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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21:53 (금)
염색체21번해독(해설)

염색체21번해독(해설)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0.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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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게놈계획(HGP)이 제21번 염색체를 완전 해독한 것은 인체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관문 하나를 통과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인류의 오랜 바램이던 질병의 원인을 밝히고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꿈이 실현 가능한 것으로 다가 왔음을 보여준다.

21번 염색체를 구성하고 있는 유전자의 일부가 다운증후군, 알츠하이머병, 백혈병, 당뇨병, 조울증, 특수청력장애, 일부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인간 염색체 중 크기가 가장 작아 전체 인간 게놈의 15%에 불과한 21번 염색체를 지난해 22번 염색체 해독에 이어 두번째 대상으로 선택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인간의 몸에는 1억개의 세포가 있고 각각의 세포 속에는 세포핵이 있다. 염색체는 세포핵 속에 23개가 들어 있는데 각각 쌍으로 존재하므로 실제로는 46개가 있는 셈이다. 하나의 염색체는 유전자로 구성된 두개의 DNA가락이 나선형 모양으로 이어져 있고 이 두개의 가닥 사이를 염기쌍이 연결하고 있다.

하나의 염색체에는 약 1억개의 염기서열이 있으며 대략 1,000개의 염기서열이 합쳐진 것이 바로 유전자다. 인간의 성(性)과 생김새등 유전적 특성, 질병 등에 대한 정보가 유전자 속에 담겨져 있는데, 각각의 유전자가 어떤 구실을 하는가를 밝혀내는 것이 게놈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미국, 일본, 독일 등 62명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인간게놈계획은 지난해 말 해독된 제22번 염색체가 545개 유전자로 구성된 것에 비해, 21번 염색체는 225개 유전자로 구성돼 있다고 밝혀냈다. 따라서 지금까지 10만개 내외로 추정됐던 인간 DNA의 총 유전자수가 4만개 이하일 가능성이 제시됐고, 이는 인간의 유전자가 초파리나 과일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21번 염색체의 해독은 난치병 극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운증후군 환자는 태어날 때부터 한쌍이 있어야할 21번 염색체가 세쌍이 들어 있으며 알츠 하이머병이나 급성 골수성 백혈병, 스티븐 호킹스박사가 앓고 있다는 근위축성 측색경화증 등의 원인 유전자 127종이 21번 염색체에 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져 있다.

이번에 98종의 유전자가 새로 확인됐는데 이 가운데 조울증의 원인 유전자나 암의 발병과 억제에 관련된 유전자가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염색체를 분석했다고 해서 이같은 난치병의 치료가 지금 당장 가능해 지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개별 염색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확한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

인간게놈계획은 오는 2003년이면 전체 유전자 지도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지만 이 지도를 치료에 응용하는데 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세의대 생화학교실 이진성 교수는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고 질병관련 유전자의 위치, 기능을 밝혀냈다 하더라도 이를 질병 치료에 응용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라며 "지금까지 벌인 게놈 연구 이상의 더 많은 연구 노력이 있어야 치료 단계까지 발전할 수 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21번 염색체 해독이 우리나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쉽게도 난치병 극복 같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학 종속(從屬)의 암울한 미래의 서곡이라게 대부분의 지적이다.

현재 게놈 연구를 주도하는 나라는 단연 미국 22번, 21번 염색체를 해독한 인간게놈계획은 겉으로는 일본, 독일, 영국 등 전세계 16개국 연구소가 공동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 1월 인간 유전자 염기서열 지도를 97%까지 완성했다고 밝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셀레라 지노믹스社도 미국의 민간 기업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인간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고 주장한 더블트위스트社 역시 미국 기업이다. 미국이 정부와 민간기업 할것없이 게놈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퍼붓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유전자 정보의 상용화'를 위한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더블트위스트社는 세계적인 네트워크 컴퓨터 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제휴하고 인간유전자 지도와 정보 및 분석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주요 언론은 미 국립보건연구소가 겉으로는 정보의 완전 공개를 천명하고 있지만 천문학적인 생명공학 기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미국 정부와 기업들이 유전자 정보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할 경우 개발도상국은 그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인슐린유전자를 발견한 사람에게 이 유전자 정보를 이용해 어떤 물질을 만들때 사용료를 내야 하는 식이다 게놈 연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역시 '사용료를 받는' 나라가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게 국내 과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유전자 정보의 상용화'에 대해 비관적"이라는게 연세의대 생화학교실 안용호 교수의 얘기다. 유전자 지도가 공개된 이후에라도 특정 질병 유전자를 찾아내 분석에 성공하면 특허가 가능하지만 기초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동.서양의 유전자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 유전자의 역할, 중요도가 차이 나므로 한국에 적합한 데이터를 입수해 선점, 시장 보호를 하면 선진국에 완전 종속되는 비극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올 7월부터 과학기술부가 주도하는 21세기 프론티어 사업에 포함된 '휴먼 게놈 사업'에 거는 기대가 그 어느때 보다 큰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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