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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국회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과 '아이언맨'의 '자비스'
국회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과 '아이언맨'의 '자비스'
  • 김현지 서울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내과 진료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7.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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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김현지 서울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내과 진료교수(전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국회의원 비서관)

처음 국회에 들어갔을 때, 필자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국회의원과 보좌진에게 부여되는 정보력이었다. 의원실의 정보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는 국회 도서관, 입법조사처, 그리고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이다. 

가장 먼저 국회 도서관은 사회과학부터 자연과학까지 방대한 서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학별 석·박사학위 논문까지도 열람할 수 있다. 의원회관에서 도서관까지 왕복하는 시간마저 아껴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듯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원하는 책을 당일 오후에 내 자리로 직접 배달까지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로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며, 해외의 법안이나 제도 등에 대해 요청하면 2∼4주 내로 번역된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또 어떠한가. 국회의원은 부여된 법률 생성기를 통해 간편하게 법안을 작성할 수 있다. 입법조사처는 이렇게 작성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문장 부호 하나까지 검토하며 해당 법안으로 발생할 예산을 미리 계산해 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으로, 정기회나 국정감사 등의 시기에 의원실과 소관기관 간에 전자적으로 자료를 요구하고 제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국회는 매년 9월 이후 정기국회 기간에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해 국정감사를 한다. 국정운영 전반의 실태를 파악하고, 감시·비판을 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적발하고, 시정하는 제도로 '정기국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 제출 과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의원실에서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으로 자료를 요청하면 위원회 산하에 있는 정부 부처의 거의 모든 자료를 약 1∼2주 이내에 받아볼 수 있다.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 민감한 자료가 포함되기 때문에 국정감사를 앞두고 각 이익단체나 언론사 측에서 원하는 자료를 얻기 위해 의원실에 찾아오기도 한다.

오죽하면 기자들 사이에서 '의원실 휴지통을 뒤진다'는 얘기까지 돌겠는가. 물론 개인정보는 식별 불가능하게 익명화되며,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원 및 보좌진은 감사 또는 조사를 통하여 알게 된 비밀을 정당한 사유 없이 누설해서는 안 된다.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을 통해 두 번의 국정감사를 경험하면서, 필자는 '아이언맨'의 '자비스'를 얻은 느낌이었다. 자비스는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의 인공지능 비서로 해킹, 자료 분석, 전투 등을 보조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서 부회장을 맡았을 때 관련 자료를 찾느라 Google, Uptodate, Pubmed 등을 뒤지며 쩔쩔맸는데, 비서관이 된 이후 의정자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니 '왜 그렇게 고생했나'며 허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의정자료전자유통시스템은 인공지능이 아닌 각개 부처의 직원들이 직접 자료를 취합, 분석하므로 매우 노동집약적이다. 국정감사 기간에는 당일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기도 한다. 때문에 결코 자비스처럼 남용하면 안 되며, 의정자료가 가진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만 자료를 제공하는 측도, 받는 측도 고생을 줄일 수 있다.

내과 전문의로서 필자의 강점은 특정 질의를 위해 어디에 어떤 자료를 어느 수준까지 요청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민하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자료를 요청하면 주지 않으려는 부처와 의원실 간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국정감사 업무의 반은 자료 확보다. 드라마처럼 CCTV까지 확보하지는 않지만, 보좌진들은 의정자료를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노력한다. 부처에서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부실하거나 동문서답 식의 엉뚱한 자료를 주는 경우도 많다.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제출할 수 없음', '해당 사항 없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음' 등등. 처음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하다 보니 점점 요령이 생겼다.

담당 직원의 상급자와 직접 통화하여 압박하거나, 피감기관이 보유한 문서의 공문번호까지 직접 표기해서 요청해서 자료가 없다는 변명을 원천 봉쇄하거나. 물론 끝끝내 제출하지 않아 국정감사 당일에 감사장에서 국회의원이 직접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 입법조사처, 의정자료유통시스템 모두 '국가에서 이 정도까지 해주는데 정말 국민을 위해 소처럼 일해야 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 시스템이다.

이번 칼럼은 내과 의사가 비서관으로서, 자비스 같은 천군만마를 얻어 1년 반 동안 신나게, 또 처절하게 일했던 노동기(記)가 될 것이다.

■ 칼럼과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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