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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후 병원 진료실 풍경이 바뀌었다
고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후 병원 진료실 풍경이 바뀌었다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9.08.2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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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벨'·'대피로'·'보안인력'까지…'안전을 위한 3종 세트' 갖춘 병원 늘어
100병상 이상 의료기관 비상벨 및 보안인력 배치 의무화…정부 재정지원 절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앞 보안인력 배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앞 보안인력 배치

올해 1월 진료실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고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로 강북삼성병원을 비롯한 병원들의 진료실 풍경이 크게 바뀌고 있다.

환자가 위협을 가할 때 뒷문을 이용해 피신할 수 있게 하거나, 비상벨 설치와 안전요원(전담인력)을 배치하거나, 안전방패까지 갖추도록 하는 등 의료진이 자신을 보호하도록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먼저 강북삼성병원은 고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 이후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및 병동 보안 인력 상시 배치 ▲근무 포스트 조정을 통해 건물별 순찰근무자 편성 운영 ▲비상벨 호출 시 보안요원 출동단계 축소(비상벨과 무전기를 연동해 비상 호출 메시지 바로 전송) 등 보안체계를 강화했다.

또 ▲환자 접점 부서 호신용 스프레이 및 액자형 방패 비치 ▲모든 보안 인력 보안장비 착용 근무(방검복, 삼단봉, 호신용 스프레이) 등 보안 장비도 강화했다.

이 밖에 ▲진료실 외부에 경광등을 설치해 비상상황 시 점등(진료실 외부의 간호스테이션도 비상상황 확인 가능) ▲비상벨 시스템 교체 및 증설 등 시설도 개선했다.

서울대병원은 고 임세원 교수 사건 이전부터 의료진 안전을 위한 진료실 구조 배치와 비상벨 등을 갖추고 있다.

또 지난 1월 3일 전국 주요 대학병원 20곳 실태를 조사 결과, 뒷문, 비상벨, 안전요원(전담) 세 가지를 다 갖춘 데는 서울대병원이 유일할 정도로 안전에 신경 쓰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고 임세원 교수 사건 이후 의료진 안전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특히 올해 3월 개원한 대한외래 진료실에도 안전을 위한 구조와 시설을 갖추고 보안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고 있다.

병원 차원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상시 배치된 보안 인력을 1명에서 2명으로 증원했고, 응급실 등 일부 근무지 보안 인력을 '원내 폴리스'로 전환했다.

원내 폴리스는 총 11명으로 올해 1월부터 배치됐으며 테러에 대비한 방검조끼와 삼단봉, 전기충격기 등 진압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권준수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 개선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환자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며 "법원과 같은 사법기관이 입원 여부를 객관적으로 결정하는 사법 입원제도가 도입돼야 환자 인권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도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진료 시간에는 보안 인력이 상시 근무하고 있다. 고 임세원 교수 사건 이전에는 응급 호출 시스템으로 의료진이 호출하면 즉시 보안 인력이 출동하는 시스템이었다.

의료진 보호와 안전에 대한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지만 고 임세원 교수 사건을 계기로 병원 차원에서 의료진 보호를 위한 교육과 보안이 더 강화됐다.

서울아산병원 한 관계자는 "의료진의 안전은 곧 환자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야겠지만 정부에서도 더 많은 관심을 두고 법과 제도적인 시스템이 정착되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세의료원도 각 진료실 간 대피 통로 확보, 진료실 출입문 잠금장치 보완, 비상벨 강화 등의 진료실 환경·구조 개선을 했다.

또 병원 차원에서 전담 안전요원 배치, 정신과 외래진료 의사 및 간호사의 교육 및 대피 요령 숙지 등에도 노력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은 진료실 책상 앞에 위급상황 때 사용할 수 있는 방패(앞에는 이미지, 뒤에는 방패용 손잡이)와 책상 아래는 비상벨을 설치했다.
강북삼성병원은 진료실 책상 앞에 위급상황 때 사용할 수 있는 방패(앞에는 이미지, 뒤에는 방패용 손잡이)와 책상 아래는 비상벨을 설치했다.

의료진에게 호신술 교육을 하는 병원도 있다.

명지병원은 고 임세원 교수 사건을 계기로 의료현장에서의 의료인에 대한 폭력에 의료인 스스로가 대처하기 위해 의료인 대상 호신술 강좌를 마련했다.

호신술 강좌를 통해 진료실은 물론 병원 내에서 예기치 않은 위험 상황에 부닥쳤을 때 본인은 물론 주변 의료진과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호신술과 호신용품 사용법을 전문가들로부터 직접 배우는 기회를 가진 것.

송후림 교수(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전국적으로 병원 내 각종 폭력 사건과 사고들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국가나 병원에서도 여러 가지 대비책들을 마련하고 있지만, 의료인의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며 "위험 상황은 갑자기 닥치기 때문에 평소 호신술을 익혀놓는 것이 의료인과 환자 모두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호신술 강좌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도 의료진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강화했다.

동산의료원은 외래 접수창구의 외벽을 높이고 금속 창틀을 설치해 환자의 위협 시 접근을 어렵게 해 안전 확보 및 비상벨, 위급 호출 등의 초기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외래 접수창구 내 보안 직원 및 외래 내 병동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비상벨 및 위급 호출 수신 전화기를 구비했다.

이 밖에 외래 진료실 문을 미닫이 형태로 설치해 공격적인 환자가 문에 충격을 가해도 파손될 가능성이 작도록 했다.

진료 테이블 옆에 탁자를 추가 설치해 의사, 환자 사이의 안전거리와 다른 외래 진료실과 연결된 비상문으로 탈출할 시간을 확보했고, 외래 진료실마다 호신용 경보기, 스프레이를 비치한 것은 물론 진료 테이블 밑에 보안 직원 및 외래 병동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비상벨을 설치했다. 모든 외래 진료실마다 위급 상황 시 다른 외래 진료실로 이동할 수 있는 비상문도 설치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진료실 뒤에 다른 진료실로 통하는 뒷문을 설치하고, 어느 병동에서(진료실)에서 위급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병원 내 다른 의료진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가 되도록 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진료실 뒤에 다른 진료실로 통하는 뒷문을 설치하고, 어느 병동에서(진료실)에서 위급 상황이 발생했는지를 병원 내 다른 의료진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가 되도록 했다.

김희철 교수(동산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정신건강의학과 내 모든 교직원에게 안전에 대한 교육(공격적인 환자가 방문했을 때 대처법 및 프로토콜 등)을 시행했고, 모든 진료실 및 외래 창구, 검사실 등에 안전요원 및 외래 내 병동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비상벨을 설치해 상황 발생 시 여러 직원의 신속한 출동 및 대처가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 임세원 교수 사건의 가해자와 같은 중증정신질환자들을 만성뿐 아니라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해 꾸준한 투약 및 재활을 통한 조기 중재를 목표로 치료의 방향을 잡으면 환자들의 정신건강, 삶의 질 뿐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여러 지역사회 서비스 체계를 갖추고 국민에게 자가 검진 및 정신건강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만연한 조현병 및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조기 치료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많은 조현병 범죄자는 가족의 치료 권유를 거부하거나 스스로 치료를 피했다가 병을 키우고 망상·환청에 시달려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고 밝힌 김 교수는 "환자 본인의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외국처럼 경찰·소방당국이 사법적으로 환자를 병원 치료를 받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병원들이 비상벨 설치, 보안 인력을 확보한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16일 100병상 이상 규모의 병원은 경찰청과 연결된 비상벨을 설치하고, 1명 이상의 보안 인력 배치를 의무화한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고 임세원 교수가 환자에게 공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올 4월 마련한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방안' 후속 조치다.

또 100병상 이상 규모의 의료기관과 함께 정신의료기관도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보안장비와 보안 인력을 갖춰야 하고, 폭력 예방과 대응 지침도 마련해 의료인과 의료기관 종사자 등이 교육받도록 했다.

이에 앞서 국회도 의료인 폭행을 가중 처벌 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고 임세원 교수가 사망한 지 95일 만의 일이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 폭행에 대한 가중처벌을 기존 응급실에서 일반 진료실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 벌금에, 중상해의 경우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사망의 경우 5년 이상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각각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주취 상태에서 휘두른 폭행에 대해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의료진에게 폭행을 가한 자에게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비상벨 설치 및 보안 인력 배치가 의무화되는 법안이 입법예고는 됐지만, 실제로 병원에서 시설을 바꾸고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드는데, 재정 지원 방안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병원 한 관계자는 "법에서는 비상벨을 설치하고 보안 인력을 충원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모두 병원 스스로가 알아서 하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환자의 안전과 의료진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면 정부도 재정지원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병원협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료기관의 3%만 경찰서와 비상벨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그나마 비상벨만 설치한 병원도 39.7%에 그치고 있고, 보건복지부 안전진료 실태조사에서도 전국 병원의 32.8%만 1명 이상의 보안 인력을 배치하고 있다"며 "전국 의료기관이 모두 비상벨 및 보안 인력 배치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하루빨리 수가로 보전해주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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