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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 문제로 규제한 한약재 '세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안전성 문제로 규제한 한약재 '세신'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3.1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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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지난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세신'을 포함하는 일반의약품 11개 제품에 대해 제조 및 판매를 중지시키고 회수조치했다. 식약처는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안전성 평가 연구사업 과정 중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등의 독성시험기준 및 OECD 국제 독성 가이드라인에 따라 '세신'에 대한 독성시험 결과 일부 간독성 등이 관찰됨. 독성시험 및 위해성 평가 결과에 대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자문 결과, '세신 분말'이 인체 위해 우려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해당되는 제품은 거풍지보단과 거창만령단 처방의 환제이다. 거풍지보단 제품들은 '중풍, 혼모(머리가 맑지 않음), 풍열', 거창만령단 제품들은 '중풍증·편두통·관절신경통·견비통·골절통·요통·근육통·산후풍증·좌골신경통·류마티스관절염·안면신경마비증·수족신경마비증·수족냉각증'을 효능으로 기재하고 있다. 안전성도 문제이고, 효과 또한 검증한 적 없는 있을법하지 않은 주장이다.

어떻게 시판 중인 의약품이 간단한 독성시험에서 위험성이 발견되는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 의약품 허가를 위해서는 전임상시험 및 임상시험을 통한 안전성 유효성 근거가 필수적이지만 한약재들로 구성된 한약제제는 검증 없이 허가시켰기 때문이다. 한약제제는 의약품허가의 근거가 실험이나 임상시험 데이터가 아닌 동의보감 등 10종의 '기존 한약서'이다.

세신은 민족도리풀 또는 서울족도리풀의 뿌리와 뿌리줄기인데, 이들이 속하는 쥐방울덩굴과(Aristolochiaceae) 식물은 치명적인 독성으로 악명이 높다. 1990년대 초에 쥐방울덩굴과의 한약재인 광방기가 벨기에에서 다이어트 제품에 사용되다 100명이 넘는 피해자들에게 치명적인 신장 손상을 발생시켰고, 문제의 원인이 된 아리스톨로크산(aristolochic acid)은 신장암을 일으키는 강력한 발암물질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사건으로 위험성이 알려지자 과거부터 한의학을 활용해온 중국·한국·일본 등에서도 한약의 아리스톨로크산으로 신장 손상이 연이어 보고됐다. 

이후 여러 국가에서 광방기와 마두령 같은 근연종의 식물들의 사용을 금지시켰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뒤늦게 2005년이 되어서야 유통을 금지시켰다. 그때까지 한의사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이 한약재들을 사용하고 있었고, 제약회사에서도 마두령을 원료로 하는 한약제제를 만들어 판매했다. 동양인들은 유럽인들이 가르쳐줄 때까지 위험성을 모르고 해로운 물질에 노출되어온 것이다.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의협신문
그래픽/윤세호기자 seho3@kma.org ⓒ의협신문

세신은 규제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그런데 2017년 대만 연구팀이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발표한 연구에서 대만과 아시아 지역의 간암 환자들의 암세포에서 아리스톨로크산으로 인해 발생하는 특징적인 돌연변이를 검사했더니 대만 78%, 중국 47%, 한국 13%, 일본 2.7%에서 확인됐다. 저자들은 대만에서 2003년에 광방기, 마두령 등의 한약재 사용이 금지됐음에도 높은 비율로 돌연변이가 발견되는 원인에 대해 규제에서 빠진 세신이 원인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2013년 생약학회지에 발표된 한국한의학연구원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국내 유통 세신에서도 아리스톨로크산이 검출됐다. 

세신은 치명적인 아리스톨로크산 외에도 간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이자 간독성이 있는 사프롤(safrole) 같은 독소도 지니고 있다. 위험성은 이미 경고되어 있는데 무관심하던 정부가 이제 와서야 무언가 실험을 하더니 사용을 조금이나마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제약회사에서 세신을 분말로 활용하는 의약품 제조에만 국한됐기 때문에 한의사들이 세신을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본초학 공동교재 편찬위원회가 2020년 출간한 <본초학> 교과서에 세신에 대한 설명을 보면 세신의 독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고, 한의학적 금기증과 과다하게 사용하면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증상 정도의 설명만 있다. 한약을 다루는 본초학 교재를 보면 독성과 위험성에 대한 설명이 매우 부족하다. 한의사들이 한약재들의 위험성을 알고 신중하게 사용하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자기들도 현대의학 배운다면서 의사의 영역을 침범할 궁리만하지 말고 한의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한의사들은 한약이 오랜 기간 사용되어왔고 천연 물질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교육이 부실하다고는 해도 진심으로 믿는 한의사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몰상식한 주장에 국민이 속는 이유는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우리나라에서 한약이 안전해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성 검증이 없고 부작용 집계도 없기 때문이다. 한약의 위험성을 나타낼 수 있는 자료는 없고 한의사들의 엉터리 주장만 보도되다보니 국민들은 한약이 안전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국민의 건강보다는 일부 집단의 돈벌이를 보호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정부를 둔 국민들은 한약은 효과를 입증한 적이 없고 위험할 수 있다는 상식을 기억하고 스스로 조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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