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기억이 길이 되다
[신간] 기억이 길이 되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02.16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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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지음/시하기획 펴냄/비매품

별로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살아온 인생이 벌써 칠십이라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이 참으로 절실하게 느껴진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는데, 어느 덧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 그 여생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해 봐야 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기회는 기다리지 않는다>(2000)

이 책의 마침표를 찍은 이 순간 나 또한 인생의 마침표가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이다. 그러나 나는 내일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꿈꿀 것이다.
-<끝은 생각하지도 마>(2007)

아흔의 노옹은 아직 현역이다. 그리고 일흔 중반의 다짐과 같이 내일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꿈꾸고 있다. 그 꿈이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꿈이기를 바라면서…. 

중보(中甫)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이 회고록 <기억이 길이 되다> -남기고 싶은 아흔 가지 이야기-를 상재했다.

회고록에는 아흔 해를 살아오면서 보고 느끼고 소망한 햇수만큼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낡은 앨범 속 흑백사진 처럼 마음 속 간직한 이야기들과 흩어져 조각조각 떠오르는 기억들의 모둠이다.

이 모둠이 힘겨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 한 켠에 남아 또다른 기억으로 새겨지길 소망한다. 

1957년 보령약국 창업 이후 64년, 1966년 보령제약 창립 이후 55년이 흘렀다. 중보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밴 시간이다. 

회고록의 테제는 '길'이다.  

'길을 나서다'가 시작이다.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육군 중위로 예편하기까지 삶이 되고, 의미가 된 순간순간이 갈무리된다. 

▲'하여튼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기억이 길이 됩니다 ▲풀 한 포기에도 간절함이 담긴 이름이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운명은 없다 ▲몸이 느려지니 보이는 풍경이 많고, 마음이 초조하지 않으니 갈 길이 보입니다 ▲그 어떤 전투보다 더 치열할 또 다른 나만의 작은 전쟁터, 종로5가로 향하다 등 열 여덟 편의 이야기가 옮겨진다.

두 번째는 '길을 만들다'.

스물 여섯 나이에 창업한 보령약국은 '고객만족'과 '신뢰'가 자산이 됐다. 중보는 직접 자전거로 약품을 배달하며 성실함으로 소중한 두 가지 가치를 이어갔다. '반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보령제약의 주춧돌을 놓는 시간이었다.

▲'약'이 내게 말을 걸어오던 날 ▲고향 지명과 회사 이름-'보령' 약국의 마음 ▲약국은 돈만을 버는 곳이 아닙니다 ▲환자의 마음이 되어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삶은 고단하지만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일은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원칙을 지키면 반칙이 없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입니다 등 열 아홉 편의 이야기를 통해 약을 파는 일에서 약을 만드는 일로 새 길에 들어서는 과정을 옮긴다.

다음은 '길을 넓히다'이다.

중보는 보령약국에서 보령약품주식회사(1963)에 이어 보령제약주식회사(1966) 창업에 이르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기회'을 찾아 헤쳐나가고, '인류의 건강을 위해 기여하는 기업'을 향한 발걸음을 뗐다. 국산 의약품에 대한 막연한 불신은 신뢰를 얹었을 때 확신으로 바뀐다는 진리를 실천하고 경험하며 국민의 마음을 얻어갔다. 소심함은 행동해야 할 때 하지 않는 것이고, 신중함은 행동해야 할 때를 기다리는 인내라는 지론으로….

▲팔지만 말고 만들자 - '약국'을 넘어 '제약'으로 가는 길을 보다 ▲어떤 대규모 제약회사 부럽지 않은 초라한 제약사의 놀라운 저력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릴 수 있어야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을 향한 첫 비행 - 더 높은 곳 더 먼 곳으로의 비상 ▲우리를 보는 고객의 눈은 달라져도, 고객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등 열 네 편의 이야기들은 최우선의 가치를 '고객'으로 삼은 보령의 뿌리를 느끼게 한다.

네 번째는 '함께 걷다'.

40대 중반 이후 세대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광고문구가 있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대표적 스테디셀러인 용각산·겔포스 등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함께'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이 닥친 고난의 시간은 곁이 되어 준 국민과 구성원들이 힘이 됐다. 보령제약은 1988년 10월 24일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며 기업을 공개했다. 국민기업의 시작이었다.

▲우리 광고는 큰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큰 목소리가 담겼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갈 길 ▲공장이기 이전에 젊음과 열정이 넘치는 캠퍼스 ▲'호사다마'는 없습니다 ▲그냥 이겨낼 수 있어도, 함께 이겨내야 진정으로 이긴 것입니다 ▲과거가 있었기에 미래가 있습니다 등 열 여섯 편의 이야기에는 지나치지 말아야 할 곳을 지나치지 않았던 관심과 끊이지 않는 중보의 열정이 숨쉬고 있다.

이젠 '길을 잇다'가 펼쳐진다.

국내 항암제 시장의 최고 자리를 이어오는 연유는 인류 건강에 기여하고자 하는 '보령의 마음'에서 찾는다. 암학술상·의료봉사상·수필문학상 등 제정을 비롯 각종 사회 참여를 통해 세상과 교류하고 있다. 

"마음을 연 대화는 닫힌 마음을 엽니다.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그 대화는 어느덧 노래가 됩니다."

모든 것의 그루터기가 된 중보의 마음이다.

▲직원 생일을 축하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인류가 암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날이 진정으로 1등이 되는 날입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회장 직함보다 자랑스러운 '카나브 PM' 명함 등 열 여섯 편의 이야기가 차려진다. 

"마지막 날까지 마음을 열고 소통하렵니다."

중보의 노랫가락이다.

마지막은 책제와 같은 '기억이 길이 되다'.

왜 그의 기억은 길이 됐을까. '사람이 곧 미래', '양보는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라는 돋을새김 속에 '잊지 말아야 할 일을 잊지 않을 때' 기억은 길이 된다. 그리고 그 길은 또 다른 길을 만든다. 

▲아름다운 그들과 함께 한 기억과 길 ▲보령의 줄기를 이루는 가지와 뿌리들이 있기에 우리는 얼마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가 ▲보령가족들이 함께 나누는 사내진미(社內珍味) ▲저 세상에서 만나, 허름한 가게 하나 얻어 다시 동업을 하고 싶습니다 - 창업 동지 아내를 생각하며 등 아홉 편의 이야기는 '혼자서 빨리가기 보다 함께 멀리가고 있는' 보령인들의 숨결을 품는다.

아흔 편의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삶의 지표가 된다. 

중보는 늘 사람이 먼저이고 미래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응원한다.

"이 책의 마침표를 찍은 이 순간 나 또한 인생의 마침표가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일도 '여러분'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꿈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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