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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연구에서 드러난 한의사들의 지혜
엉터리 연구에서 드러난 한의사들의 지혜
  •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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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 난임 치료', 엉터리 연구 설계로 시간만 낭비"

지난 14일 '한의약 난임 치료'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연구팀은 한방 난임치료의 "효과와 안전성, 경제성을 연구하여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연구를 실시했다고 밝혔으나 애초에 근거를 찾기가 불가능한 설계의 연구였다. 여기에는 4년의 시간과 6억 2000만원의 연구비, 그리고 100명의 난임 여성 참가자가 필요했다.

이 연구는 '원인 불명의 난임' 환자들이 모집 대상이었다. 참여자들에게 4개월간 한약 및 침구치료를 하고, 추가로 3개월 이내에 임신을 하면 한방치료의 효과라고 평가했다. 임신이 확인된 경우 보름간 한약을 더 복용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효과 검증의 가장 기본인 대조군이 없었다. 100명의 참여자 중 90명이 치료를 완료해서 13명이 임신, 6명은 유산하고 7명이 출산했다. 한방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임신하고 출산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까 적었을까? 대조군이 없어서 알 수 없다. 

모집 대상자들은 '치료 없이는 절대로 임신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아니다. 연구 참여자들과 유사한 조건의 난임여성들이 7개월간 치료 없이 지냈을 때 자연임신이 될 확률은 외국의 논문들을 보면 약 20% 이상은 된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한방치료가 임신확률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대조군이 있어서 직접 비교를 했다면 "한방 치료를 받은 그룹이 치료를 받지 않은 그룹에 비해서 임신율이 30% 낮았다"는 식의 결론이 나올 수도 있었다. 

13명 중 7명만 출산했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보건복지부가 2017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인공수정으로 임신한 난임여성들은 자궁외 임신이 1%정도 발생하고, 10∼20% 정도가 자연유산된다고 한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이 연구에서 대조군에 인공수정을 실시해서 13명이 인공수정으로 임신했다면 10∼12명은 출산을 하고, 한방치료는 유산 위험을 3배정도 높인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었다. 임산부에게 쓰이는 한약재 중 여러 가지가 태아에게 해를 끼친다는 동물실험결과가 이미 나와 있어서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연구를 진행한 교수들, 연구 계획을 심사한 심사위원들, 연구 과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 중 대조군이 없는 이런 연구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기가 불가능해서 시간과 예산 낭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전국의 한의원에 임신을 원하는 수많은 환자들이 찾아가고,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까지 실시하고 있는데,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라는 요구가 계속돼 무시할 수 없다면 한의사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로 편안하게 돈을 잘 벌고 있는데, 검증을 해서 효과가 없고 해롭다는 결과가 나오면 감당할 수 없는 대혼란이 벌어진다.

그래픽 / 윤세호기자ⓒ의협신문
그래픽 / 윤세호기자ⓒ의협신문

예를 들어 "한약과 침구치료는 대조군에 비해 임신확률을 20% 떨어뜨리고 유산위험을 300%가량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확인됐고 가정해보자. 돈벌이만 줄어들고 끝날 일이 아니다. 한의사들과 한방난임치료 지원사업에 연루된 공무원들이 임신하지 못한 환자, 유산한 환자들로부터 줄소송에 휘말리고, 연구를 진행한 교수들은 동료와 제자들로부터 거센 성토를 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검증을 요구받는 상황에서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실제로는 검증을 하지 않지만, 겉으로는 검증을 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면서 최대한 시간 끌기'다. 연구팀이 대조군 없는 무의미한 연구로 시간을 보낸 기간 동안에 한의사들은 편안하게 난임 환자들에게서 진료비를 벌 수 있었다. '나중에 엉터리 연구라고 비난을 듣더라도 2만 명의 동료들을 위해서 희생해보자'라고 각오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운이 좋게도 비난이 없었다. 

기자들은 대조군이 없는 엉터리 설계로 시간과 예산을 왜 낭비했냐고 지적하지 않고, 7개월에 14%의 임신율이 인공수정 임신율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 적고서 "근거가 마련됐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인공수정의 임신율은 1개월 단위의 성공률인데 말이 되는 비교인가? 이 연구에서 1개월 만에 임신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한의사들은 시간을 벌었지만 참여한 여성들은 피해자가 됐다. 난임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임신과 출산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데 대부분의 참여자가 귀중한 7개월을 낭비했다. 

의사들로부터 대조군 문제를 지적당한 뒤에는 한의사들이 어떤 연구설계로 위기를 모면하는 지혜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다만 그 실험의 참여자들이 한방치료가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교육받고 선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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