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5-28 19:05 (화)
보험업법 개정안을 향한 질문들

보험업법 개정안을 향한 질문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06.07 06:00
  • 댓글 1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재 의협신문 기자 ⓒ의협신문
이영재 의협신문 기자 ⓒ의협신문

국민 편의를 내세워 민간보험회사의 이익을 대변하고, 진료정보를 집적해 의료기관을 옥죄는 데 악용할 소지가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환자 정보 유출·의사-환자간 불신 조장·불필요한 행정력 낭비·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개입 부당성·4차산업 위축 초래 등 갖가지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지만, 쏟아지는 의료계의 우려는 철저히 외면당한다. 

개인과 민간보험회사 간의 계약에 왜 제3자인 의료기관을 끼어들이려 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사안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왜곡된 채로 개악적인 법안 발의가 지속되고 있다. 

의료계는 왜 보험업법 개정안에 반대할까? 

먼저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전재수·김병욱·정청래 의원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5개의 '보험업법 개정안'의 실체부터 톺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 보험업법 개정안은 의료기관이 환자의 진료 내역 등 진료기록을 전자적 형태로 민간보험회사에 전송토록 하고, 전문중계기관에 전송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의료계는 반강제적이고 불합리한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도 아니고, 해당 계약으로 인해 어떤 이익도 없는 의료기관에 행정규제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의 진료 정보를 외부로 전송하면 민감한 환자 진료정보의 집적과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빚어지는 의사-환자 간 신뢰관계 훼손은 가늠키 어렵다. 

심평원의 개입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굳이 공공기관이 부적절한 업무 확장을 통해 민간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환자의 진료정보를 들여다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료정보 집적화를 통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공공보험인 건강보험에서 운영비를 지원받고 있는 심평원이 왜 민간보험회사를 위해 총대를 메려 할까?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실손보험 심사에도 눈독을 들이는 것은 아닐까. 

폐해는 이미 확인됐다. 심평원은 지난 2013년부터 민간보험회사의 자동차보험 심사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면서 무리한 급여기준을 설정하고, 잦은 삭감으로 원성을 사고 있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은 충분한 진료를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민간보험회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건강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형국이다.

건강보험·자동차보험에 실손보험 비급여 내역까지 손에 쥐게 되면 갖가지 심사권력의 부당한 올무에 갇힌 의료기관은 존폐 기로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결국 원하는 게 이런 것일까? 

비용 문제도 있다. 개정안에는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구축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관리·보존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다. 보험계약과 아무 관련 없는 의료기관에 강제로 행정업무와 비용까지 부담토록 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법적인 규제까지 하겠다는 발상이다.

영세한 의원급 의료기관에 행정부담까지 떠 넘기는 것도 문제다. 의료기관은 의료를 수행하는 곳이다. 불필요한 행정력에 낭비할 인력도 없다. 

환자의 민감한 진료정보 유출 문제는 심각성의 무게를 더한다. 

진료기록은 주민번호·주소 등 기본정보 외에도 민감하고 예민한 개인정보를 담고 있어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진료정보를 전자적으로 외부에 전송하고 관리하고 축적하는 과정에서 유출 우려가 높고, 원치 않는 정보까지 심평원과 민간보험회사에 넘어갈 수 있다. 진료정보가 유출될 경우 환자의 피해는 물론 의료기관·중계기관·보험회사 간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정보 주체의 동의는 기본이다. 기술적·관리적 안전 조치는 물론 목적 외 이용이나 제3자 제공 시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언제든지 정보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또한 보장해야 한다.

거대한 민간보험회사는 또 어떤 '기술'을 발휘할까?

과연 전자적으로 수집한 진료정보를 '청구 간소화'에만 사용하려고 할까. 보험 가입·갱신·지급 거부·상품 개발 등에 활용하려는 것은 보험업계의 오랜 숙원이다.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는 자신의 정보를 제공한 의료기관을 비난하게 되고,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할 의사-환자의 라뽀는 허물어지게 된다.

'청구 간소화'가 이유라고 하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선 민간기업의 핀테크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다. 기껏 기술을 개발했더니 외면하는 꼴이다. 

보험업법 개정 이유로 '4차산업 시대 디지털 기반 IT 활용한 통한 국민 편익 개선'을 내세우지만 정작 4차산업 발전의 주춧돌인 IT 기업에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주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사회는 '공감'과 '설득'으로 진보한다. 법부터 만들자는 입법만능주의 발상은 소모적 논쟁과 상처만 남긴다. 누구에게나 하지 않아도 될 '의무'를 강제하려면, 먼저 명확하고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원치 않는 주인공으로는 무대의 막을 올리지 못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