증 치료 건수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계했다.

아울러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낙태수술을 급여화해 권장하는 나라는 없다. 사회윤리적으로나 의학윤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김동석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장의 문제의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동석 회장은 "지금도 낙태시술을 하는 의료기관에서는 관련 교육·상담을 하고 있는데, (헌법재판소의 낙태수술에 대한 위헌 결정에도 의료법 보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나름대로 타개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무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대로 제도를 시행하려면, 낙태시술에 대한 입법 불비 상황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앞뒤가 뒤바뀐 정책으로 애꿎은 임산부와 의료계에 혼란만 야기하고 있다"면서 "정부의 제도 강행 의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동석 회장은 "교육·상담수가에 관해 의료계와 몇 차례 협의했지만,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제도를 시행하면서 의료현장에서는 혼란과 무관심이 혼재하고 있다. 모든 의사의 교육·상담료 급여 인정과 의사가 근무하는 치과병원과 한방병원의 교육·상담료 인정, 요청확인서 작성 의무화 등은 제도 실효성을 저해하는 요소"라고도 했다.

이와 함께 "출산율을 높이려는 국가 정책기조와도 역행하는 제도를 시행하면서 의사와 의료기관의 행정력 낭비만 유발하고 있다. 형식만 강조하는 탁상행정의 전형이 또 반복되는 느낌"이라면서 "입법 불비부터 빨리 보완하는 것이 순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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