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방법원, 심박동수 미측정과 사망...형법상 상당 인과관계 미입증
재판부 "제왕절개 빨리 했다면 사망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어"
자궁내 태아 사망 사건으로 1심에서 금고 8월형을 선고받은 산부인과 개원의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인천지방법원은 10일 자궁내 태아 사망 사건 항소심(2017노1333)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인천지방법원은 자궁내 태아 사망 사건 항소심에서 "태아의 심박동수 감소를 발견하고 제왕절개술을 시행했더라면 태아의 사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 "인과관계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을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1심(2016고단2288) 재판부는 A산부인과 의사가 주의의무를 위반해 자궁 내 태아가 사망했다며 과실치사죄를 적용, 금고 8월형을 선고했다.
사건은 2014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독일인 산모 B씨는 11월 24일 오후 10시경 분만을 위해 A산부인과의원에 입원했다.
2014년 11월 25일 오전 6시 15분부터 오전 9시 6분 사이에 5차례나 태아의 심박동수가 급격하게 낮아지는 증세가 발생했으나 A산부인과 의료진의 대처로 다시 안정을 찾았다.
B산모는 오후 2시 30분경 진통을 시작했다. A의사는 오후 4시 25분경 통증을 완화하는 무통주사액을 투여하고, 오후 4시 30분경 태아의 심박동수를 검사했으나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A의사는 태아심박동수 검사 감지기를 찬 채 20시간 가량 진료를 받다 지친 산모가 감지기를 풀어달라는 요구를 외면하지 못했다.
1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6시경 무통주사의 약효가 떨어져 다시 통증을 호소하는 B씨와 태아를 살피는 과정에서 태아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천지법 1심 재판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감정서와 수사보고를 토대로 "태아 심박동수 감소가 5차례 발생한 이후 자연 진통에 의한 자궁수축이 있었고, 이 경우 다시 태아심장박동수 감소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으므로 출산이 완료될 때까지 산모 상태와 태아의 심박동수에 대해 보다 세밀한 관찰이 요구된다"면서 "태아 심박동수 검사 감지기를 제거 이후 의료진을 통한 지속적이고 빈번한 상태 체크가 요구되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정상임산부의 경우 진통 1기에 적어도 30분 간격으로 태아심박동을 측정할 것이 의학적으로 권고되고, 무통주사 투여 이후 1시간 30분 가량이나 산모의 상태내지 심장박동수를 검사하는 등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밝힌 재판부는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빠른 제왕절개 수술 등으로 태아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인다"면서 "산모 및 피해자를 방치한 과실이 인정되고, 과실과 태아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도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판단을 달리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에서는 피해자 측에서 의료상과실이 있는 행위를 증명하고, 그 결과사이에 다른 원인이 없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의료상의 과실과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를 추정해서 증명책임을 완화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형사재판에서는 인과관계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면서 "의사의 진료상 과실이 피해자 사망에 기여하는 인과관계가 있는 과실이 되려면 그에 의한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태아 심박동수 감소를 발견한 후 제왕절개수술을 결정했더라도 소규모의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피고인이 제왕절개 수술을 시행하기 위해선 수술 준비 등 약 1시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태아의 심박동수 감소를 발견하고 수술을 시행했다 하더라도 태아의 사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자궁내 태아 사망은 원인불명인 경우가 많고, 이 사건의 경우에는 태아의 부검도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사망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태아 사망의 구체적 원인, 사망시각을 알 수 없는 이 사건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잘못과 태아의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공소권이 없는 때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해야 함에도 유죄를 선고한 1심에서는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에 의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면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선고에 대해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인천지법 항소심 재판부의 무죄 선고를 환영한다. 그동안 산부인과의사회를 비롯해 의협 집행부는 회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탄원서와 법률지원 활동을 펼쳐왔다"면서 "의협은 다시는 전문적인 의료분야에서 잘못된 판단이나 감정으로 피해를 보는 마음 아픈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제도 개선과 법률 문제에 대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숙희 서울특별시의사회장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서울역 앞에서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의 주도로 이뤄진 회원들 집회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 "의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일이 있을 때는 이의를 제기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항소심 선고에 앞서 선처를 호소하는 5025명의 서명을 담은 탄원서를 인천지방법원에 제출하고 집회를 열어 산부인과의 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선 김동석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사필귀정"이라며 이번 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김 회장은 "모니터를 한다고 해서 태아 생명을 연장시키거나 예후가 좋아진다는 말은 미국 산부인과 교과서에도 없다"면서 "1심이 너무 과했고 사회적 파장도 너무 컸다. 분만을 맡을 전공의가 없어지는 세상에서 환자와 의사의 불신만 높였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 보는게 무섭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판결이 의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나올 경우 태아의 심장박동이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정상분만을 할 의사는 없을 것"이라며 "산부인과 기피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사명감으로 버티고 있는 의사들이 좌절해 분만 인프라 마저 붕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만 인프라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분만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뇌성마비나 사망 사고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한 김 회장은 "의사의 고의나 과실이 아닌 경우 형사처벌을 면하도록 하는 의료사고 특례법도 제정해야 한다"면서 "의사가 소신껏 진료할 수 있고, 불의의 사고를 입은 산모와 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변호를 맡은 박복환 변호사(법무법인 샘)는 "인신을 구속해야 하는 형사 사건에서 의료 분쟁과 조정 업무를 맡고 있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감정업무를 하는 게 적절한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아쉬움이 있지만 항소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