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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배상 소송, 병원 측 책임비율 60% 관례 깨지나?
손해배상 소송, 병원 측 책임비율 60% 관례 깨지나?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1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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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의료인 과실 분명하면 책임 비율 최대 100% 인정 사례 늘어
이동필 변호사 "의료인에게 책임 모두 부담…손해배상 공평 원칙 어긋나"
ⓒ의협신문
ⓒ의협신문

법원은 의료사고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병원 측의 책임 비율을 낮춰왔고, 비교적 의료인의 과실이 분명한 경우라도 병원 측의 책임을 최대 60% 정도만 인정했다. 그러나 최근 책임 비율을 최대 100%까지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원은 그동안 의료의 특수성에 비춰 환자의 체질적 소인, 질병의 위험도 등 환자의 잘못(귀책 사유)과 무관한 요소라도 이런 요소에 의해 손해가 발생했거나 손해의 정도가 확대된 경우에는 과실상계의 법리를 유추 적용해 병원 측의 책임 비율을 낮춰왔다.

그런데 최근 법원 판결에 변화가 생겼다. 병원 측 책임 비율이 최대 60%였던 것이 평균 70∼80%까지 높아진 것.

병원 측의 책임 비율이 높아진 것은 2016년 6월 23일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5다55397)이 계기가 됐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미국 영주권자인 A씨(원고)가 병원(피고)에서 하악수술(후방분절 골절단순, 양측성시상분할 골절단술을 이용한 하악 전진술)을 받은 후 호흡곤란을 호소했고, 아티반(Ativan) 투여 후 맥박·혈압이 저하돼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결국 사지 마비 상태가 된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 때문.

이 사건에 대해 1심 법원(부산지방법원)은 ▲수술 후 원고가 호소하는 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감별하기 어려웠던 점 ▲의료진이 기도확보와 호흡 유지를 위해 노력한 점 등을 고려해 피고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80%로 제한해 인정했다.

2심 법원(부산고등법원)도 1심과 같이 피고 병원 측의 과실을 인정하면서, 의료행위의 특성상 수반되는 불가피한 위험 등 공평의 원칙에 근거한 책임 제한이 필요하다고 해 피고 병원의 책임을 3분의 2로 수정해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심과 2심 판결을 인정하지 않았다. 통상 의료과오 사건에서 행해지는 책임 제한 비율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적용해 병원 측의 책임을 제한한 것은 책임 제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수술 후 경과 관찰 및 그에 따른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의료사고가 발생했고, 사고 발생에 원고의 과실이나 체질적 소인 등 피해자 측의 어떠한 기여가 있었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고 전제하면서 "의료행위의 특성상 수반되는 불가피한 위험 등 공평의 원칙을 근거로 피고의 책임 비율을 3분의 2로 제한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원고에게 호흡부전이 발생한 경위, 호흡부전이 발생한 이후 피고가 취한 조치 등을 고려할 때 수술 후 예상되는 후유증과 그 위험성이 어느 정도 인지, 그런 위험을 회피할 만한 적절한 대처 방법은 무엇인지, 피고가 그런 방법을 취했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본 뒤 피고의 책임 비율을 제한해야 함에도 이런 부분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지 않았다"라고 봤다.

대법원은 "질병의 특성, 치료 방법의 한계 등으로 당해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위험을 감내해야 한다고 볼 만한 사정도 없이, 그 의료행위와 관련해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판단능력이나 의료기술 수준 등에 비춰 의사나 간호사 등에게 요구되는 통상적인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단지 치료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등의 막연한 이유만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할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2심 판결)판결을 파기 환송했고, 파기 환송된 2심 법원은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해 피고 병원의 책임을 100%로 인정했다.

의료진에 대한 손해배상을 100% 인정한 판결은 지난해 6월에도 있었다. 내시경을 받던 중 천공이 발생해 의식을 잃고 사망한 환자와 관련된 소송에서 1심 재판부(서울북부지방법원)가 의사에게 100%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

이 판결이 주목받은 이유는 침습적인 의료행위의 특성상 손해배상 책임을 일정 비율로 제한한 기존 판례와 달리, 의료진의 책임을 제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7년 성형수술을 받다 사망한 중국인 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성형수술 중 경과 관찰을 소홀히 하고,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지연한 과실을 인정해 의사와 병원장에게 공동으로 손해배상을 70%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깊은 진정 내지 전신마취 상태에서는 호흡부전이나 심혈관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망인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충분한 경과 관찰을 하지 않은 의료진의 과실이 있고, 응급처치 이후 즉시 상급병원에 이송을 지연한 과실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동필 변호사(법무법인 의성)는 "이처럼 최근 법원은 의료사고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의료진의 의료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병원 측의 책임을 기본적으로 70∼80% 정도로 높여 인정하는 추세에 있으며, 심지어 병원 측 책임을 100%로 인정하는 사례도 상당히 눈에 띈다"라고 말했다.

"의료행위는 대부분 인체에 침습을 가하는 행위이므로 의료행위 자체로도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발생할 위험이 상존하는데, 환자는 질병의 치료나 건강개선을 위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의료행위를 받게 된다"라고 밝힌 이 변호사는 "위험성이 현실화해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그 손해를 모두 의료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손해배상의 대원칙인 공평의 원칙에 반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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