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관련 법·제도, 의료인 처벌에만 초점 고위험 수술 기피 증가
위험도에 대한 낮은 수가 적정 보상 필요 및 의사 재량권 인정도 중요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이 강화될수록 의료인들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심해져 결국에는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보다는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의료분쟁이 지속해서 증가하게 되는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저수가가 가장 큰 원인이므로 위험도가 수가에 충분하게 반영돼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사협회 의료배상공제조합이 2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주최한 '의료분쟁 기저에 법과 제도 점검과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의료분쟁의 근간에 해결해야 할 법적·제도적 문제가 다뤄졌다.
이날 토론회는 의료사고 및 의료분쟁에 대해 의료제도(법과 규제)가 지나치게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문제가 거론됐으며, 이를 해결하려는 방안이 제시됐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와 이길연 경희의대 교수는 '의료제도와 의료분쟁 연관성', '의료분쟁 책임 강화와 의료행위 기피' 이유를 국내외 사례를 통해 밝혔다.
성종호 정책이사는 "수요자·공급자, 그리고 사회적·제도적 여건에 따라 의료분쟁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의료분쟁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분쟁조정원의 의료분쟁 상담 건수는 2012년 2만 6831건에서 2016년 4만 6735건으로, 조정신청은 2012년 503건에서 2016년 1907건으로 연평균 각각 11.7%, 30.5% 증가했다. 또 의료사고 민사소송보다 형사사건이 증가했다.
성 이사는 의료사고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제도적 의료행위 제한 행태를 ▲급여항목 ▲급여기준 ▲저수가 ▲비급여의 문제로 구분했다.
성 이사는 "의료행위 설명에 소용되는 시간에 대한 급여 불인정, 급여 의료행위가 의료행위 축소 조장, 신의료기술에 대한 급여화 속도 미진이 급여항목에서 의료사고를 유발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또 "모호한 급여기준으로 과도한 삭감 초래, 현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환자와의 사적 계약 불인정, 의료행위에 대한 심사 강화 및 삭감), 중증 및 필수의료에 대한 좁은 급여기준도 의료사고를 유발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속적인 저수가 때문에 의료인이 중노동에 노출(업무강도가 OECD 평균의 3배)되고, 의료인력 충원 어려움, PA 고용 증가와 합법화 움직임, 필수 진료과의 전공의 선발의 어려움 지속도 해결되지 않아 의료사고가 유발된다"며 "대폭적인 재정투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 이사는 "작은 의료사고도 의료분쟁으로 확대되다 보니 과잉진료, 방어진료도 늘고 있다"며 "현행 수가에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은 위험도를 적정하게 보상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길연 교수는 의사의 법적 책임 강화와 관련된 여러 사건을 소개하면서 처벌 강화가 오히려 방어진료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신해철법 시행, 출산 중 태아 사망으로 1심에서 의사의 실형 선고, 이대목동병원 사건으로 의사 개인정보 노출 및 구속 등의 사건을 보면서 의사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강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다 보니 누가 위험한 수술을 하겠냐"며 "민사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형사로 처벌하겠다는 것에 대해 의료인들은 굉장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 교수는 "미국의 경우 의사 42%가 환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것이 무서워 과잉진료를 한다는 설문결과가 있었다"며 "의사의 책임 한계가 불명화 해 방어적 치료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공제조합원 대상 설문결과에서도 의료분쟁에 대한 의료인의 책인 감화로 중단한 의료행위가 있었냐는 질문에 19.8%가 '있다'고 응답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위험도 높은 의료행위를 피하게 된 계기 중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제정(39.3%)이 가장 큰 이유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영국에서도 처벌에 대한 공포 때문에 48%가 고위험도 수술을 피하겠다는 조사결과가 있다"며 "의료인에 대한 처벌 강화는 궁극적으로 환자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법조계는 최선의 진료를 위해서는 무조건 처벌 강화보다는 의사의 재량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시각을 보였다.
전병남 변호사(백인합동법률사무소)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의료행위의 제한, 의료행위를 규격화하는 요양급여기준이 의사들이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게 하기보다는 경제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며 "최선의 진료를 위해서는 의사의 재량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의사가 전문가적 양심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다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고, 또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진료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배준익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는 "의사의 요양급여 준수 행위에 대한 면책이 필요하고, 요양급여기준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의사 재량과 요양급여기준이 충돌하지 않도록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