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소장 "여러 국가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
"잘못된 의료정책 비판, 의사들 당연한 권리"
"의사단체 행동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히 '이기적인' 현상이 아니다."
대한의사협회 정책연구소가 각 나라의 의사단체 집단 활동사례를 발표하면서 의사단체 행동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짚었다.
한국에서 의사단체 행동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의사는 보통 '잘 사는 직군'으로 인식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처럼 의사는 이익이 아니라 희생과 봉사 정신을 겸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나 이익 활동에 대해 흔히 '밥그릇 챙기기'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의사 궐기대회나 의사 총파업 기사에도 비판적인 댓글이 주를 이룬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단체 행동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며,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의료정책연구소의 자료가 눈길을 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는 20일 카드뉴스를 통해 세계 각국 의사회 단체행동 사례를 발표했다. 의사단체 행동은 전 세계적으로 15개 국가에서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200일 넘게 파업을 진행한 사례가 먼저 눈에 띈다. 이스라엘의 '임금동결안 반대를 위한 파업'이다. 재무부 장관의 의사 임금 동결안에 반대한 의사들이 모든 외래진료와 비 응급수술을 거부했다. 파업은 2000년 3월부터 10월까지 무려 217일간 진행됐다.
현재진행형인 단체행동 사례도 있다. 그리스의 '인력 감축, 임금 삭감, 연장근로 반대를 위한 파업'이다. 그리스 국공립 병원 종사자들은 금융 위기 후 국공립 병원의 인력 감축, 임금 삭감, 연장근로 조치에 반대하며 2012년부터 현재까지 24시간 또는 48시간 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 의료계의 가장 큰 이슈인 '적정 수가'를 요구하는 파업사례도 있다. 일본의사회는 1961년 의사 약 2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적정수가 요구를 위한 파업'을 강행했다.
이 밖에도 ▲영국 수련의들의 근로 환경 악화 반대 ▲독일의 저임금 및 근무조건 개선 요구 ▲프랑스의 제3자 지불제도 반대 및 기본진찰료 인상 요구 ▲캐나다의 무상의료 추진 반대를 위한 서스캐처원 의사 파업 ▲스페인 마드리드의 의료민영화 반대 등이 있다.
안덕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국민의 생명에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 선에서 집단행동은 당연한 얘기"라면서 "의사단체 행동에 따른 사망률이나 질병 발생률 증가는 세계 어디에서도 보고된 바 없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1986년 캐나다 의사 총파업 때 레지던트 신분으로서 파업 참여 의사를 대신해 응급실을 지킨 경험을 언급하며 "세계적으로 의사 단체행동은 아주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의료종사자들은 정신적·육체적 노동을 제공하는 등 노동자의 속성이 강하다"고 밝힌 안 소장은 "잘못된 정책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의사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2012년 세계의사회(WMA)에서도 의사들의 단체 활동을 지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의사회는 성명서에서 "의사는 환자의 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직·간접적 근로조건의 개선을 위하여 항의 행동을 취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다만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환자들에 대한 그들의 윤리적·전문적 의무로부터 제외되지 않는다"며 의사의 윤리적 의무를 준수하는 선에서의 단체활동을 권고했다.
한국 의사들의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2000년 '잘못된 의약분업 반대'를 슬로건으로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2014년 3월 10일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허용 반대'를 위한 집단휴진을 강행했다. 2017년 12월 10일 제1차, 2018년 5월 20일 제2차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는 문재인 케어의 '비급여 전면 급여화' 정책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