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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앞둔 환자에게 녹음기 대고 "인공호흡 원하나"
임종 앞둔 환자에게 녹음기 대고 "인공호흡 원하나"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7.07.2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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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의료계 우려 안은채 8월 4일 시행
법정서식 10여개, 처벌규정 14개..."시범사업 우선"
 

연명의료와 호스피스완화의료의 개념이 혼재돼 법 취지를 달성할 수 없다는 의료계 및 학계의 우려에도 8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본격 시행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은 임종과정의 환자의 생명권과 의료선택권을 지켜주기 위한 것으로 2016년 2월 3일에 공포됐으며, 호스피스 완화의료 부분은 2017년 8월, 연명의료 부분은 2018년 2월부터 시행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두 가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확대하고 국민들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환자 중심의 따뜻한 임종의료문화를 정착시키는 것과, 연명의료중단의 법적인 절차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 시행이 코앞인데도 법률 및 시행령·시행규칙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국무회의는 지난 18일 '연명의료 결정법' 시행령안을 의결해 의료현장에서의 혼란이 예상된다.

'연명의료'·'호스피스' 혼용·비윤리 규제 그대로 나둬

법에서는 '연명의료' 대상자를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명시했다. 그런데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정의를 '말기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이하 말기환자등)로 하면서 '연명의료'와 '호스피스제도'를 하나의 법 안에 무리하게 합쳤다.

즉, 연명의료 대상자를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자에 포함시키면서 의료 현장에서는 말기환자들에 대한 호스피스·완화의료 판단과 함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및 유보 결정까지 해야 한다. 또 이들 환자를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자로 분류해야 하는 일까지 해야 한다.

출발부터 연명의료와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뒤섞이다 보니 8월부터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하려면 말기환자 이외에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중단과 유보결정을 위해서는 환자로부터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받아야 한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에 직접 서명 또는 기명날인할 수 없는 경우, 참관인 입회하에 녹취해 기록하고 관리기관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법에서 명시한대로 하려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곧 임종할 것 같으니, 인공호흡기를 원하는지?" 녹음기를 갖다 대고 진술을 받아 녹취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윤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이와 관련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를 비롯해 13개 학회는 법안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입법예고되자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 법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를 벗어나 오히려 환자에게 일종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며, 환자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절차는 폐지되고 의무기록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담당의사 자격서 배제…가족과 대리인 역할도 배제

담당의사의 자격에서 전공의를 배제한 것도 문제다. 법에서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말기환자'를 판단할 때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인으로부터 의학적 판단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하위법령에서는 전공의는 의료법에 근거한 의사 자격을 갖고 있음에도, 담당의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담당의사 자격에서 전공의를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적기에 환자를 위한 최선의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될 수 있고, 이는 연명의료 유보 혹은 중단에 관한 환자의 결정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최혜진 연세의대 교수(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는 지난 4월 26일 대한암학회와 대한임상암학회가 주최한 연명의료결정법 심포지엄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가 필요한 대상자를 판정할 때에는 전문의 1명이면 충분하고, 연명의료중단결정을 할 때 임종과정에 대한 판단은 환자곁에 주로 있는 전공의를 포함해 전문의 1인이 포함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가족과 대리인의 역할을 배제하는 것도 문제다. 법에서는 가족과 대리인의 역할을 배제하고 환자의 자기 결정권만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환자가 원할 경우 대리인을 정하도록 허용해야 하고, 특히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 가족이 있으나 연락이나 논의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 환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대리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호스피스이용신청의 절차에 있어 법률이 허용한 가족 또는 지정대리인에 의한 신청 규정을 하위법령에서 구체적으로 보완해야함에도 하위법령에서는 지정대리인 범위 및 절차를 규정하지 않고 있어 가족이 없는 경우 호스피스 이용이 불가능해질 우려가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팀 인력 부족…심폐소생술 불법 가능성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뿐만 아니라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환자까지 포함돼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위한 인력이 많이 요구된다.

따라서 하위법령안에서 호스피스 병동의 인력 배치기준은 호스피스 돌봄의 질적 향상 뿐 아니라 호스피스 선택과 같은 연명의료 결정 과정의 수월성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시돼야 하는데, 이에 부합하는 간호사 및 사회복지사의 인력 기준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현정 과장(서울의료원 혈액종양내과)은 "말기환자 및 가족에게 맞춰져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팀의 돌봄 서비스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까지 돌보게 되면 오히려 질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병원에서 실시하던 심폐소생술(DNR)도 불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박진노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법제이사는 지난 6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연명의료계획서를 본인만 작성할 수 있도록하고 있는데, 환자가 DNR 금지를 원했을 때 병원에서 DNR를 하게 되면 불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 안정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DNR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지금의 연명의료결정법보다 환자의 존엄한 죽음에 더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과도한 처벌규정 개선하고 일정기간 시범사업 반드시 해야

과도한 법정서식과 처벌규정도 의료인은 물론 의료기관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의료진의 질적인 환자 돌봄을 방해할 뿐 아니라 입법 취지와 반대로 의료인들의 임종기 판단을 지연시키고 연명의료가 조장되거나 지속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혜진 교수는 "실제로 법안을 보면 14건의 벌칙조항이 있고,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 과정에 작성하는 서식이 10장 이상이나 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법안이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자 시행을 코앞에 둔 상황임에도 무리하게 법을 시행하기보다 일정 기간을 두고 시범사업을 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등 13개 학회는 "하위법령의 표현 및 기준이 애매한 부분이 많아 그 해석에 큰 혼선이 있고, 또 처벌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조장할 위험이 높다"며 "이러한 혼란을 막으려면 시범사업이 먼저 이뤄져야 하고,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처벌조항은 유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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