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Transeference)
가족관계증명서에만 유지되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재혼자 클럽에 가입하여 이 남자 저 남자 돌싱들을 만나고 다녔다. 이번엔 초등학교 선생인데, 아이가 셋이란다. 너무 무심한 것 같고 섹스 파트너로만 자기를 생각하는 것 같다며 투덜댄다. 그러며 꼭 붙이는 한 마디, '나 때문'이란다.
진료실에 들어서면 모든 문부터 꼭꼭 여미고서 앉는 그녀.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고 한번 무릎에 앉아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떼를 쓰기도 한다. 도리어 병을 얻었고 이젠 먹지도 않는 약을 타러 온단다.
밤 베란다로 가서 불을 켠다. 전구를 향해 달려드는 불나비들, 너무 악착같아 징그럽기까지 하다. 다가설수록 좁히지 못하는 저 허기. 세상은 왜 이리 늘 배가 고픈가?
허공 속 불빛, 꺼버리면 사라지는 복사본이다. 그녀에게 나도 복사본이다. 번번이 속으면서도 미지의 원본을 향한 이 끝없는 열말들. 하여 세상엔 넘쳐나는 만남과 설익은 이별들. 지금도 어딘가엔 사랑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복사본 하나가 막 도착하고 있다.

한국의사시인회장/시집 <어떤 우울감의 정체> <세상은 내게 꼭 한 모금씩 모자란다> <역>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산문집<어른들의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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