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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면역력을 증가시킨다는 식품
면역력을 증가시킨다는 식품
  • 장성구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대한의학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0.05.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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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에게 진실된 정보 제공하는 윤리·역할·책임 다해야
언행 책임져야 '전문가'...아름답고 신뢰받는 사회 기본철학
전문가로서의 언행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며, 이것은 아름답고 신뢰받는 사회를 구현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기본적인 철학이다. [사진=pixabay]
전문가로서의 언행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며, 이것은 아름답고 신뢰받는 사회를 구현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기본적인 철학이다. [사진=pixabay]

인간의 행복을 기원하는 표현 중에 아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건강 장수를 기원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생각해 볼수록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장수(長壽)와 건강(健康)은 '겨리소'와 같이 떼어 놓을 수 없는, 짝을 이루는 말이다. 장수에 대한 희망은 모든 민족에서 마찬가지다. 중국 사람들이 장수(longevity)를 의미하는 붉은색(赤色)을 좋아하는 것도 한 증례가 되겠다. 

삶의 가치가 중요시되고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장수에 한 가지를 더하여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라기보다는 장수의 질적 향상을 바라는 매우 순리적인 욕구라 하겠다. 장수를 하되 건강한 삶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런 요구를 자본주의 상혼(商魂)이 가만히 앉아서 두고 볼 리가 없다. 

소비자의 몸과 마음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다양한 제품들이 방송에서 봇물을 타고 있다. 과학적으로 전혀 증명된 바는 없지만, 암암리에 횡행하고 있는 건강식품(건식)이 넘쳐흐르고 있다. 

정부에서는 건식으로부터 국민의 피해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 세워 생산과정의 정도관리를 한다는 의미로 법을 제정하여 건식의 생산과정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부작용을 전혀 생각 못했기 때문에 이 기준을 마련한 것이 마치 정부에서 건식을 권장하는 것으로 국민은 받아들였다. 

물론 건식 생산의 최소 기준을 만들기까지 얄팍한 장사꾼 논리와 집단의 야합이 있었으리라는 것이 유추된다.

건강 장수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질병이다.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건강 장수를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붙이는 기지를 발휘한 상혼이 바로 '면역력을 증가 시키는 식품'이라는 그럴듯한 발상이다. 

케이블 TV를 켜면 기획 상품이라고 생각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프로그램에서 식품영양학자·생화학자·생물학자·약사·한의사 뿐만 아니라 일부 무분별한 의사들에 이르기까지 "이것을 먹으면 면역력 증강에 도움이 된다"라고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방송에는 당연히 약방의 감초같이 경험자들의 일화가 곁들여진다.

40년 가까이를 임상종양학(암에 관한 학문)을 전공하면서 무수히 많은 암 환자들을 수술도 하고 여러 가지 병합적인 방법을 통해 치료하여 온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종양학에서 면역학적인 지식은 아주 기본을 이루고 있는 학문이고 이 순간에도 전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학자가 종양면역학을 연구하고 있다.

한때는 대중을 대상으로 매스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 모른척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도를 넘고 이제는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고, 수수방관하는 것 또한 전문가의 사회적 책무를 등한히 하는 것이라는 자괴감까지 든다. 

면역력을 증가 시키는 식품이라는 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몇 가지 의아한 점들이 있다.

1. 그 식품을 먹으면 어떤 면역력을 증가 시켰다는 것인지?
2. 그 식품이 면역력을 증가 시켰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 또는 확인했다는 것인지? 
3. 식품을 통해 인체의 면역력을 증가시키면 그것이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무리 식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방송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의 반응은 거의 같았다. 장삿속으로 하는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건강과 직관된 일이며 나아가서 국민의 올바른 건강 상식 증진에 역행하는 일이 버젓이 대중매체를 통하여 방송되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전문가의 사회적 책무의 수행이라는 관점에서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된 정보의 제공은 방송에 출연하여 적극적인 설명을 담당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들의 윤리적인 몫이다. [사진=pixabay]
소비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된 정보의 제공은 방송에 출연하여 적극적인 설명을 담당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들의 윤리적인 몫이다. [사진=pixabay]

치료 목적의 면역요법에서 가장 큰 난관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현재 아주 중요한 세포면역력을 직접 측정하지 못한다는 것이 큰 맹점이다.

환자에서 직접 측정할 수 있는 것은 항체를 만들어 내는 일에 관여하는 일부 면역글로불린 정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면역글로불린을 증가시켰다고 해서 무조건 우리 몸에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가 면역 질환(우리 몸의 정상적인 구성 요소를 외부에서 침입한 항원으로 착각하여 몸의 면역체계에서 생성된 항체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질병)이 생긴다면 얻는 것 보다 건강을 잃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면역력은 우리 몸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나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단순히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일은 면역력의 지극히 일부이다. 

면역력이란 이런 일을 훨씬 뛰어넘어 복잡한 생명현상의 다양성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면역력의 요체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면역체계가 균형(balance)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치료 목적으로 약제를 투여하여 체내의 특정 면역세포를 증가시키고자 할 때는 치료의 효율을 높이는 유익한 점도 있지만, 우리 몸의 정상적인 기능에 상당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하여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내용이 있음에도 '면역력의 증강'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말이 상혼(商魂)을 타고 식품 속으로 스며드는 일을 과연 두고 보기만 하여도 되는 일일까?

면역력을 증가 시키는 식품이라고 아주 떳떳하게 방송매체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기본적인 실험적 연구는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학적으로 아주 전문적인 연구 수준의 결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어떤 사전 실험을 하였으며. 그 결과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어떤 물질이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물론 면역물질이 정말 증가하였는지, 또 그 물질의 증가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학적으로 분석을 해 봐야 할 일이다.

의생명과학을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어떤 식품도 인체의 면역력을 증가 시키지 못한다'는 부정적 예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전 대한의학회장)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대한의학회장)

의생명 과학자는 모든 가능성에 대하여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있다. 

다만 연구 결과에 대하여 아집이 없는 객관적 분석과 판단을 고민하고, 언어의 선택은 물론 사람에 대한 적용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분명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귀중한 생명은 오직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진실된 정보의 제공은 방송에 출연하여 적극적인 설명을 담당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들의 윤리적인 몫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 이것은 역할과 책임이라는 사회 정의 구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로서의 언행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며, 이것은 아름답고 신뢰받는 사회를 구현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기본적인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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