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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도 '가스라이팅' 피해자? 서울의대 교수에게 듣는 '위험 신호'
인터뷰 나도 '가스라이팅' 피해자? 서울의대 교수에게 듣는 '위험 신호'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1.06.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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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권준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신적 학대의 일종"
수직적·긴밀한 관계에서 많이 나타나…의심 상황 땐 '이렇게'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의협신문 홍완기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의협신문 홍완기

나를 믿지 못하겠다? 자꾸 나를 의심한다?…"가스라이팅 위험신호일 수 있습니다"

'가스라이팅' 타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정해 그 사람의 현실감이나 판단력을 잃게 하면서 타인을 통제하는 것을 뜻한다.

조금은 섬뜩한 이 용어는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의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했다. 연극에서 남편은 아내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후 온갖 속임수와 거짓말로 멀쩡한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고 간다.

해당 용어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최근 한 연예인 커플 사이에 일어난 스캔들 때문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이 '가스라이팅'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큰 화제가 된 것이다.

[의협신문]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가스라이팅 현상과 관련, 정신의학적 견해를 듣고자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를 만났다.

권준수 교수는 가스라이팅에 대해 먼저 "언론이나 일반인들이 자주 이야기하지만, 특정한 병명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신 병명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이는 단지 현상으로, 보통 심리학에서 쓰인다. 대개 친밀한 관계인 가족, 연인, 친구 사이에서 많이 나타날 수 있고, 이외 군대, 직장 등 수직적인 권력 관계에서도 발현될 수 있다.

권준수 교수는 "수직적인 권력 관계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누군가를 통제하고 억압하려고 할 때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라며 "이번 스캔들처럼 연예계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짚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직적 조직문화나 군기 문화는 가스라이팅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약자가 휘둘릴 확률이 수평적 문화에 비해 더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친밀하면서도 수직적 관계인 '아동학대' 중 이러한 케이스가 발견되기도 한다.

권 교수는 "이러한 케이스는 아이를 격리해놓고, 학대하면서 '네가 잘못해서'라며 아이의 잘못으로 돌린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조작하면서 심리적인 이득을 취하는 형태"라고 전했다.

이어 "보통 가해자는 '피해자를 위해서'라는 식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세뇌'로 인해 보통은 피해자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피해자들은 자존감과 판단 능력을 잃게 돼 점점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의협신문 홍완기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의협신문 홍완기

가스라이팅은 정식 병명이 아니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으로 병원에 오는 일은 없다. 다만, 피해자가 불안증이나 우울증 등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상담 중 이러한 현상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권 교수는 "가해자는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보통 우울증, 불안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게 될 확률이 높다"면서 "반면 가해자는 소시오패스(sociopathy)나 자기애적 성향(나르시시즘)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가해자는 상대방의 심리를 조정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이득을 취하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가스라이팅의 위험신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권 교수는 "피해자가 가스라이팅에 점점 빠지게 되면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된다.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가해자의 생각에 동조하게 된다"며 "결국엔 멀쩡한 자신을 의심하고, 모든 잘못을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보통 심리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많다"고 정리했다.

이어 "가까운 사이에서 지나치게 우월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비난하거나 어떤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을 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 또 지나치게 타인을 통제하려는 경우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가스라이팅'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스스로 객관화하는 방법, 그리고 가해 의심자와 거리를 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 교수는 "만약 가스라이팅이라는 생각이 들 때에는 그 사람과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며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사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가스라이팅은 일종의 정신적 학대 (emotional abuse)에 해당한다"면서 "이에 아동학대처럼 예방 대책이나 처벌 등 제도적 보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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