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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줄이기, 의사 처벌 강화는 해법 아니다"
"낙태 줄이기, 의사 처벌 강화는 해법 아니다"
  • 이승우 기자 potato73@doctorsnews.co.kr
  • 승인 2017.01.2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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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낙태 현실 반영한 형법·모자보건법 등 개정 촉구
추무진 회장 "입법 미비 해결 않고 의사만 처벌...탁상행정"

▲ 24일 국회에서 열린 불법 인공임신중절 수술 관련 대책 모색 토론회에서 의료계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은 의료인 처벌 강화 위주 낙태 관련 법과 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의협신문 김선경
낙태율을 실질적으로 낮추기 위해 불법 인공임신중절 처벌을 강화하기보다는 인공임신중절 절차적 요건을 구체화하고 임산부에 대한 교육과 양육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나라는 형법상 낙태죄 규정과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 관련 규정을 강화해 낙태율을 낮추려는 정책을 펼쳐왔지만 낙태율은 줄지 않고 있으며, 낙태 처벌 건수도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24일 국회에서는 새누리당 윤종필 의원(보건복지위원회) 주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주관으로 불법 인공임신중절 수술 논란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여성의 건강과 임신·출산이 함께 지지받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보자는 취지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형수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은 불법 인공임신중절을 줄이려면,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임산부에 대한 교육과 양육 지원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김 실장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법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으나, 한 해 약 17만 건의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이 중 95%가 불법 수술이다.

▲ 김형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의협신문 김선경
김 실장은 "국민, 특히 여성들이 낙태가 불법임을 알고 있으나, 그 허용 요건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인공임신중절로 인해 처벌받을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면서 "국민 절반 이상이 낙태 규제법이 필요 없다고 인식하고 있어,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고 전제했다.

이어 "형법에 의한 낙태 금지, 모자보건법에 의한 엄격한 인공임신중절 요건은 이미 사문화돼 불법 인공임신중절을 증가시킴과 동시에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결국, 태아의 생명이 경시되고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무시되며, 임산부 건강에 대한 무관심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낙태 관련 법을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하게 개정하고 관련 제도와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면서 "금지규범 강화보다는 인공임신중절의 절차적 요건을 구체화하고 임신 초기부터 출산 후에 이르기까지 상담 치 교육, 양육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통해 낙태율 감소와 임산부 건강 증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개정 검토가 필요한 모자보건법 조항들을 열거했다.

우선 임산부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해 인공임신중절 결정에 있어 배우자 등의 동의권 존치 여부를 검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배우자 동의권을 없애는 대신 임신 주 수에 따라 요건을 달리할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면, 임신 초기 1주∼12주에는 임산부의 요청에 따라 제한 없이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임신 중기 13주∼24주에는 윤리적·의학적 적응사유를 요구하며, 임신 24주 이후에는 인공임신중절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임산부의 생명 또는 건강에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하는 방식이다.

임산부에 대한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 주기적 실태조사 시스템 구축, 출산 및 양육 지원 강화 등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희망하거나 이미 수술을 한 여성에 대한 상담, 교육, 치료 등 포괄적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상담을 의무화하자는 것인데, 특히 상담 후 수술 전까지 2∼3일의 숙려기간을 두자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적응사유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갖추고, 신체적·정신적 치료를 통한 사후관리와 개인정보 보호 등 조치를 확충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인공임신중절 예방 및 피임 교육 ▲양육 비용 경감 ▲임산부 우대 정책 ▲산후조리원 관리 강화 ▲미혼모 지원 ▲출산 전후 고용 안정 등 복지정책 및 제도 병행도 제안했다.

▲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의협신문 김선경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도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입법 미비를 해결하지 않고 의사만 처벌하겠다는 것은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하고 "안정적 임신·출산이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인공임신중절을 줄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병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김 실장과 추 회장의 제도 개선 제안 방향성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이 연구위원은 낙태 관련 법과 현실 괴리가 큰 상황을 주목하면서 현실적 개선 방안 모색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이 연구위원은 "형법의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낙태 허용 범위는 실상을 반영하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면서 "하지만 법 개정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이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호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자문위원은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국가적 과제로 대두하면서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엄격한 법 적용과 함께 최근에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입법예고까지 됐다"면서 "그러나 낙태가 줄지 않는 사회적 문제를 묵과한 채 의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낙태율을 낮추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개선과 함께 제대로 된 피임교육과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복지부 "법·제도 개선 적극 검토...교육·홍보 확대"

▲ 우향제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의협신문 김선경
이런 지적과 제안에 보건복지부는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피임교육과 낙태율을 낮추기 위한 홍보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향제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불법 낙태 건수가 16만 건이라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처하려고 한다. 우선 낙태 현황을 주기적으로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건복지부가 해야 할 일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부터 낙태 예방을 위해 성 가치관 정립, 생명 존중을 위한 피임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터넷이나 온라인 등 매체를 통해 낙태 예방 캠페인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끝으로 "여성 건강이 가족의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임신 계획이나 출산 지원 등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법 정비와 함께 저출산 대책 등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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