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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4:11 (금)
김상희 의원 '천작위복(擅作威福)' 우를 범하지 말아야
김상희 의원 '천작위복(擅作威福)' 우를 범하지 말아야
  •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12.0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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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받을 국민 권리 제한...의료분쟁조정법 '조정·중재' 제정 취지 어긋나
진료 역효과·의료인 업무 가중...중진의원 답게 보건의료 발전 위한 입법 힘쓰길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전라남도의사회장)

지난달 17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피신청인(의료기관, 의료인)이 조정신청에 응하지 않는 경우 그 사유를 반드시 서명으로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기간내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 바로 강제적으로 조정절차에 들어간다'라는 요지의 피신청인 조정 불응사유 관련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김상희 의원은 개정안의 제안이유로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에 응하는 의사를 통지하지 않아 조정신청이 각하되는 경우, 분쟁조정을 신청한 당사자가 의료기관이 조정신청에 응하지 않는 사유조차 알지 못한 채 각하통지를 받게 된다며, 신청인의 향후 대응방안 선택에 참고가 되도록 의료기관이 조정신청에 불응하는 사유를 밝혀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피신청인이 조정신청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사유를 조정신청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서면으로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만일 14일 이내에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에는 강제적으로 조정절차에 들어가도록 하고 있다(안 제27조).

이 법안은 다음의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법은 분쟁조정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분쟁조정법 제1조(목적)에는 "이 법은 의료분쟁의 조정 및 중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공정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 분쟁 당사자간에 균형 잡힌 중재를 위해 제정된 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정안과 같이 의료기관이 조정에 응하지 않는 사유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미제출시 조정절차를 강제적으로 개시하도록 하게 되면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균형이 깨져 신청인이 피신청인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무차별적으로 악용하게 될 것이다.

현행법은 의료분쟁의 당사자가 조정중재원에 분쟁의 조정신청을 하면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고자 하는 의사(意思)를 통지하는 경우에만 조정절차를 개시하도록 하고 있으며, 신청인이 사망 또는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이거나 중증 장애인인 경우가 아니라면 해당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조정신청이 각하된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이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감정완료한 분쟁건의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 현황에 대한 자료(의료사고 예방 소식지)를 보면 전체 감정완료 4093건 중에 악결과와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감정한 건수는 21.1%(863건)에 불과하다. 그런데 피신청인이 무조건 조정에 응하도록 강제하게 되면 신청인이 분쟁조정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가지고 무분별하게 조정신청을 할 개연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의료인은 환자 진료는 뒷전이고, 분쟁조정중재에 매달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분쟁의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진료기록부는 현행 의료법령에 따라 신청인측이 원하면 언제든지 열람·복사가 가능하고 의료기관도 제출의무가 있다. 본 법안에서 제안이유로 주장하는 환자에게 '최소한의 정보 제공' 차원을 넘어 이미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 조정거부(불응)의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피신청인이 조정을 거부하였음에도 강제로 조정을 개시하도록 한 개정안(안 제27조 9항)은 분쟁조정이 재판에 앞서 당사자들의 선택에 따른 임의적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근본적인 법 취지에 맞지 않다. 

조정(調停)제도는 소송을 대신하여 당사자간의 협상을 통한 대안적 분쟁해결 방식이다. 그런데 어느 일방이 조정의사가 없음에도 소송(재판)이 아닌 조정절차를 강제 한다면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27조제1항)고 명시하고 있는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를 크게 제한하는 악법이 될 것이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 효헌황제(孝獻皇帝, 181∼234년)는 정치군사적으로 유약하여 황제의 권한을 사실상 조조에게 내어준 채 조조의 보호를 받으며 목숨을 연명하며 살았다. 어느날 황제를 대동하고 사냥을 간 조조가 문무백관이 있는 자리에서 황제를 능멸하자 황제는 궁으로 돌아와 자신의 굴욕스런 마음을 아내인 복황후에게 이르기를 조조가 "천작위복(擅作威福, 권력을 남용하여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음)"하고 있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국회의원은 권력을 휘두르고 국민을 혼내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다.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지금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각종 행정규제로 인해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4선 국회의원인 김상희 의원이 '천작위복'의 태도로 정치적으로 힘도 능력도 없는 의료인들 혼내기에 몰두할 일이 아니다. 여당 중진의원답게 국민에게 진정 도움이 되고 보건의료발전에 도움이 되는 입법활동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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