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철수 권고할 것" 코로나19 '구상권 청구' 발언에, 의협 '경고'

"의료진 철수 권고할 것" 코로나19 '구상권 청구' 발언에, 의협 '경고'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20.03.2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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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 읍소할 땐 언제고…배은망덕한 토사구팽" 비판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 "허탈감과 자괴감, 이루 말할 수 없다"

12일 서울대병원 음압병실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사진=서울대병원 제공) ⓒ의협신문
12일 서울대병원 음압병실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사진=서울대병원 제공) ⓒ의협신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요양병원이 명령을 위반해 집단감염이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의료계가 잇따라 비판 입장을 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3일 "배은망덕한 토사구팽"이라고 질타하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의료기관 문책 움직임이 지속될 경우, 의료인 스스로의 보중을 위해 현장 철수를 권고할 거란 경고도 함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0일 브리핑을 열고 코로나19 관련 행정명령을 위반해 집단감염이 발생할 경우, 해당 기관에 대한 손실보상 및 재정적 지원 제한과 함께 추가 방역 조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기관에 대한 문책성 발언은 대구시와 경기도에서도 나왔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일 브리핑에서 "시설 및 병원 관리 소홀로 대규모 감염병 확산이 확인될 경우 책임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코로나19 감염자의 접촉자 명단을 누락했단 이유를 들며 분당제생병원을 '감염병의 예방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형사고발 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잇따른 의료기관 문책성 발언들에 의료계는 즉각 반발하고 있다. 전국적 비상사태 속에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계에 책임을 전가하려 한단 비판이 일고 있는 것.

의협은 비판 성명을 통해, 9000명에 육박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수와 100명이 넘는 사망자 수는 정부가 의협이 1월 말부터 권고해 온 감염원 유입 차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라고 진단했다.

의협은 "방역에 실패했지만, 사회 질서 유지와 피해 최소화로 우리나라가 국제적 모범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시민의 솔선수범과 의료진·의료기관이 몸을 아끼지 않은 덕"이라며 "특히, 의료진은 감염 위험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다. 의료기관은 휴업과 폐쇄로 인한 피해를 감수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명감으로 묵묵히 신성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증상이 없는 동안에도 전파력을 가질 수 있는 코로나19의 특성으로 인해 모든 의료인과 의료기관들은 초긴장 상태에 있으며 심각한 번아웃(burn out)과 경영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짚었다.

의협은 "이런 와중에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제히 감염이 확산되는 것을 의료진과 의료기관의 과실로 돌리고 형사고발과 손해배상을 운운하며 책임을 전가하려 들고 있다"며 "그야말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놨더니 짐 보따리 찾아내라는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현 사태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도와달라고 읍소할 때는 언제고, 한숨 돌렸다고 책임을 전가하고, 면피하려 드는 광경"이라며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의병장들에게 누명을 씌우던 썩은 관리들을 연상케 한다"고 비유했다.

의협은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이러한 토사구팽을 자행한다면, 더 이상은 의료인과 의료기관들에 솔선수범을 요청하기 어렵다. 오히려 스스로 보중(保重)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권유할 수밖에 없다"면서 "현장에 자원하고 있는 의료인의 철수를 권고하고, 코로나19 사태를 오로지 국공립의료기관과 보건소의 힘으로 극복하도록 할 것이다. 민간의료기관은 더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오직 내원과 입원환자 및 소속 의료인의 보호에 충실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역시 23일 성명을 통해 "화낼 줄 몰라서, 저항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라며 "후안무치한 의료계 매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정부와 일부 지자체의 '의료기관 문책 움직임'에 대해 "최전선에서 사투 중인 의료계를 향해, 오히려 과도한 책임을 씌우고 매도하는 협박성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민간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기는커녕 방호복과 마스크 지원 등에서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다"고 지적했다.

협의회는 "최근 일련의 일부 지자체장과 공무원들의 의료계를 매도하는 발언은 참으로 개탄스럽고 기막힌 일이다. 의료계가 받는 허탈감과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면서 "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지자체장이나 정부 기관의 총체적 판단 미스로 인한 방역 실패를 의료계의 잘못으로 떠넘기려는 후안무치한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사들은 이 순간 이러한 일부 지자체장이나 공무원들의 이러한 매도에도 불구하고 환자 곁을 지키고 있다. 화낼 줄 몰라서가 아니다. 저항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라며 "오직 아직도 발생하는 환자가 있고 죽어가는 환자가 있기에 그 옆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회는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책임회피 목적으로 의료계를 희생양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매도한다면, 의료계는 자괴감과 사기 저하로 인해 코로나19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면서 "향후 환자 치료의 미비로 인한 모든 책임은 일부 지자체장 및 방역 당국에 있다. 총체적인 대응 실패에 대해 추후 국민과 함께 엄중히 그 책임소재를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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