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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왜 정신과 병상 수가 많을까?
우리나라는 왜 정신과 병상 수가 많을까?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8.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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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환자 7만 628명·10년 사이 32.8% 증가 'OECD 5위'
정신건강 복지 인프라 미비…"탈원화, 재정적 지원이 필요조건"
(사진=pixabay) ⓒ의협신문
(사진=pixabay) ⓒ의협신문

우리나라 정신과 병상은 지난 20년간 증가추세다.

인구 1000명당 정신과 병상 수는 1.25병상이다. OECD 회원국 36개국 중 5번째로 많은 숫자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 수는 2006년 5만2382명에서 2016년 7만628명으로 증가했다. 10년 사이 34.8%가 증가한 수치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병상 수가 많은 나라는 일본(2.63) 벨기에(1.37) 독일(1.28) 라트비아(1.28)뿐이다.

최근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의 발언처럼, WHO는 정신과 병상에 대해 1000명당 1병상을 권고기준으로 삼고 있다.

인천 서구는 해당 권고기준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 개설을 불허하기도 했다. 사건 당사자인 제용진 원장은 "해당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이미 권고기준 초과상태로, 정신과 병상을 더이상 둘 수 없다는 얘기다. 맞지 않는 말"이라 항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왜 정신과 병상 수가 많은 걸까?

전문가들은 과거 정부의 정책과 열악한 정신건강 복지 인프라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은 "과거, 정부는 입원 치료를 위주로 한 패러다임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입원실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최근 패러다임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자가 입원한 햇수가 늘어갈수록 사회활동을 하는 데 더 어려워진다는 문제점이 생겼다. 이에 선진국 등에서부터 탈원화정책이 시작됐다.

우리나라 역시 2017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정신건강복지법 등을 개정하면서 탈원화를 시작했다. 병원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을 케어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것.

권준수 회장은 "정부가 탈원화정책을 추진하게 되면서, 병상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애초에 입원할 수 있는 장벽을 높인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아직은 사회에서 정신질환자들을 케어할 수 있는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며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한 사람이 수십 명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pixabay) ⓒ의협신문
(그래픽=pixabay) ⓒ의협신문

현재 우리나라 정신재활시설은 348개다. 이 중 절반이 넘는 179개소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228개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104곳은 시설조차 없다.

지난해 기준,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는 2435명. 이 가운데 정신건강전문요원은 1265명이다. 등록환자는 7만6348명. 요원 1명이 60명을 관리하는 셈이다.

결국, 부족한 정신 관련 복지 시스템으로 인해 환자 대부분을 병원에서 케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권준수 회장은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의 정신질환자들은 지역사회보다 주로 정신병원에서 살아간다. 탈원화라는 것은 환자를 병원에서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퇴원 후, 집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재활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면서 "퇴원 후 갈 곳이 없거나 적응하지 못한 환자들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케어할 수 있는 인프라도 갖추지 않고, 병원의 벽만 높여놓았다는 것"이라며 "환자들은 악화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원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신과 급성기 병상 수가 너무 적은 것 또한 입원 병상 수를 늘리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권준수 회장은 "급성기 환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런 급성기는 대학병원에서 주로 치료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과 보호 병동은 운영할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 시스템이 그렇다"며 "급성기 정신질환자는 다른 과에 비해 더 많은 간호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사항들이 수가나 정책에서 전혀 뒷받침해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병원이 정신과 보호 병동을 없애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급성기 치료를 적절히 받지 못한 환자들이 만성이 됐을 경우, 입원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된다. 이것도 생각보다 큰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1.5%에 그쳤다. WHO가 권고하는 5%에 절반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 때문에 탈원화를 강조하며 법 개정까지 나섰지만, 정작 재정적 지원은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준수 회장은 "인프라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환자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입원 환자 수는 생각보다 크게 변화가 없는 것이다. 병상 수를 줄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기승 전'예산'이 돼버렸지만,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결국 문제는 '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탈원화'. 말은 좋다. 중요한 것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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