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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청구대행 의무화, 심평원 심사위탁 추진 '음모'
실손보험 청구대행 의무화, 심평원 심사위탁 추진 '음모'
  • 홍완기 기자 wangi0602@doctorsnews.co.kr
  • 승인 2019.04.1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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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협회, 환자 정보 유출·악용…"보험가입·지급 거절, 보험료 인상 근거 될 것"
사적 영역에 공권력 간섭, '위헌적 발상'·'의료법 위반 교사' 해당
대한의원협회 ⓒ의협신문
대한의원협회 ⓒ의협신문

병·의원 실손보험 청구대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위탁을 위한 '음모'가 숨어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의료계는 "의료기관 실손보험 청구대행 의무화 법안은 실손보험사의 편익만을 위한 위헌적 법안"이라고 비판하며 강력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대한의원협회는 15일 성명을 통해 "보험업법 개정안의 실상은 자동차보험처럼 심평원 심사위탁으로 가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진단했다.

4월 11일 금융소비자연맹을 비롯해 7개 소비자 단체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주선한 기자간담회에서 "청구 간소화 법안은 실손보험 치료비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종이 서류보다 전산 자료 제출이 개인정보의 유출 위험이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의료계의 우려를 반박했다.

의원협회는 소비자 단체의 반박에 대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은 결국 실손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 위한 용도로 악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소비자들은 처음엔 소액 미청구 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좋아할지 모르지만, 심평원 또는 전문중계기관을 경유해 보험사에 축적한 환자 질병정보를 이용해 보험가입 거절, 보험료 인상, 보험금 지급 거절의 용도로 악용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심사강화'를 위한 '꼼수'일 뿐

사단법인 '소비자와 함께'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실손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은 사유로 '금액이 너무 적어서'가 65.7%로 가장 높았고, '시간 부담 및 번거로움'이 11.4%였다.

의원협회는 이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소액이라 청구하지 않았다는 답변에는 청구할 수 없는 공제액에 해당된 경우가 상당히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 보험연구원이 실손보험금 미청구 실태 조사를 위해 2018년 7월 전국 20세 이상 성인 남여 24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조사 결과, 실손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응답자의 경우 '공제액을 초과하지 않은 소액이라, 보험금 청구권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외래의 경우 1만원 이하가 87.7%, 약 처방은 8000원 이하가 93.4%였다. 공제액을 초과했음에도 청구하지 않은 경우는 외래 12.3%, 약 처방 6.6%에 불과했다.

의원협회는 "실제로 고액 진료비인 경우, 거의 대부분 청구하고, 공제액을 살짝 초과할 정도의 소액인 경우에만 일부 청구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의료기관의 청구대행으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편익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보험업계와 국회의원들이 의료기관 청구대행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금융위원회가 지속해서 주장한 '심사 강화'라고 짚었다.

의원협회는 "의료기관을 통한 청구대행 서비스가 정착되면, 정부는 실손보험 심사업무를 심평원으로 위탁할 것이 분명하다"면서 "결국 금융위원회와 보험사들은 의료기관의 청구대행 의무화를 통해 최종적으로 심평원에 실손보험 심사를 위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비자 편익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구대행 의무화만 돼도 보험사들은 가입자들의 민감 질병정보를 마구잡이로 수집할 수 있다. 이렇게 축적된 자료는 보험금 지급 거절과 고위험군 가입 거절(언더라이팅)에 극히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힌 의원협회는 "보험업계는 의료기관이 청구대행한 환자 정보를 축적하고, 심평원에 심사를 위탁함으로써 현재 자신들이 하는 업무량의 상당 부분을 의료기관에 떠넘기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보험업법 개정안 '위헌성'...'의료법 위반 교사' 소지

보험업법 개정안은 '위헌적 발상'이며, '의료법 위반 교사'에 해당한다고도 짚었다.

의원협회는 "실손보험은 사적 영역의 계약일 뿐 의료기관은 실손보험 상품의 권리와 의무 당사자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두 개정안을 검토한 국회 정무위원회 수선전문위원 역시 검토보고서를 통해 "실손의료보험의 문제는 보험계약 당사자 간의 법률관계에 관한 사항"이라며 "보험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요양기관에게 본연의 업무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민간보험계약 관련 사항에 관해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인식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의원협회는 "민간영역인 의료기관의 경제활동을 공권력을 활용해 제한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국민의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면서 "법적 의무가 없는 요양기관에 청구대행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극히 위헌적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의료법 제21조 제1항은 '환자가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등에게 본인에 관한 기록에 대해 열람 또는 그 사본의 발급 등을 요청할 수 있고, 이 경우 의료인 등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항에서는 '의료인, 의료기관의 장 등은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환자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게 하거나 그 사본을 내주는 등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제3항에는 제2항의 예외 경우(국민건강보험법·의료급여법에 따른 급여비용의 심사·지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른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지급, 국민연금법에 따른 연금 지급 등)를 나열하고 있다.

의원협회는 "의료기관이 민간보험회사에 전자적으로 환자에 관한 기록을 전송할 수 있다는 조항은 전혀 없다"면서 "보험업법 개정안은 '의료법 제21조 제2항'을 위반하고 있다. 결국 두 개정안은 의료기관의 의료법 위반을 교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법 개정은 국민 전체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고 밝힌 의원협회는 "이와 무관한 금융위원회 소관 법률인 보험업법 개정에 떠밀려 의료법을 '개악'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환자정보 유출·민간정보 오용 위험↑

미국의 환자기록 유출사례를 통해, 개인정보 유출과 오용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Protenus Breach Barometer'에 의하면, 2018년 미국에서 1500만 명에 달하는 환자기록이 유출됐다. 유출된 환자기록은 2017년보다 3배 이상 증가했으며, 건강데이터 보안 문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15년에는 해커 집단에 의해 미국 건강보험회사인 앤섬(Anthem)에서 무려 8000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의원협회는 "전자식 전송이 가능하려면, 요양기관·위탁기관(심평원·중계기관), 보험회사 간 전산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각 기관 간에 시스템을 연결하고, 자료 공유가 시시각각 이뤄져야 한다"며 "종이 서류로 제출할 때보다 해킹이나 랜섬웨어 등 공격으로 수백만 명의 질병정보가 순식간에 유출될 위험성을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2014년에 14개 보험사에서 1만3000여 건의 고객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벌어졌다"고 밝힌 의원협회는 "향후 전자식 전송이 의무화된다면, 가입자의 아주 민감한 질병정보가 고스란히 대량 유출될 위험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원협회는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진료정보를 보험사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경우"라면서 "앞으로 가입자들이 받은 모든 진료내역을 의료기관에서 보험사로 실시간 전송하면 향후 보험사에 의한 가입자 민감정보의 오용 가능성은 더욱 심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작 청구 간소화에 역행하는 '뻔뻔한 보험사들'

 2016년 12월 20일 보건복지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공동으로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방안으로 온라인을 통한 간편한 보험청구가 가능하도록 2017년 중 모든 보험사에서 모바일 앱 청구 서비스를 제공토록 했다. 현재 이 서비스는 일부 보험사에서 극히 제한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의원협회는 "개선 방안에는 보험금 미청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해, 가입자 간 형평성을 제고하고, 합리적 의료서비스 이용을 유도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서 "정작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역행하고 있으면서 '소액청구 번거로움으로, 가입자가 청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니 의료기관이 청구를 대행하라는 것은 뻔뻔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의원협회는 "해당 법안은 개인정보 유출·오용 우려가 크며 가입자가 아닌 보험사 편익만을 위한 법안"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법적 의무가 없는 의료기관에 청구대행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위헌성이 짙다. 의료기관이 의료법을 위반하도록 교사하는 해당 법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강력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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