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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의사들은 왜 '쉬운 글 쓰기'가 안될까?

공감 의사들은 왜 '쉬운 글 쓰기'가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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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2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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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연(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연세의대 교수·해부학)

글이란, 참 어렵다. 더욱이 전문용어를 섞어서 어떤 학문을 설명하는 전문분야의 글은 쓰다가도 지치고 읽다가도 지친다. 그래서인지 대형서점에 가면 유독 어려운 과학을 쉽게 알리려는 많은 책들이 <수학이 말랑말랑해>와 같은 식의 제목을 달고, 즐거운 표지 그림으로 포장하며 "읽어봐 재밌어"라고 유혹한다. 

▲ 이혜연(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연세의대 교수·해부학)

그런데 의학정보 코너에 가면 대부분의 책은 표지부터 내용까지 심각하다. "의학이 말랑말랑"해 보이는 책은 찾기 힘들다. 그나마 인체 구조가 말랑말랑해 보이는 책들이 간혹 있지만, 집어들고 훑어보다가 "흠, 어린이들 보라고 만든 책이군"하고 내려놓기 일쑤이지, '아, 이 책은 내 환자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면 좋겠다'는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개인의 편견일 수 있으나, 의학 관련 책은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렵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나마 의사가 쓰지 않은 건강한 생활과 음식, 명상하는 삶에 대한 책들은 초록색의 전원적인 느낌의 표지로 안정감을 준다. 그러다보니 병원에 가고 처방약을 먹는 것 보다는 약초를 먹고 하루에 두 번 명상을 하면 병이 더 잘 나을 것 같은 안정적 느낌을 주며 음식에 대한 정보들을 주니 쉽게 선택된다.

요즘 건강관련 정보를 다루는 많은 프로그램들에 의사와 한의사가 나란히 패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먼저 한의사가 눈건강을 위한 눈 샤워, 눈 주위 경락 맛사지, 아세로라가 눈건강에 좋은 이유를 한참 재미있게 설명하는 동안 의사는 조용히 앉아 있다가 뒤이어 백내장이나 녹내장 들의 관련 질환에 대해 심각하고 짧게 설명하고 마는 프로그램이 꽤 많아졌다.

한의사는 건강생활 정보나 영양학 정보를 과감하고도 즐겁게 설명하는데, 의사는 그 학문적 특성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 이외에 대해서는 별로 할말이 없다. 교과서나 논문에 나오지 않은 얘기는 하기 싫은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의사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말하는데 왜 호감을 받지 못하는가? 비록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어쩐지 듣고 있노라면 골치가 아파지고 지루해진다. '기가 약해졌다'라는 막연한 표현보다 솔깃하지 않은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일반적 불만의 하나는 의사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료실의 의사는 그 어려운 질환을 설명하고 전하느라 애를 쓴다. 중간 중간 "알아들으셨죠?"를 반복해서 물어본다.

아예 전문용어를 포기하고 "이게 뼈구요"하며 설명하기도 하는데 요즘 수준높은 환자들은 이러한 배려를 싫어하기도 한다. 시술이라도 할 때는 "이러 이러한 것을 설명들었고, 부작용이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이해했음"을 직접 적는 동의서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해못했다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왜 최신 의학지식을 총 동원한 의사들의 설명이, 다른 분야 종사자 입에서 나오는 "기 순환이 막혀있네요"라는 식의 막연한 설명보다도 설득력이 없는 것일까? 아마도 의사들이 말하고 쓰는 방식을 변화시켜 쉽게 전달될 방법이 필요한 모양이다.

의사들의 글쓰기에서 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는, 팩트가 하나라도 틀리지 않도록 디테일까지 강박적으로 나열하다보니 글이 영 재미없고 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명을 위한 약간의 비유와 팁도 필요하고, 추임새도 이따금씩 넣어줘야 할텐데, 환자 상태를 정형화해 프리젠테이션하도록 훈련된 의사들에게 이러한 힘빼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의사가 제공하는 의학정보를 재미있게 느끼기 힘들다.

▲ 일러스트 = 윤세호 기자

그렇다면 보통사람들은 어디에서 의학정보를 얻는 것일까? 인터넷 지식인이 한동안 유행일 때 많은 의학정보들도 그 물결을 타고 돌아다녔다. 의학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인터넷 상에서 따라가다 보면, 한의사나 다른 비전문가 홈페이지로 도달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의학의 껍데기에 대체의학이나 한의학 정보 등을 교묘하게 조합해 만든 유사과학 또는 유사의학 정보들이 오히려 우세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국내 최대 서점의 온라인 매장에서 '당뇨'를 키워드로 베스트셀러를 검색해 보니, 1위인 책의 저자는 한의사이고, 1위부터 20위까지의 책 저자 중에서 의사들이 쓴 의학 바탕의 책은 약 35% 뿐이며, 나머지는 자연치유나 한방치료를 다룬 것들이다.

구글에서 한글로 '당뇨'를 검색해보아도 그 결과물로 나열되는 홈페이지에서 우선 노출되는 것은 인터넷백과사이트들이고, 의사·의료기관·의학단체의 홈페이지는 약 30% 뿐이다. 당장 미국의 아마존 온라인서점으로 가서 'diabetes'를 검색한 뒤 도서를 독자 리뷰 순으로 나열하면 상위 저자 20 명 중 50% 정도가 의사인 것과는 사뭇 대조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의학정보가 의사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노출되면, 유사의학과 의학은 구별되지 못한다. 매우 위험한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에서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 여러 해석이 있겠으나, 의사들이 고급지식을 이해하기 쉬운 글로 발표할 기회가 줄었기 때문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의학의 수준은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만큼 급속히 성장해 인정받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중동 및 러시아 등에서 우리의학을 배우기 위해 연수 요청이 증가하고 있다. 국제적 수준에 이르기까지에는 우리나라 의사들이 좋은 연구결과와 임상 성과를 내고 결과들을 세계 우수 학술지에 끊임없이 발표해 인정받은 결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발전된 의학의 내용을 이해시키고 의학 정보를 알게 해 왔을까 ? 아마도 우리들은 학술지말고는 글을 써서 발표하는 일이 너무 드물지도 모른다. 그나마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던 각 전문학회의 국내 학술지는 세계화 추세를 타고 국제 수준의 학술지로 발전하기 위해 영문학술지로 전환됐다.

국제수준에 도달하고 세계무대에 진출했으나, 대중매체 수준보다는 더 전문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일반인들이나 정책입안자들에게 우리글로 된 최신 의학정보들을 효율적이고 편하게 나눌 기회는 줄어든 것이다. 의학 정보가 전문적인 학술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점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찾게되는 유사매체에서 얻을 기회만 점점 높아진 것이다.

우리가 말과 글로써 국민과 함께 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에 넘처난 유사의학의 부작용은 결국 우리의 진료실에서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환자들이 쉽게 접하게 되는 유사의학이나 다른 분야의 시술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고 이를 의학적으로 분별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약침'이란 것은 특정 효과가 있는 침이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지 않은 한방제조 주사제를 경락부위에 주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진료실로 오는 환자들에게 이런 것을 의학적으로 잘 설명하고 대응하는 것까지도 우리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전문가가 쓰는 전문 영역의 글은 참으로 쉽고 명쾌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은 이런 지식재생산을 할 수 없을 만큼 팍팍하다. 의과대학의 업적 평가에서 교과서 한 권의 저술 가치가 외국 논문 한 편 발표 가치보다 못하니 한 챕터 저술에라도 섣불리 나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분야에 처음 눈을 뜨고 있는 새내기 학부생에게 탁월한 대가의 전문지식을 함축한 일반론 강의는 그 학문에 대한 열정과 영감을 크게 불러일으킨다. 대가들이 사명감을 갖고 즐겨 학부강의를 맡는 이유다. 의학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우리들은 그 능력을 살려, 의학의 초보자를 위한 교과서나, 일반인을 위한 의학관련 정보들을 어떻게 쉽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이다. 여기에서부터 우리 의사들과 환자들과 국민과의 소통이 시작될 것이다.

최근 여러 기관이 의학적 글쓰기 강좌들을 개설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우리의 지식을 나눌 의지가 있기 때문이며, 이에 뒤쳐지지 않도록 의협에서도 국민에게 의학지식을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글쓰기, 쉽게 들리는 말하기 방법을 가르치는 강좌를 개설해 우리 회원들 중에서 전문적 의학저술가, 의료전도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각자의 진료현장에서 환자들이 읽어볼만한 자료들을 만드는데 앞장설 의사를 양성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전문분야의 최신지견을 따라가기에도 어려운 의사들은 다른 분야의 최신지견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니 어려운 전문지식을 쉽게 일반화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가들로 하여금 '쉬운 의학지식'을 창출하는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지식 향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언제까지 우리 의사들의 글쓰기가 "진료현장에서의 보람찬 경험과 에피소드를 나누는 에세이" 수준에서만 머무르게 할 것인가. 의학의 전문지식을 쉽게 전파하기 위해 치열한 글쓰기를 하는 의학전문 작가 어디 계십니까, 어서 나타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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