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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노조설립 가시화

전공의 노조설립 가시화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3.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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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첫 노동조합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8월 열린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전공의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을 올해 말까지 설립할 것이라고 선언한데 이어 다음달 1일 정기총회를 통해 노조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전에도 전공의노조 설립에 대한 논의는 간간히 있어 왔지만 이번 설립안 발표에서는 노조의 성격과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 제시돼 있고 법률적인 검토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져 첫 의사노조 출범의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전공의들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 대전협 집행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중·소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들과 대학병원 보직교수들은 전공의노조 설립에 따라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경영압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전공의노조 설립에 대한 반대의사를 명확히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전공의노조 설립을 반대하는 대학병원급의 보직교수들과 이를 강행하려는 대전협 집행부 사이에는 스승과 제자라는 특수한 관계로 묶여 있는 만큼 이들이 전공의노조 설립에 대해 반대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첫 의사노조 출범은 '100일 천하'로 끝나 버릴 가능성도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공의 노조 설립에 대한 막연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던 시기는 2000년 의권쟁취 투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7월 2차 의사파업 결행을 앞두고 전면사퇴를 선언한 김대중 집행부 이후 출범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공의 조직의 투쟁기구화를 선언하고 전공의협의회의 노조화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당시 비상대책위원회가 전공의노조 설립을 추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협의회와 달리 단체행동권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으며 현재도 같은 이유로 전공의노조 설립이 강력히 추진 되고 있다. 비록 전국적인 의사들의 파업이 일단락되며 전공의노조에 대한 논의는 곧 사그러 들었지만 이후 대전협의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이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가 되어 꾸준히 제기되곤 했다.

사실 대전협으로서도 전공의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전공의노조 설립이 단순히 전공의 권익향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병원경영 시스템의 변화와 의학교육 제도의 전반적인 손질 등 의료계의 각종 이슈들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부마다 전공의노조를 공약으로 꺼내들 수 밖에 없는 것은 전공의들의 처우개선이 더이상 미룰 수 없는 한계에 다달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김주경 대전협 정책이사는 지난 8월 전공의노조 설립을 선언하며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의대의 신설과 전문의의 숫적 증대로 의사들의 지위와 경제적 위치는 이전의 위치에서 점점 하락해 가고 있다. 즉 우리가 미래에 어떤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현실에 봉착해 있다는 말이다." 즉 한 대전협 관계자의 말처럼 "과거에는 전문의 따고 개원해 일정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공의 시절을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고 참아 낼 수 있었지만 이젠 개원해도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인 만큼 무조건적인 희생을 더이상 강요해서는 안된다" 는 것이다.

지난 2001년 대전협에서 전공의의 처우개선과 관련해 조사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전공의들의 이런 고민이 보다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721명의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서 조사대상 전공의의 60%가 1년에 2,000만원 미만을, 3%는 1500만원 미만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취업정보 전문기업인 리크루트사가 매출액 기준 200대 기업 중 106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이 2,122만원이었으며, 특히 연봉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금융사의 경우 평균 2,626∼3,200만원이었다는 것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정한 급여수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특히 결혼을 한 남자 전공의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서울 강남의 중형급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봉직의는 전공의 수련기간에 겪은 경제적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수련기간 내내 열악한 전공의 봉급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절감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꼭 전문의를 딸 때까지 결혼을 미루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임동권 대전협 회장은 전공의의 처우개선이 경제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전공의 수련기간이 정말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수련의 시간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과 같이 살인적인 업무량과 비인간적인 업무환경은 의사를 사회로부터 더욱 고립시키고 소외시킬 여지가 있는 만큼 수련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변화를 고려해봐야 한다" 는 의미다.

한양대의료원에서 전공의 2년차를 보내고 있는 한 전공의는 의사의 사회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인적인 업무량에 있다고 지적한다. "1년차때 하루 꼬박 24시간 근무를 했고 2년차된 지금은 20시간 근무한다. 하루종일 병원에서 보내고 있으며 병원 밖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고 말했다. 또한 "아직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받겠다고 선언한 것도 모르는 전공의도 있을 것" 이라는 농담도 덧붙였다. 지난 해 3월 이화의대 의료원에서 교수임용을 받은 한 신임교수는 "대학생활이라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있지도 않았다. 최선을 다한 시절인 만큼 후회는 없지만 젊은 시절에 경험해야 하는 다양한 것들을 겪어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반 사람들과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고 토로했다.

이렇듯 전공의노조 설립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과는 달리 대전협의 노조설립과 관련 중요한 이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대한병원협회(병협)는 노조설립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창락 병협 부회장은 전공의 노조가 불거져 나온 지난 8월, "전공의는 전문분야의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피교육자의 성격이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의 성격보다 강하다" 고 지적하고 "수련의의 울타리를 벗어나 노동자의 대우를 받으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 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성익제 병협 사무총장 역시 "전공의들이 이중적인 신분으로 많은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분명히 피교육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정이나 규칙에 적용받지 않는 이득도 있다" 고 전공의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대해 대전협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수련병원 교수들의 압력을 견디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집행부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병협 등 사용자단체가 전공의노조에 대한 반대 의견을 체계화하는 것과 달리 당사자인 전공의들의 노조설립 열기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는데 있다. 최근 대전협 홈페이지를 통해 조사한 전공의노조 설립에 대한 찬반투표도 84%의 압도적인 노조설립 찬성의견이 나왔지만 2달여 동안 사이트를 개설했음에도 불구하고 투표에 응모한 전공의는 150여명에 불과했다. 대전협의 한 관계자는 "사실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전공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노조설립을 거드는 움직임도 없어 추진세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다" 며 현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지난 8월 대전협 임시총회에서 제기된 전공의노조 설립은 다음달 1일 열릴 대전협 정기총회에서 일단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그러나 최근 임 대전협 회장은 연내에 노조를 설립하겠다는 입장에서 임기 내 설립으로 한발 물러 섰다. 보다 여유를 가지고 주변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며 추진하겠다는 의중으로도 읽히지만 전공의노조 설립 문제로 촉발될 각종 이슈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어 발을 담그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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