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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칼럼감시와 처벌...팔은 안으로 굽는다?
논설위원 칼럼감시와 처벌...팔은 안으로 굽는다?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1.08.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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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CCTV.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수술실CCTV.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통상 선진국에서는 의사와 같은 전문직의 비도덕적·비윤리적 행위는 자율규제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2021년 7월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회원국 195개 나라가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만장일치로 변경해 명실상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은 국민 여론을 앞세워 자율규제 방식이 아닌  법률로써 의무를 강제화한다. 

전형적인 보기가 최근 의료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수술실 CCTV설치 의무화법이다.  2015년 1월 18대 국회에서 첫 발의됐으니 논의의 역사가 짧지 않다. 이어 2019년 5월 19대 국회에서 다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된다. 두 차례에 걸쳐 폐기되는 운명을 밟은 것을 환자단체와 일부 언론은 '의료계의 반발' 때문이라며 의료계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이 문제를 그리 단순하게 단정지을수는 없다. 

수술실은 개인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공간이다. 정보주체자인 환자와 의료인의 기본권 침해와 진료 위축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가 환자에게 고스란히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와 현실 때문에 미국와 유럽 같은 선진국을 비롯해 지금까지 어느 나라도 수술실 CCTV 설치를 법률로 강제한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가 중요한 권리인 국가에서는 환자비밀유지는 절대적 권리이고 의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직업윤리의 하나로 여겨져 한국처럼 수술실에 CCTV 를 설치하려 이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에 대해서 의아해 하는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데이비드 바버 세계의사회 회장은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을 '조지 오웰 적'이며, "자유시민국가라기 보다는 전체주의 국가적인 사고에 가깝다"고 비판했겠는가. 

세계의사회가 권유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한국의 입법자들이 의사들을 겁박하거나 감시하는 억압적 프레임 대신 개인생활과 의무를 존중하고 전문성과 윤리적 행위를 키워 나가는 자유사회의 정신을 존중하기"이다. 다시 말해 의료질 향상을 위한 포로토콜, 전문적 협력을 통해 의료행위의 안전성을 높이는 등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여당은 8월 국회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법 통과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 여당 대선후보 1위인 이재명 지사가 경기도에서의 수술실 CCTV 성과를 앞세워 여론몰이를 하는데다, 송영길 대표에 이어 윤호중 원내 대표가 반드시 수술실 CCTV 설치법을 해결해야 한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들이 등에 업고 있는 것은 국민여론이다. 최근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 합동조사결과에서 수술실 CCTV 설차 의무화 법안에 대한 찬성이 82%, 국민권익위원회 여론조사에서는 97.9%가 찬성해 절대 다수의 국민이 원하고 있다는 것인데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더욱이 권익위 조사는 5월과 6월에 터진 척추전문병원 2곳의 대리수술 의혹 사례를 직접 거론하며 찬반을 물은 것이어서 이미 정답을 알려준 시험지와 마찬가지였다.  

공중파를 비롯해 많은 언론은 대리수술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의사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켜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도처에 비윤리적 의사들이 만연한 것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니 대다수 국민들이 수술실 CCTV 만이 이러한 사태를 막아줄 해법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 않을 정도다. 그 기저에는 아무리 의사들이 자율정화·징계를 외쳐도 "의사들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너희들에게는 맡길수 없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하지만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실시한 대회원 설문조사에서 확인된 의사들의 자율정화 의지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랐다.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에 90%가 반대한 반면 '비도덕적·비윤리적 행위를 한 회원에 대해 50%가까이가 "면허취소해야 한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40% 가까운 회원은 형사처벌 수준으로 징역형에 처해야 한다고도 했다.  통상 '팔이 안으로 굽는다'며 그동안 정부는 의료계에 면허관리 등 자율정화기능을 맡기는데 주저해왔지만 같은 의사라도 일탈행위를 한 동료에 대해 강력한 처벌로 불법행위를 근절코자 하는 의료계의 자율정화 의지는 어느 때보다 확고함을 보여줬다.

일부의 일탈행위로 입법화의 목전까지 왔지만 설문조사에서 확인된 것 처럼 의료계 스스로도 여론이 여기까지 온 데에 대한 성찰과 책임이 엄중함은 깨닫고 있다. 감시와 처벌이라는 억압적 기전은 막대한 기회 비용을 치를수 밖에 없다. 의사도 사람인 만큼 감시기구가 항상 작동되는 상황에서 소신있는 진료보다는 '방어적',  '수동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8월 국회에서는 기필코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는 입법자들이 환자 안전를 위한 사회적 공익을 달성하는 방법이 수술실 CCTV라는 억압적 수단만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명심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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