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사인력의 20%를 키우는 한의과대학
국가경제·의료비 절감 위해 영세 대학·부실 교육 사라져야
미국·일본 인구대비 의대 수 고려하면 한국 31개 의대 적정
이무상 연세의대 명예교수는 1970년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1977년 전문의 자격을 받았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장과 연세의대 비뇨기과학교실 주임교수를 지냈으며, 연세의대 의학교육학과장을 맡기도 했다.
의협 학술이사·(재)한국의학원 이사·대한의학회 수련이사·부회장·감사를 거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2007∼2010년) 등을 맡아 의학교육과 의대 인정평가의 틀을 구축하는 데 앞장섰다. 의학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외길을 걸어온 이무상 명예교수가 의과대학 신증설 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3회에 걸쳐 이무상 명예교수의 칼럼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폐교된 서남의대 지역에 공공의대 신설, 전국 의대 입학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해 내년도 졸업예정인 의대생들이 의사면허시험 응시 철회로 저항했다.
이로 인해 정책을 일시 중단한 정부·여당은 이들에게 응시기회를 재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권력을 쥔 정부·여당이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전형적 갑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의사밀도가 OECD 평균에 못 미친다며 곧 큰일이 날 것처럼 여론을 오도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앞뒤가 맞지 않는 정부·여당의 주장이 최근에 너무 많다. 우리의 의료접근성은 세계 최고라고 세계가 인정하고, 문케어를 자랑하는 정부·여당도 인정하는데, 의사 부족이 심각한데 어떻게 가능한지는 설명이 없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맞지 않는 행태는 현 정권에서 특히 반복되는 것 같다.
현재 의사·한의사 양성 대학이 한국에는 서남의대 폐교로 현재 52개(의대 40개, 한의대 12개)가 있고, 미국은 최근 20년에 의대가 급증하여 195개교(2019학년도 졸업생 배출 기준 : MD과정 157개교, DO과정 38개교), 일본은 1979년 이후 항상 80개교(2020년 : 자위대 의과대학을 포함하면 81개)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은 1차적으로는 세계 최상위권 인구밀도의 원인이 되는 좁은 국토 덕분이다. 물론 한국 특유의 건강보험과 의료비 지급제도의 덕도 있다. 우리나라는 의사밀도가 OECD 평균에 못 미친다. 그 의사밀도 산출의 기본 자료는 의사와 인구의 수이다. 그런데 의사 수보다 더 기본이 되는 자료는 바로 의사양성 교육기관 수이다. 그래서 의사·한의사를 양성하는 대학의 수와 그 입학정원을 인구 대비로 검토해 본다.
'영세 의대'가 많다
OECD에는 인구 왜소국이 많고, 국가 간 GDP 편차도 크다. 그래서 OECD는 선진국 모임이 아니며, 모든 나라를 포함한 OECD의 단순 평균 통계는 그 의미가 적다. G2 중국의 개인별 GDP가 의미가 적은 것과 같다. OECD 37개 회원국에서 속칭 30-50 그룹(인구 5000만명 이상, 개인별 GDP 3만달러 이상)인 7개국(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뿐이다.
이 7개국 중 정치·경제·문화·의료·기타 등 모든 면에서 우리와 유사하고, 흔히 모델로 삼는 나라는 아무래도 미국과 일본이다. 물론 우리는 미국과 일본의 GDP보다 못하나, 유럽 4개국(EU 회원국으로 자본·기술·인력의 자유 교류) 보다는 모든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미국·일본의 인구 수와 의대 수를 OECD 자료로 비교하면 (표1)과 같다.
한국은 인구 100만명에 1개 의대가 있다. 그런데 미국은 우리보다 국토면적이 98배 넓은데도 167만명에 1개 의대이고, 일본은 우리보다 3.8배가 넓은데도 158만명에 1개 의대이다. 미·일이 모두 인구 160만명 전후에 1개 의대이다. 우리보다 땅이 무척 넓은데도 60만명이 많다. 만약에 한국이 미국의 인구대비 의대 수 수준이라면 한국에는 31개 의대가 있어야 한다. 또 일본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31개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미국·일본보다 의사양성 의대를 20개 이상을 더 갖고 있다. 이것은 한국 1개 의대당 입학정원이 미·일보다 적다는 뜻이며, (표2)를 보면 실제로도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2)는 2019학년도 한국·미국·일본의 전국 의대 입학정원을 비교한 것이다. 미국은 정부인가 입학정원 제도가 없어 각 대학의 신입생을 기준으로 하였다. 미국은 2019-2020학년도에 154개 MD학교에 2만1869명의 신입생이 입학하여 학교당 142명으로 한국의 1.9배이다. 미국은 DO를 포함하고 한국은 한의사를 포함하여 비교하면 2.1배이다.
단일 의사(MD)만 양성하는 일본은 입학정원 기준으로 2019학년도에 81개교(자위대 방위의대 포함)에 9,420명(2007년 정원은 7,625명이며, 2008년부터 매년 소수 증원하여 2018년에는 9,419명, 2019년에 9,420명으로 2007년 대비 1,555명이 늘었다)이 입학했다.
최소 90명(90명대가 3개교)에서 최다 140명으로 편차가 극히 적어 학교당 104명으로 우리나라보다 1개 MD 학교에 42명을 더 많이 교육하고 있다. 즉 미국·일본 모두 한국보다 의사를 경제적으로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는 속칭 '영세 학과(零細學科, petty depart, 학부 학생 수가 적은 학과의 속칭이다. 보통은 10∼20명 미만의 입학정원으로 대학행정과 경영면에서 부담되는 학과를 뜻한다. 의학과·한의학과는 보통 입학정원 40명 전후를 영세하다고 본다)'라고 하는 의사·한의사 양성대학은 14개교(의대 10+한의대 5)로 전체 의과대학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인가정원이 40명인 의대는 10개(가천·건국·단국·대구가톨릭·성균관·아주·울산·을지·제주·차)이며, 한의대는 가천(30명·성남)·동신(40명·나주)·부산(학사 25명·석사 27명, 양산)·세명(40명·제천)·우석(30명, 전주) 등 5개다.
더구나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 모두가 있는 대학은 5개 대학(경희·동국·원광·부산·가천)이고, 이중 2개 대학은 '영세 대학'이다. 대학교에서 영세학과는 대학행정에 큰 부담이다.
특히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의과대학에는 학생 수에 상관없이 자국민을 위한 의사의 질을 일정하게 담보하기 위해서 일정 수의 교수와 일정 수준의 시설 설비를 반드시 갖추기를 어느 학문 교육보다도 강조한다. 그래서 세계의 고등교육 역사에서 의학교육 분야에서 인정평가(accreditation)가 가장 먼저 생겼고, 발전한 것이다.
한국의 고등교육에서도 의학교육에서 가장 먼저 인정평가를 시작했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인정평가를 제대로 하는 국가에서는 의과대학 졸업장이 곧 의사면허가 되거나, 아니면 수차례 의사면허시험을 시행하더라도 합격률(90% 전후)이 높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에 2개의 의학전문학교와 현재와 같은 의과대학(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등 3개교의 졸업시험은 곧 의사면허시험이다. 별도의 면허시험이 따로 없다. 그만큼 의사양성교육에서는 인정평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든 나라에서 의사양성 교육비는 상대적으로 비싼 것이다. 그래서 의학교육에서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표2)에서 보듯이 미국과 일본은 이를 실천하고 있다.
영세의대가 많다는 것은 한국의 의사·한의사 양성 교육비가 미국·일본보다 상대적으로 고비용이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부실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50년 전에 이미 '영세의대'의 부작용을 많이 경험한 일본은 의과대학 신설을 하지 않고 현존하는 각 의과대학의 입학정원을 조정해 의사 수 증감을 시행했다. 일본은 류쿠(琉球)의대(1979년 신설)를 끝으로 현재 80개 의대이다. 류쿠의대 신설 3년 후인 1982년부터 감원을 시작하여 1990년대 중반에 7,000명대 중반에 이르고, 다시 2008년부터 증원하다가 심각한 부작용을 경험하고 2022년부터 다시 감축하기로 결정했다[8,280명(1981)→7,625명(1996)→8,846명(2010)→9,420명(2019)]. 일본은 대학간 입학정원 편차가 극히 적다. 즉, 경제적인 관리를 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도 국가경제 측면에서, 그리고 의료비 절감 차원에서 의대·한의대를 막론하고 학교 수를 줄여야 한다. 더 이상 '영세 의대'의 부실 교육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