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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도울 수 있기에 아직은 살 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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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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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의료 오지에 한국 인술 심는 황혜헌 의사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읍아산병원에서 가정의학과전문의로 진료와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지난 2004년 은퇴해 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황혜헌 의사.

한국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을 통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했고, 코이카를 떠나 자체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다가 2012년 초부터 라오스에서 의료 빈민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제 다시 코이카와 손잡고 봉사에 나서고 있는 그와 서면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그의 따뜻한 속내가 각박한 세상에 깊은 울림을 전한다.

 

황혜헌 의사는 은퇴 후 코이카 파견의사로 베트남에서 활동하다 2012년 초부터 라오스로 건너가 활동했다. 2016년 2월까지 라오스에서 KMCC(Korea Medical Consulting Center)라는 법인을 만들어 활동해왔으며, KMCC 활동을 마무리하고 현재는 코이카 글로벌협력의사로 인술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 의료기기, 약품뿐 아니라 컴퓨터·의류·학용품 등을 가져다 전달하고 진료팀을 꾸려서 무료 진료를 다녔다. 시설이 열악한 곳에는 분만시설을 지어주기도 했고, 의학용어 2200개가 수록된 사전을 라오스어·한국어·베트남어·영어 등 4개국어로 제작해 배포했다. 그리고 최근, 코이카와 다시 인연을 맺었다.

"앞으로는 코이카에서 건립해준 한-라 아동병원(2011년 개원)과 협진해 보다 효율적인 진료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소아과 교과서의 라오스어판 제작과 교육용 브로셔의 제작, 의사들의 교육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는 라오스를 "너무 가난해서 우리가 열을 주면 하나도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라"라고 설명하며, 준만큼 받으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깊고도 넓은 의료봉사의 삶

▲ 의학용어 2200개가 수록된 사전을 4개국어로 제작 배포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코이카 정부파견의사로 현지 병원에서 진료를 하면서 4년동안 월 2∼3회 주말 무료진료를 했다. 하노이 한인교회와 함께 농민들을 진료했고, 한국인이 세운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진료와 투약을 했다.

"B형 간염 검사 및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구충제를 투여했습니다. 일부 에이즈와 매독 반응 검사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보다 정밀한 검사를 요하는 환자들은 하노이로 이송하여 진료했습니다."

아산재단의 증여 시약으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결혼해서 가는 신부들의 매독과 에이즈 감염 여부를 검사해주기도 했다. 현지 한국 영사관과 한국 질병관리본부와 협조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 베트남 신부들의 검진을 정착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2005년에는 학원을 빌려 한국어 강습을 해주기도 했다.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 과정으로 졸업하게 되는 '무궁화 한글교실'을 운영한 것. 그 강습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2006년 4월에는 영어·베트남어·한국어 3개 국어로 해부학 용어집을 발간했다.

1200여 개 의학용어를 통해 응급상황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된 200여 쪽 분량의 책으로 현지 교민들과 한국의 베트남 신부 및 근로자들에게 배포돼 유용하게 쓰였다.

"베트남 내 소수민족과 빈곤층에게 200만동(한화 약 12만원) 한도 내에서 진료비를 부담해주기도 했고, 하노이대 학생들에게 월 50불씩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일본·중국·한국 등 4개국이 참가하는 테니스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베트남 농촌에 송아지를 사주고 2∼3년 후 자란 소를 팔아 원금을 받고 다른 마을을 도와주는 사업에 참여했다.

베트남 빈민촌에 세워진 선의병원에 자동화 소변 검사기 구입자금을 지원했으며, 한-베협력센터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재활센터에 음악치료기 구입자금을 증여하는 등 그가 실천해온 봉사의 폭은 깊고도 넓었다. 삶 자체가 봉사였던 셈이다.

의사는 다른 이를 돕기에 매우 좋은 직업

▲ 분만시설을 짓고있는 현장.

아산병원에 19년 동안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오던 그가, 병원장이라는 직함까지 내려놓으면서 베트남 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삶을 택한 겁니다. 나태하고 변화 없는 생활을 벗어나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하나님께 조금은 덜 부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되고 나서 공공재단 혹은 복지와 관련된 곳에서 근무하며 그 곳의 도움으로 봉사해왔는데, 생색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산재단·코이카·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에 이어 다시 코이카로 연이 닿은 것 모두가 그렇게 하게끔 마련된 일종의 운명이라고 여겼다.

"그저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대명제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라오스에서 다시 코이카와 함께 일하게 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아침 컨퍼런스와 의사 대상 강의를 진행하고, 낮 시간 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을 돌볼 계획을 세웠다. 짬을 내어 무료 진료 활동 준비를 하는 데도 마음을 쏟고 있다. 

낯선 땅에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느냐 물으니, 대뜸 'Mo A Phong'이라는 이름의 16세 몽족 아이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십이지장충 감염에 의한 극심한 빈혈을 앓고 있는, 2년 동안 기생충에 서서히 피를 빼앗기며 적응해온 아이.

500km 밖의 땅에서 와서, 오늘 바로 돌아가야 한다고 허공을 보며 말했던 그 아이에게 약을 처방해주면서 성장기임을 감안해 철분제도 함께 건넸다.

30일 후 다시 만난 그 아이의 눈에는 다시 생기가 돌았고, 웃기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 신뢰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의사가 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처럼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꽤 많고 그것이 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의사는 그저 내가 사는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직업에 종사하고 있든, 어디에 있든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의사는 다른 사람을 돕기에 매우 좋은 직업이지요."

"하늘에서 보면 히말라야의 연봉이나 우리 집 뒷동산이나 다 같게 보일 것입니다. 어차피 유한한 삶을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데, 자기가 가진 능력이나 재능을 남을 위해 쓰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닌 내가 선택한 길을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의료시설이나 장비가 열악하고 빈곤하게 사는 라오스가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게 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그는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이며, 진정성 있고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중학교 때 집안 사정이 어려워 미국의 독지가로부터 매달 2만 5000원씩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정도 돈이면 우리 집 생활비였습니다.

베트남에 가기 전, 라오스로 오기 전 그 정도의 금액을 월드비전을 통해 기부를 했는데요. 저는 중학교 때 그 독지가가 누군지 전혀 모릅니다. 제가 도와준 베트남과 라오스의 아이도 제가 누군지 전혀 모르겠지요. 이렇게 베트남·라오스에 와보니 제가 기부한 그 액수는 한 가정의 생활비였습니다."

그는 세상은 이렇게 서로 도우면서 돌아가는 곳이라고 믿는다. 그가 돕는 라오스의 아이도, 언젠가 다른 아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렇기에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 말하는 황혜헌 의사. 오롯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면서 사는 삶을 마주하며 하릴없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와 함께하는 라오스가 항상 아름답고 평안한 곳이기를 바란다.

글·정지선 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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