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下心
호미곳으로 가자
바람 많은 날은
누운 소나무들을 보러
호미곳으로 가자
애써 맞서지 않고
바람 부는 방향대로 비스듬히
딱 그만큼의 각도로
우리도 등을 구부리고
그 나무들처럼
순하게 서있어 보자
희한하게 몸을 낮출수록
바다는 넓게 보인다
이곳은 집들도
소나무를 닮아
지붕들이 나지막하다
하심下心을 말하면
빙긋이 웃는 성자여
낮추는 게 아니라
원래 고심高心은
없는 거라고
호미곳으로 가자
등 구부린 소나무를 보러
아니, 우리도 등을 구부리러
호미곳으로 가자

▶한국의사시인회장/시집 <어떤 우울감의 정체> <세상은 내게 꼭 한 모금씩 모자란다> <역>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산문집<어른들의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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