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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사 판매 한약재에 암 유발 '등칡' 혼입..."2억 배상"

제약사 판매 한약재에 암 유발 '등칡' 혼입..."2억 배상"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7.01.1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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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제약회사, 한약제제 제조물 결함 판결
한약제제 안전망 구멍...안전성 검증 '비상'

한약을 복용한 후 신독성이 발생, 결국 신장 이식 수술까지 받아야 한 환자가 한약재를 제조·판매한 한방 제약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억 원 대 배상을 받아냈다.

서울고등법원은 한약 복용 후 신장 기능이 악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A씨와 가족이 한약제제를 제조·판매한 2곳 한방 제약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5나32631)에서 2억 1222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문제를 일으킨 한약제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약품 제조허가를 받은 제약회사가 제조·판매했으며, 한약(생약)규격집에 등재돼 있다는 점에서 한약의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의사 B씨는 딸을 출산한 아내 A씨의 산후 조리를 위해 2011년 9월 14일 C한약국 한약사에게 통초 120g을 함유한 '궁귀조혈음'이라는 한약 처방전을, 9월 20일 통초 400g이 포함된 '통유탕' 처방전을, 10월 10일 통초 80g이 포함된 '궁귀조혈음대영전가미' 처방전을 각각 보내 한약제제 제조를 의뢰했다.

C한약사는 2011년 6월 4일 D제약 주식회사에서 구매해 놓은 '통초'라는 한약재 규격품을 사용, 9월 14일과 9월 20일 한약제제를 제조해 택배로 발송했다. C한약사는 통초를 모두 사용하자 9월 23일과 9월 30일 E제약 주식회사에서 통초 규격 한약재 규격품을 추가로 구입, 한약처방전에 따른 한약제제를 제조해 10월 10일 B한의사에게 발송했다.

A씨는 C한약사가 제조한 한약제제를 복용한 후 2012년 2월 말경부터 3월 초순까지 발열·구역·구토 등의 이상을 느끼자 4월 17일 두 곳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았으며, 5월 10일 F대학병원에서 만성 신부전·말기 신장질환 신부전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6월 20일 G대학병원 의료진은 사구체여과율 6으로 신세뇨관 괴사를 동반한 급성 신부전·말기 신장질환이라고 진단한 뒤 신기능 회복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13년 8월 1일 기존 신장을 제거하지 않은 채 뇌사자의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G대학병원 주치의(신장내과)는 "신조직 검사 결과 매우 심각한 신기능 저하와 세뇨관 간질 섬유화가 진행됐음에도 사구체 부위는 비교적 보존되는 특이한 경우로서 이는 한약관련 신병증(Chinese Herb Nephropathy) 특히 '아리스톨로크산 신병증(AAN)'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소견과 일치한다"며 "보호자가 보관 중이던 약재의 성분을 검사한 결과, 아리스톨로킨산의 존재를 확인해 ANN으로 확진했다"고 밝혔다. 

'임박한 말기 신장질환, 한약관련 신병증(Chinese Herb Nephropathy)'을 일으킨 한약제제로는 아리스톨로킨산 물질을 함유한 '등칡'이 지목됐다.

의학계에서 아리스톨로크산은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는 광방기·관목통·청목향 등에 함유돼 있는 성분으로 신조직에 유전자변이를 일으키고, 투여용량에 따라 간질 섬유화를 동반한 만성신부전과 신장암·비뇨기암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A씨와 가족은 "D·E 제약회사는 한약재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한약재로 사용할 수 있는 '통초'와 아리스톨로킨산을 함유하고 있어 제조·유통이 금지된 '등칡'을 명확히 감별해야 함에도 이를 게을리해 이 사건 한약제제를 복용한 후 만성 신부전 등을 앓게 했다"며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손해배상 을 요구했다.

E제약회사는 "아리스톨로킨산 함량 분석 결과는 오직 '등칡'에 대한 성분 분석결과이고, 한약처방전에 따라 여러 약재들을 혼용해 고온에서 장시간 탕제를 했을 경우 성분이 달라질 수 있다"며 "이 사건 한약재에 아리스톨로킨산이 존재한다고 하여 A씨가 복용한 이 사건 한약제제에 아리스톨로크산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한약전에 실리지 않은 의약품 중 보건위생상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한약재의 성상·기능 등의 기준을 정한 생약집을 고시하고, 2006년 한약재 품질의 적부를 판단하는 <한약재 관능검사지침Ⅰ>을 발간했는데 2010년 5월 10일 '통초'를 제조업소에서만 제조할 수 있는 품목에 포함시켰다"며 "<한약재 관능검사지침Ⅲ>에는 '통초'와 '등칡(관목통)'을 구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절단면을 찍은 사진을 비교·게시하면서 마두령과 식물인 '등칡'을 예전투터'통초'로 잘못 사용해 왔으며, 통초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약초 수집자들이 제약회사에 약초 원재료를 납품할 당시 작성한 생산 및 수집판매 증명원 품명에 '등칡(통초)'라고 기재돼 있다"며 "의약품 규격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위험을 제거하고, 최소화 해야 하는 고도의 위험방지 의무가 있음에도 이러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다"면서 "독성 성분(아리스톨로킨산)을 함유하고 있는 '등칡'과 '통초를 구별해야 한다는 한약재 감별기준 조차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채 유통이 금지된 '등칡'으로 한약재를 제조해 유통한 것은 사회통념상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을 결여한 결함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약재를 제조·판매할 당시 '등칡'에 함유된 아리스톨로킨산의 위험성에 대해 홍보가 부족한 상태였던 점, 이 사건 질환이 발생함에는 2∼3개월 동안 계속적으로 이 한약제제를 복용하는 등의 요인도 작용한 점, C한약사가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손해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 공평·타당한 분담을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에 따라 피고의 배상책임을 7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A씨의 변호를 맡아 한약제제 제조물의 결함을 밝히는 데 앞장선 유화진 변호사(법무법인 여명)는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아리스톨로킨산 함유 한약재의 위험성에 대해 식약처의 홍보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면서 한약 안전성 문제에 대해 식약처가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 FDA는 2001년 아리스톨로킨산을 발암성 성분으로 규정했지만 식약처는 2005년 6월 1일에야 아리스톨로킨산 함유 한약재인 청목향·마두령 및 이를 함유한 제재를 안전성·유효성 문제성분 함유제제로 지정하고, 제조·수입 품목 허가를 제한했다"며 "국민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안전성 문제에 대해 식약처가 늦장 대응을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약의 안전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1274건의 한약재가 부적합 판정을 받아 회수 및 폐기 명령을 받았다. 식약처는 2013∼2015년 한약재 87건을 조사한 결과, 21건에서 비만치료제·발기부전치료제 성분이 포함됐다고 발표했다.

한국소비자원이 3년 6개월 동안 접수한 한방진료 피해유형을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피부 문제'가 23.6%(13건), '염증(농양)' 20.0%(11건), '한약 복용 후 간기능 이상을 포함한 독성간염' 12.7%(7건)로 파악됐다.

한국소비자원은 "한방 진료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치료(시술) 효과만을 강조하는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한약의 효과·부작용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병력을 정확히 고지하고, 이상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의료진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과학중심의학연구원(과의연)은 2015년 12월 20일 "한약을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위헌"이라며 식약처장을 상대로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 및 신고에 관한 규정 제24조 제1항 제4호 위헌확인 등에 대한 위헌소송'(2015헌마1181)을 제기했다.

과의연은 "헌법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고, 헌법에서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 알 권리, 보건에 관한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지만 안전성·유효성 심사대상에서 한약제제를 제외하고 있는 '한약(생약)제제 등의 품목허가·신고에 관한 규정'(식품의약품안전처고시) 제24조 제1항 제4호 및 제5호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의 생명·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는 어디까지인지, 국민의 신체에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약제제등에 관해 현대의 과학적 방법에 따라 안전성·유효성 심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는 매우 본질적이고 중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약품을 승인받기 위해서는 전임상실험과 3단계의 임상시험을 거쳐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지만 한약제제는 한의학 서적에 처방이 적혀있는 경우 안전성·유효성 자료를 면제토록 예외규정을 적용받고 있다"며 "안전성·유효성 규제는 한약제제 또는 한약재를 공급하는 판매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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