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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병사' 진단서 유감
[시론]- '병사' 진단서 유감
  • 이숭덕 서울의대 교수(법의학교실)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7.10.3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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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사망진단서 통해 검시제도 참여...법률지식 필요
법규정 따라 작성해야 논란 해결...교육 기회 늘려야
▲ 이숭덕 서울의대 교수(법의학교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리를 끄덕여 본다. 항상 "넓게 보아야 하는데, 밝은 곳도 함께 보아야 하는데"라고 다짐해 보지만, 여러 뉴스 가운데 자꾸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부분에 눈이 쉽게 가는 것은 아마도 법의학이라고 하는 내 전공 때문이리라. 
 
최근 유명 식당의 주인이 개에 물린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소위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여러 곳에서 많은 말들이 펼쳐지고 있다. 서로 다른 관점들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진단서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차원에서 "이전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일말의 서글픔을 느끼게 된다. 
 
지난해 한 사람의 사망진단서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 전체는 커다란 홍역을 치렀고, 그리고 이 사건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당사자나 가족들에게도 물론 매우 커다란 사건이지만, 그 영향은 가족의 범위를 넘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유명한 사람의 죽음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회는 망자의 인권을 위해, 나아가 사회의 안녕을 위해 구성원들의 죽음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나라마다 검시(檢屍)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검시제도의 책임자는 검사다. 하지만 검사가 모든 사람의 죽음을 직접 확인하고 조사할 수는 없으므로 상당 부분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의사는 의료현장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죽음이라는 현상과 멀어지기 어려운 직업이다. 
 
의사는 사망진단서를 통해 검시제도에 참여하게 되는데, 현 의료제도에서는 사망진단서를 바르게 작성할 의무는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의사에게 동일하게 부여되어 있다.
 
사망진단서에는 의료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여러 항목을 기재해야 한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항목이 없으며, 특히 사망원인과 사망의 종류에 대한 쓰임새가 많이 강조되고 있다. 
 
사망의 종류는 크게 내인사(병사), 외인사, 불상(不詳, 알 수 없음)으로 구분한다. 만약 병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망자의 사망을 확인한 의사는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서에 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사망은 사회의 공적 체계에 의해 공정한 조사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의사가 이러한 절차를 매우 어렵게 느끼고 있다. 본디 사망의 종류라는 것이 단순한 의학적 사실의 범위를 넘어 어느 정도 법률적인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진단서 작성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교육의 기회나 자세한 안내 또한 충분하지 않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어깨너머 배운 얕은 경험이나 추측에 의지하여 사망진단서를 발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실제 그렇게 작성된 사망진단서를 자주 접하고 있다.
 
"개에 물린 것이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면 당연히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이다. "개에 물린 이후 치료하는 과정에서 병원감염이 발생하였고, 이후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사망의 종류는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특정 사망이 '병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려면 병으로 모든 사망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몇 개의 진단명을 나열할 수 있다고 '병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망의 과정에 여러 원인의 개입 가능성이 있지만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경우라면 당연히 '명확하지 않음(불상)'이라고 적시하고, 다른 전문가의 판단을 구해야만 한다. 사망진단서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위한 공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뜨거운 한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주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예상 밖이다. 올바른 진단서가 원칙적으로 작성되었고, 이에 따라 사건이 진행되었다면 과연 이 사건과 관련한 논란이 이렇게까지 진행되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개에 물렸음이 망자의 사망에 중요하였지만, 병사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이해 당사자 의료진이 '병사' 진단서를 발행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제기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처음에는 외인사 진단서를 발행하려 했지만, 경찰의 설명을 듣고 병사 진단서를 발행하였다"는 발언은 진단서 발행의 의미, 나아가 의사의 기본적인 의무를 망각한 발언이다. 사망진단서는 정해진 원칙에 맞게 발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주위 환경에 맞추어 고무줄처럼 바뀌는 대상은 아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외인사 진단서 발행 이후 진행할 수도 있는, 부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이와 함께 불편해지는 행정적인 과정이나 유가족의 강한 불만 등등. 
 
하지만 이는 의사가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소위 업보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의사는 항상 환자, 가족이나 사회가 좋아하는 것보다는 이들에게 좋을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해야만 하는 전문가여야 한다. 
 
특히 진단서와 같이 법에서 규정된 규칙이 있다면 단순히 환자에 대한 시혜적인 생각을 넘어 좀 더 관련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강제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진단서와 관련하여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빈번하게 다양한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진단서의 부정확성, 나아가 의사들의 여러 활동에 대한 불신이 한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 최고 전문가 영역 가운데 하나로서의 의사가 발행한 진단서가 여러 논란의 해결점이 되어야지, 새로운 논란의 시작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사망진단서와 관련하여 큰 홍역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상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바른 사망진단서의 발행은 사회로부터의 의사 신뢰성 회복을 위한 또 다른 시작점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의료계의 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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