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식의 미국 수련의사 일기 ③
양현식(하버드대학 브리검우먼스호스피털 신경과 전문의)
안녕하세요. <의협신문> 독자 여러분. 이번에 미국 의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게 된 양현식입니다. 저는 2009년에 한국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공중보건의사 근무를 마친 후 2012년 도미해 신경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고 작년 7월부터는 행동신경학 펠로우(인지신경의학/신경정신의학)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의사 생활 경험은 공중보건의사 생활밖에 없었고, 또 미국에서도 3차 병원 수련의 생활이 전부인지라 저는 이 연재를 통해 두 나라의 현실을 비교하기보다는 제가 경험해 왔던 수련의 생활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
내가 수련받은 신경과 레지던트 프로그램은 두 병원들을 돌아가며 로테이션하게 되어 있는데, 이 두 병원들은 대형 대학병원들이었다.
인턴을 했던 중형 병원과 달리 대형 병원의 입원 환자 관리는 내과 이외에도 다른 많은 과들의 병동에서 함께 이뤄진다. 내과에서도 순환기 내과와 혈액 종양 내과는 과의 특성상 독립 병동을 갖고 있었다.
내가 수련받은 두 병원의 경우 내과계(내과·신경과 등)의 입원 환자는 한 명의 교수가 한 병동 팀을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내과는 많은 경우 외래 환자를 보지 않는 호스피탈리스트가 각 병동을 맡고, 다른 과들은 많은 경우 평상시 외래 환자를 보는 교수가 턴을 돌아가면서 2주간 외래를 쉬고 병동을 맡아 입원 환자만 책임지고 진료하는 시스템이다. 즉, 기본 골격은 결국 각 병동의 입원환자는 한 팀이 맡아 진료를 하며, 필요하면 협진을 요청하는 시스템으로 중형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과계의 경우는 수술을 집도하는 교수 앞으로 환자가 입원하며, 레지던트들은 수술실에 있는 경우가 많아 PA(physician assistant)들이 병동 관리에 큰 역할을 했다.
2년차 전공의로서 첫 근무를 시작한 메사추세츠종합병원 신경과의 경우 신경중환자실·혈관신경병동·일반신경병동·신경종양병동 등 총 4개의 병동 팀과 세 개의 협진팀(일반·혈관·응급실)으로 이뤄져 있으며, 다른 병원인 브리검&여성병원(여성 전용이 아니라 병원 설립 역사상 붙여진 이름이다)의 경우 신경중환자실, 그리고 두 개의 병동팀(혈관·일반 구분이 없다)과 하나의 협진팀으로 이뤄져 있다.
내가 수련받은 프로그램은 병동과 응급실은 2년차들이 주로 담당하고, 3년차는 주로 협진 팀에서 협진의가 되어 일하며, 4년차는 병동 혹은 협진팀을 이끌며 독립된 신경과 의사가 되기 전 마지막 준비를 했다.
3∼4년차 중 각 병원당 한 명씩은 야간당직하는 2년차들을 지원하고 야간 협진을 맡아 독립된 의사결정을 하는 연습을 한다. 신경과의 경우 교수는 야간당직을 하지 않지만, 고년차 전공의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항상 연락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나의 병동 팀은 4명의 2년차 전공의, 1명의 4년차 전공의, 그리고 1명의 교수로 이뤄진다.
1년차(내과) 때와 비슷하게 하루 일정은 오전 7시 경 밤샘 근무를 했던 동료에게 인계를 받으며 시작한다. 2년차부터는 연속 28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기에 4명의 2년차 병동 레지던트가 하루씩 돌아가며 밤샘 근무를 하고 야간팀은 따로 없다.
당직이 아닌 날은 오전 7시부터 예비회진 후 7시 반 경 모닝리포트에서 밤새 협진팀이 새로 만난 환자들에 대해 교수들과 앉아서 30분간 토의한다. 아침 8시부터는 회진. 밤샘근무를 한 전공의는 신규 환자들에 대해 보고하고, 다같이 회진을 하게 된다.
환자 병력과 영상, 그리고 교수 혹은 4년차 전공의의 신경학적 검진을 함께 보며 진단과 치료계획을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신규 환자 회진을 마치면 밤샘근무한 전공의는 환자 인계 후 퇴근이다. 보통 입원은 하루 4∼10명 정도 받고, 병동 총 환자 수는 보통 15∼25명 사이였다.
개인적으로는 아침 11시경부터 자유시간이 있는 이 post-call 시간이 참 좋았다. 당직 때는 보통 밤에 거의 못 자서 피곤하긴 해도 대낮에 퇴근한다는 것은 미국 수련의에게도 큰 행복이다.
당직이 아닌 경우 오후에는 술기 및 서류작업 등을 정리하고 보통 오후 5∼6시 사이에 당직 수련의에게 환자를 인계 후 남은 서류작업을 하고 퇴근해서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물론 서류작업이 안 끝나면 마치고 퇴근해야 한다).
주말은 당직 전공의만 출근하고 당직이 없는 경우 휴무이다. 4명이 돌아가며 당직을 하니 한 달에 주말 중 총 4일을 쉴 수 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 오후는 내 담당 환자들이 있는 외래 진료를 하게 되는데, 환자는 내 앞으로 예약되고, 내가 병력 청취 및 신체검진 후 계획을 가지고 교수와 논의해 최종 진료 방침을 정하게 된다.
환자의 총 외래 방문 시간은 45∼60분이고, 그 중 30∼45분은 내가 보고, 남은 10∼15분 정도를 교수가 내 이야기를 듣고 환자와는 짧게 요점만 확인하는 형식이다. 팀은 보통 2∼3주 주기로 교체되는데 팀이 끝날 때 날짜를 정해 교수 집이나 병원 근처 레스토랑에서 팀 회식을 하곤 했다.
내가 수련을 받으며 항상 감사했던 것은 나는 의사인 동시에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모닝리포트에서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실제 환자 증례에 대한 즉석 설명이 있고, 노교수님들께선 그 질병의 역사에 대해서까지 말씀해주셨다.
회진 과정을 통해 선배 의사들의 검진법 및 사고 과정을 보고 배울 수 있었으며, 선후배들과 함께 고민하며 찾아본 논문들은 오래 남는 기억이 됐다. 점심마다 있던 정오 컨퍼런스에서는 식사를 하며 연초에는 강의, 연말에는 3∼4년차 레지던트들의 자유주제 발표 혹은 증례보고를 듣는다.
병원 곳곳에서 본 온갖 종류의 신경과 증례들을 서로 공유하며 따로 책을 볼 필요 없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에는 모닝리포트 대신 신경병리 컨퍼런스가 있는데 실제 병원에서 최근 진료받은 환자들 중 부검 혹은 조직검사를 하게 된 증례들을 통해 임상 진단 추론 과정을 같이 토의하고, 그 뒤 부검실에서 실제 뇌 조직을 보며 환자의 생전에 우리가 미처 알 수 없었던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의사이자 학생이었던 나는 동시에 선생이기도 했다. 의대 저학년 학생들의 신경해부학 조교, 고학년 학생들의 병원 실습 지도 전공의, 그리고 저년차 전공의들의 병동 치프 및 야간 고년차 레지던트로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 가르쳐 볼 수 있었던 것 또한 참 감사한 경험이었다.
한 가지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과 많이 달랐던 것은 레지던트 연구였다. 병원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겠지만, 내가 졸업한 프로그램은 큰 대학병원 프로그램임에도 오히려 레지던트 연구를 필수적인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레지던트 프로그램의 제일 목표는 탁월한 임상의를 길러내는 것으로 생각하며, 연구가 하고 싶으면 그 이후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원하는 경우 연구에 참여할 수 있고 3∼4년차에 각각 3개월씩 있는 선택로테이션 기간을 이용해 연구를 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 기간을 활용해 지금 펠로우가 되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논문을 내는 연구가 아니더라도 임상에 더 집중하고 싶은 이들은 분과 선택 근무를 하거나 혹은 진료환경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국제보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선후배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는 이들 중 전공의와 학위 과정을 동시에 하는 경우는 없었다. 전공의, 그리고 석박사 학위 모두 풀타임으로 간주돼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수련의 근무 및 학업 등 모든 일의 총 시간이 주당 80시간을 넘어서는 안 되는 규칙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미국에서는 MD가 이미 박사급 최종학력이고 기초연구에 관심있는 이들은 대개 레지던트 이전에 이미 MD PhD과정을 마쳐서 추가 학위가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년의 전공의 기간이 끝났고 나는 같은 병원에서 행동신경학 펠로우가 됐다.
하버드대학 브리검우먼스호스피털 신경과 전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