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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행복종합선물세트?
청진기 행복종합선물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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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0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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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정경헌 원장(서울 강서·정내과의원)

행복종합선물세트.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처음 들었어도 느낌 있으시죠. 맞습니다. 짐작하신대로 다양한 행복이 가지런히 채워진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겁니다. 

그러면 행복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서울대학교 행복연구 센터장인 최인철 교수는 우리나라 성인을 대상으로 '어떨 때 행복 한가?'를 설문조사 했습니다. 

행복은 기쁨 외에 어떤 의미나 유용성이 있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결과를 수학 도표로 나타냈습니다. 가로인 x축을 '의미'로 설정했고, 세로인 y축은 즐거움으로 표시했습니다. 그렇게 축을 잡고서 행복의 종류에 따라 각각 좌표로 표시했습니다. 그러면 x축과 y축 모두 양의 값을 가진 I사분면이 즐거우면서도 의미도 있으니 행복은 이곳에 자리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자식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자식 입장에서는 부모와 함께 하는 게 행복감이 약간 떨어짐), 부하직원과 함께 할 때(상사와 함께 하는 부하는 행복감이 떨어짐)등 관계와 관련되는 행복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행위에 대해 행복을 느끼는 것에는 먹을 때, 운동할 때, 걸을 때, 산책할 때, 얘기할 때, 자원봉사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I사분면 중에서도 x와 y값이 둘 다 가장 큰 곳에 위치한 좌표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답은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에는 먹는 것, 걷는 것, 운동하거나 운동이 되는 것, 얘기하는 게 모두 다 가능하지요. 거기에다 연인이나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한다면 더욱 즐겁겠지요.

그래서 최인철 교수는 여행을 '행복종합선물세트'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렸을 때 선물세트를 받고 기쁘고 설레던 기억 있으시죠? 저는 이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서 그러면 과연 내게는 어떤 행복선물세트가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첫 번째, 전문의가 되어 첫 월급을 받고 가족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갔던 때가 떠오르더군요. 유모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움직이는 동물을 보며 울던 모습, 흠칫 놀라 커진 애들의 눈망울, 파란 하늘, 평화롭게 흘러가는 하얀 구름, 살랑살랑 불어대는 온기를 머금은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 온 봄내음.

그뿐인가요? 아내가 준비한 도시락을 맛있게 받아먹는 애들의 입모양과 미소, 깔깔대는 웃음소리, 돌아오는 차안에서 새근거리며 잠든 얼굴…….

또 하나, 부모님과 함께 일본 여행을 한 기억입니다. 녹내장이 심한 아버지와 관절염으로 오래 고생한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쩌면 이번이 부모님 생전 마지막 여행이 될지 모른다는 마음에 삼남매가 용기를 냈던 거거든요. 그런데 그 여행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자 그 여행이 더 소중한 선물이 되더라고요. 일제 강점기 때 학교를 다녔던 아버지는 영어를 못하는 일본인에게 일본어로 묻고 주문하며 폼 잡으셨거든요.

부모님과 함께 긴 시간 동안 옛날 얘기를 나누고, 일본의 음식과 문화를 직접 느끼는 것도 물론 좋았습니다. 게다가 부끄러운 고백이건데, 부모님께 평소 살갑게 다가서지 못하고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제게 그 가족여행은 위로가 됐고 사소한 면죄부 같았답니다. 

흔히 행복은 추구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지나놓고 보니 행복했다라고 느끼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이제는 한 발짝 나아갑니다. 행복을 직접 찾아 나섭니다. 세월이 흐르면 행복선물세트는 더 다양해지고 차곡차곡 쌓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불현 듯 열리기도 합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나보다 더 속상해 하던 친구의 모습과 진심으로 위로 받던 그 날의 행복세트가 열리게 되고요. 만약 삶이 너무 힘들고 야속하면 잠시 심호흡을 하고 행복세트를 뒤적이자고요. 찾다보면 혹시 알아요? 함께 놀아달라며 출근길을 막고 떼쓰던 돌쟁이 아들이 보이거나, '선생님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다'는 환자 얼굴이 보일지.

나이 들어 내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가장 좋았던 행복종합선물세트부터 하나씩 꺼내 맛보자고요. 두고두고 곱씹고 가루만 남으면 그땐 살을 살짝 붙여서라도 갖고 있기로 하죠.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면 눈을 감고 당신과 함께한 시간을 떠올립니다. 행복세트가 열리며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순간이나마 내 가슴에 온기를 주는 살아있는 당신이 되더라고요. 시간이 더 흘러 우리가 떠날 때가 되면 빈손으로 떠나지 말기로 해요. 머리와 가슴 속에 소중한 기억들 넘치게 담고 가자고요. 그래야 남아 있는 사람들도 그 기억에 위로 받고 힘내고 자신들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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