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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맹광호 명예교수의 의사의 길-(3)시골 의사
맹광호 명예교수의 의사의 길-(3)시골 의사
  • 맹광호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예방의학)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2.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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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대 졸업자 시골 의무복무(義務服務) 단기적이고 비효율적
일하고 싶은 지망생이나 시골 생활 원하는 퇴직 의사 지원해야
ⓒ의협신문
ⓒ의협신문

20세기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문학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소설 가운데 <시골 의사>라는 단편이 있다. 시골에 파견된 고령의 의사가, 눈보라 치고 칠흑 같이 어두운 밤, 10마일(40리) 이나 떨어진 곳으로 왕진을 다녀오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과 그의 독백이 담긴 글이다. 이 소설 또한 카프카 소설 특유의 우울함과 부조리한 상황들 속에 펼쳐지지만, 그러나 결국은 그 우울함과 부조리를 뛰어넘는 희망적 삶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야간용 벨을 이용해서 밤마다 나를 괴롭히며...", "불가능한 일은 언제나 의사에게 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나를 부려먹고 있지만… 나는 적은 수입에도 불구하고 의사로서의 내 의무를 다 하기 위해 모든 고통을 감수할 뿐이다"라고 독백하는 늙은 의사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그에 대해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응급상황도 아닌, 게다가 매우 비협조적인 한 소년환자를 진료하면서, 의사는 의무에 충실한 삶만큼 자신의 개별적 삶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역시 시골의사는 잠시 '시골에 가서 일하는' 의사가 아니라 시골이 좋아 '시골에 사는 의사'여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작가답게 카프카는 '던져진 삶'의 무익함을 강조한다.

사실, '무의촌'으로 불리는 의료소외 지역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또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무의촌이 있고, 그래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라마다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일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반적으로 의사들이 왜 농어촌 지역에 가지 않는지, 그런 중에도 시골에 남아 의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그 특성을 조사 분석해서 결과를 활용하는 일이다. 

산업화, 도시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을 보면, 시골의사는 도시의사와 여러 면에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시골의사들은 그곳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경우이고,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기들이 태어나 자란 고향을 위해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서구 선진국들에서는 시골의사를 확보하는데 있어서 이런 연구 결과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의학을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하는 지방학생에게 그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학자금을 지원하고 졸업 후 고향에 내려와 꿈을 실현하게 한다거나, 도시에 살던 의사들 가운데 노후에 시골에 내려가 환자를 진료하며 살고자 하는 의사들에게 보건소나 보건지소 같은 곳에 진료공간과 시설을 마련해 개업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해 주는 경우가 그 좋은 예다.  

지난해 전국을 뒤 흔들어 놓은 소위 '공공의대' 설립 계획 법안이 금년 국회에서도 다시 발의될 가능성이 높다.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를 경험한 정부로서는 이 일이 소위 공공의료기관의 의사 부족이나 무의촌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의무복무'(義務服務)다. 공공의대를 졸업하는 의사들에게 공공 보건의료기관이나 무의촌에서 일정기간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의료소외 문제 해소 방안을 보면, 이 '의무복무'라는 방법에 매우 익숙해 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까지 월남 전쟁이 크게 확대되는 시기에 미국 젊은 의사들이 군의관으로 월남에 파견되는 동안, 부족한 의사인력 확보를 위해 미국이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사들을 대거 받아들인 적이 있다. 이 때 한국 정부는 미국에 가려고 하는 의사들에게 3년씩 무의촌 '의무복무'를 조건으로 한 일이 있다. 그 뿐만 아니다. 1979년 관련법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공중보건의사'라는 이름으로 군 복무를 대신해서 무의지역 보건의료기관에 역시 3년간 근무토록 한 일 또한 그 좋은 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으로 나가는 의사들에게 농어촌지역 의무근무를 요구할 수도 없으며, 의대 졸업생들 중 남자의사 비율이 급하게 감소해 가면서 공중보건의사 제도 또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저런 단기적이고 비효율적인 의료인력 양성이나 배치 방법을 버리고 좀 더 장기적이고 순리적인 방법으로 의료소외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다.

애초부터 시골의사 생활을 원치 않는 의사들을 '의무적'으로 시골에 가도록하는 정책을 펴기보다는, 시골 고향 마을을 사랑하고 그곳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싶은 의사 지망생이나, 퇴직 후 시골생활을 원하는 의사를 찾아 이들을 지원하는 등, 보다 '순리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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