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시인 마종기,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의사 시인 마종기,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 윤세호 기자 seho3@doctorsnews.co.kr
  • 승인 2017.09.06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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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대한민국예술원에서 시상식 가져
물방울 화가 김창열· 성악가 박수길 등 함께 영예
▲ 마종기 시인이 5일 대한민국예술원에서 진행된 제62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시상식에 앞서 예술원 앞마당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이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째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짐승 타는 냄새로 추운 벌판은 침묵보다 살벌해지고
올려다볼 별 하나 없이 아픈 상처만 덧나고 있다.
 
남미의 남쪽 변경에서 만난 양들은 계속 죽기만 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파타고니아의 양’ 마종기(2008년 제54회 현대문학상 수상)
 

 

2017년 <제62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 부문 수상자에 마종기(78세) 시인이 그 영예를 안았다. 마종기 시인은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의사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며, 한국문단의 중심에 선 시인 마종기….
그는 젊은 시절 연세의대를 졸업 후 서울의대 대학원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타국에서 외로운 의사의 길을 걷는다.  

마종기 시인은 녹록지 않았던 타국에서의 생활을 한 일간지를 통해 '내가 만일 외국에 오래 나가 사는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고국의 알량한 시인 노릇도 오래 끌어가지는 못했을 것임을 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문학은 내가 외국에 나가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깊은 어둠 속을 헤맬 때, 내가 불안과 당황과 절망의 늪에서도 크게 낯설어 하지 않고 찾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내 위로였기 때문에 계속해 왔다. - 중략 -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도구로서 내 시가 존재하기 때문에 내 시는 거의 언제나 내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진심이 아닌 것이 어떻게 인간을 위로할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시 앞에서는 정직하려 했고 성실하려고 했다.'라며 당시를 소회한다.

오하이오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등 의사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했던 그는 그 곳에서 얻은 영감을 시를 통해 승화, 소통하는 등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주요 대표작으로는 '정신과병동(그가 정신과 병동 인턴시절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시로 정신과 병동 환자의 눈을 통해 삶의 쓸쓸함을 노래한 시다. 시인 김수영이 1963년도 최고의 시라고 칭찬을 한 작품으로 알려 졌다)'·'바람의 말(삶의 뒤안길에 대한 인식이 돋보이는 시로, 쉬운 언어로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적 시선과 삶에 대한 따뜻한 인식이 잘 드러나는 시다)'·'파타고니아의 양(2008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으로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에 관한 사유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등이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학적 소양'

"의사로서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부문 상을 받게 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말문을 연 마종기 시인.

"지난시절 미국에서 의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시를 쓰는 시인이었고, 더불어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곳에서 명예로운 최고의 교수상도 받아봤고, 큰 의사그룹의 의장직도 맡아봤다. 그런데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의학지식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닌 나를 주위사람들이 왜 '실력 있고 훌륭한 의사'라고 추겨 세우나 생각해보았더니 그것은 아마도 내가 한국의 시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며 “시인이었기 때문에 환자를, 인간의 감정을 남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조금 더 측은지심으로 환자나 그 가족들을 대했던 진심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시를 쓰는 의사로서의 경험을 회상하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마종기 시인은 의료계 후배들을 위해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통섭'의 개념을 예로 들면, 과학과 예술 혹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합쳐진다면 더 좋은 과학자 또는 더 좋은 문학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국 의료계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과대학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인문학이나 예술학 강의가 의대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며 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대한민국예술원상에 함께 선정된 예술인은 미술 부문에 물방울 화가 김창열, 음악 부문은 성악가 박수길 씨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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