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단체·학회 "보험업법 개정안 반대" 성명
대전시의사회·최소침습척추학회 "당장 철회하라!" 요구
가정의학회·외과의사회·지역병원협 "법안 부작용" 경고
의료기관이 민간 보험사의 실손보험 청구업무를 강제적으로 대행토록한 '실손보험 지급 거절법'을 두고 의료계가 일제히 "NO!"를 외쳤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각 의료단체의 반대 입장 표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6일에만 5개 의료단체에서 반대 성명이 터져 나왔다.
6일 반대 성명을 발표한 단체는 ▲대전시의사회 ▲대한최소침습척추학회 ▲대한가정의학회 ▲대한외과의사회 ▲대한지역병원협의회다.
전국 16개 시도의사회를 비롯해 각 직역과 학회 등에서 잇따라 '보험 지급 거절법'에 반대한다며 한 목소리로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양상이다.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 보험가입자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이고 있는 보험사들이 '보험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 통과를 위해 앞장선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게 의료계의 분석이다. 의료계는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 이후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지급을 지연하거나 거절하는 근거로 악용, 국민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진단했다.
민간보험사와 국민이 개별적으로 맺은 사적 계약에 제3자인 의료기관에 대해 청구 의무를 부여한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짚었다.
대전시의사회는 "해당 개정안이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표면적으로는 보험 청구인의 편의를 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환자의 의료정보가 보험회사에서 어떻게 활용될지도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보험금 불만족 사례가 나오면 책임을 의료기관에 전가, 의사와 환자 간의 불신을 조장할 것으로 우려했다.
대전시의사회는 "개정안은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며 "무리하게 개정이 추진된다면 대전광역시의사회 회원 일동은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최소침습척추학회는 해당 법안은 공적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정부 의료정책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최소침습척추학회는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해선, 사보험 시장의 역할을 축소하고 실손 보험의 보장 영역을 건강보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며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러한 의료 시장의 공공성 강화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사보험시장을 정부가 오히려 강화하는 이중적 법안"이라고 꼬집었다.
"전자 전송의 과정에 심평원이 청구 대행을 한다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한 역할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며 "보험업법이 국민건강보험법의 상위 법률이 아닌 이상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없이 실손의료보험의 청구 대행 업무는 적법하지도 않다"고도 짚었다.
대한가정의학회는 "민간보험회사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라며 "특히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증가해 보험사의 경영난이 더욱 심한 상황에서, 보험금을 더 주기 위해서라는 입법 취지를 믿을 수 없다"고 의구심을 표했다.
가정의학회는 "실손보험회사는 정부에서 소액에 대한 서류를 간소화하라는 권고조차 외면했다"며 "진정 소비자를 위해 청구 간소화를 진행하려면, 정부가 지적한 서류 간소화부터 먼저 시행해 진정성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대한외과의사회는 "보험회사의 이익만 키워주고 환자, 의료기관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실손보험사들의 집요한 로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외과의사회는 "실손 보험사는 현재도 보험금 청구 서류에 대해 까다로운 태도로 청구를 포기하게 만들거나 그나마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선례를 보더라도 보험사의 추진 법안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위한 수단이 될 것임이 너무나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지역병원협의회는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업계의 숙원 법안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이는 절차나 환자의 편의성이 아닌 보험업계의 수익 극대화라는 의도가 담겨 있음을 노골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자 전송의 과정에 심평원이 청구 대행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는 진료 적정성 문제를 끌어올 것"이라며 "결국 진료 행위에 제한을 가해 진료를 위축시키고, 국민들에게는 치료를 방해하고, 보험사들에게는 수익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병원협의회는 "해당 개정안은 의료기관에게 진료 내역이 포함된 보험금 청구 전송 관련 자료를 강제하고 있다. 여기에는 병력과 진료행태 등에 대한 민감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면서 "공공 기관이 아닌 민간이 해당 정보를 분석·관리한다는 것은 정보 유출 시 책임소재와 법률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전재수 의원이 각각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실손의료보험에 필요한 서류를, 청구인이 아닌 의료기관이 대리해 보험사로 전송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간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업무를 위해 국민이 낸 사회보험료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중계 역할을 하는 형태다. 청구인이 요양기관에 전자적 형태로 관련 서류 전송을 요청하면, 요양기관이 위탁기관인 심평원에, 다시 심평원이 각 보험사로 필요한 서류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이들 개정안은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 상정, 본격적인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