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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형사처벌 과잉…관련법 재정비 시급
의료법 형사처벌 과잉…관련법 재정비 시급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09.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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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제정 당시 형사처벌 조항 14개서 최근 60개로 3배 이상 늘어
하태훈 고대 법전원 교수 "조정·중재 먼저…중과실만 형사처벌 고려해야"
대한의료법학회는 21일 연세대 광복관에서 '의료법학 20주년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대한의료법학회는 21일 연세대 광복관에서 '의료법학 20주년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의료영역에서의 형사처벌이 과잉 경향을 보여 형사처벌 이전에 조정과 중재를 통한 해결 노력을 해야 하고, 형사처벌은 최후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의료법 및 (생명)의료관계법령은 충분한 제·개정 절차가 진행되기보다는 사회적 이슈와 시민의 요구, 의료인 등 이익단체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행해지는 '모자이크식 입법'으로 체계성과 정합성이 모자랐으므로 대한의료법학회가 학제 간 협업을 통해 관련법을 재정비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는 대한의료법학회가 학문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한의료법학회는 21일 연세대 광복관에서 학회 창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의료법학 20주년 회고와 전망을 고민했다.

특히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민사법'과 '형사법'에 있어 최근 의료사건 판례 경향을 돌아보고, 앞으로 의료법을 비롯한 의료 관련 법령이 어떤 방향으로 개정돼야 하는지에 대한 법학자들의 소신 있는 발언이 눈길을 끌었다.

먼저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의료형법 분야에서의 의료소송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며 이에 대비해 관계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 교수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총 2만 320건의 의료소송이 제기됐고, 이 가운데 형사소송은 매년 증가추세다. 또 과거에는 의료법에서 형사처벌 조항이 14개에 불과했으나, 40개로 늘더니 최근에는 60개에 이르고 있다.

하 교수는 의료와 관련 형사처벌이 다른 법과 비교해 너무 과하다고 지적했다.

"의료법에서 형사처벌 규정 중 특히 논란이 되는 규정은 무면허의료행위 금지"라고 밝힌 하 교수는 "무면허의료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인데,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영리를 목적으로 업을 하는 경우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어 사형을 제외하고 형법상 가장 무거운 범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살인죄의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사형 포함), 강간죄의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유사 강간의 법정형이 2년 이상의 유기징역인 것과 비교하면 법정형의 하한선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며 "법정형이 비례성 원칙에 부합하는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짚었다.

의료인이 진료기록부에 서명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그 불이행에 대해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구 의료법,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환자유인행위금지(의료법 제27조 제3항, 제88조)도 불법의 정도에 비해 과잉형사처벌 규정으로 봤다.

또 의사가 직접 진찰하고 진단서를 발급해야 한다고 규정한 의료법(제17조 제1항) 조항, 그리고 사회적 이슈가 돼 신설된 일회용 주사 의료용품 재사용 금지(의료법 제4조 제6항) 위반은 과태료 대상, 의무위반으로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면허취소 사유가 되는 조항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명찰 착용 의무(의료법 제4조 제5항)도 의료법에 규정된 것은 지나치다고 봤다.

하 교수는 일회용 재사용 금지 관련 처벌 조항과 관련 "의료인의 양심과 의료윤리에 맡겨야 할 의료인의 의무를 법제화하고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과잉 법제화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발생하게 하는 데도 형사처벌이 아니라 면허취소의 사유로만 규정한 것은 과소 법제화로 보인다"며 "학회가 이런 불균형에 대해 연구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선호되는 형사소송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하 교수는 의료소송은 손해배상소송으로 진행되는 건수가 많지만, 최근에는 형사소송도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며, 형사소송(수사와 기소, 재판)을 선호하는 이유는 ▲의료인을 고소하면 수사기관은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을 통해 환자 측이 얻어내기 어려운 진료기록부 등 사고 관련 자료를 확보하게 되고 환자 측에서는 소송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이를 민사소송에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는 점 ▲합의 성립을 위한 상대방 압박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형사소송이 남발하면 ▲소송이 장기화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 ▲수사 인력이 의료에 관해 전문성이 없다는 점 ▲과실인정 및 인과관계의 입증에서 형사소송이 더 엄격하다는 점 등이 형사 사건화의 단점이라고 짚었다.

또 형사처벌을 받는 비율(다른 형사사건과 비교, 의료행위 수와 비교)은 낮지만, 의료불신과 방어 진료, 과잉검사(또는 과소)와 치료 등 소극적 의료행위, 과오은폐 시도 등 의료인 개인이나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이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형사소송을 피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료계에도 신뢰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의사 및 의료 관련 단체의 자정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힌 하 교수는 "진료기록부 작성의 치밀화와 엄격화, 의료감정의 공정성 확보, 의료윤리 위반 의료인에 대한 자체 징계, 고의 형사 범죄의 발생을 줄이려는 노력 등이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형사상의 책임이라는 위험성이 의료인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데, 의료인 스스로 법의 틀 속에서 박제화(비이성적 대응, 방어 진료, 과잉진료, 위험한 진료과목 기피 현상 등)될 위험성이 있다"며 "의료영역의 법제화를 최소화하고, 과잉 형사처벌화도 재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형사처벌 이전에 절차와 의무 부과를 통해 예방효과를 노리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최후수단으로 형사처벌을 고려해야 한다"며 "과실과 중과실을 구별해 경과실에 의한 상해는 비범죄화해 민사책임으로 해결하고, 중과실만 제한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학회가 학제 간 협업으로 법률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중 명예 교수(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민사법에서의 의료계약, 진료채무, 주의의무 정도 및 기준, 설명 의무, 책임 제한과 관련된 판례들을 돌아보면서 앞으로 학회가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의료계약을 민법상 '전형계약'의 하나로 편입시키는 논의를 의료법학회가 하기를 기대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이뤄진 진료는 63억 7000여건이 이르고, 진료건수가 하루에 약 345만건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매일 345건의 진료 계약이 성립하게 된다.

김 교수는 "전형계약 의미를 '일상생활에서 자주 반복되는 전형적인 계약'으로 정의한다면, 의료계약은 전형계약의 범주 속에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네덜란드·독일 민법의 경우처럼 앞으로 새로운 전형계약의 하나로 의료계약에 관한 규정을 신설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계약의 전형계약화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일단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봐야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거듭되는 찬반의 의견과 다양한 논의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적 합의를 한 후 의료계약을 민법상 전형계약의 하나로 편입시키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첨단 의료는 끝이 없다"며 "그만큼 다양한 법적 과제가 새롭게 등장할 것이므로 학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첨단 의료의 법적 과제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대학 및 로스쿨에서 의료법에 대한 교육이나 연구 활동, 의료법으로 특화된 전문학위 과정 운영, 국제 수준의 의료법연구소 설치·운영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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