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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위임장 없이 보호자 합의 불인정...5억원 배상 판결

환자 위임장 없이 보호자 합의 불인정...5억원 배상 판결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6.04.0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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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환자 위임없이 부인 작성 포기 각서 불인정
뇌동맥류 시술 과실...응급수술 최선 책임 60% 제한

▲ 서울중앙지방법원
환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보호자와 한 합의는 법적 효력이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환자 본인이 자필서명한 위임장이 없거나 대리권을 수여한다는 의사표시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보호자와의 합의서는 법률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 민사부는 A씨가 B대학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2013가합67667)에서 피고는 원고에서 5억 8703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11년 8월 23일 경 주차 중 추돌사고를 당했다. 가까운 병원에서 비파열성 뇌동맥류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은 A씨는 8월 29일 추가 검사를 위해 B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당시 약간의 두통 외에 의식·혈압·운동 능력 모두 정상이었다.

B대학병원 의료진은 8월 29일 뇌혈관조영술 검사에서 우측 중대뇌동맥 분지에 22×18mm 크기의 뇌동맥류가 확인되자, 9월 1일 10:00경부터 17:30분경까지 1차로 개두술 및 뇌동맥류 경부 결찰술을 시행했다.

중환자실로 옮긴 환자는 17:35분경 두통이, 17:50분경 호흡곤란과 함께 산소포화도가 78%로 떨어졌으며, 동공 확장 현상이 나타났다. 의료진은 18:10분경 기관내 삽관을 시행했으며, 환자는 반혼수상태를 보였다. 의료진은 뇌지주막하 출혈을 의심, 응급수술을 시행키로 결정하고 9월 1일 18:30분경 감압성 두개절제술·뇌동맥류 결찰술·뇌혈종 제거술 등 2차 수술을 시행했다. 지주막하출혈과 뇌부종이 있었고, 1차 수술 당시 거치한 클립의 끝부분에서 간헐적인 출혈이 관찰됐다.

의료진은 4mm와 6mm의 클립으로 지혈조치를 한 후 23:30분경 수술을 끝냈다.

9월 5일 뇌혈류검사에서 양측 중대뇌동맥에 약간의 혈관연축이, 전대뇌동맥이 약간 좁아져 있음이 확인됐으며, 9월 6일 뇌CT검사에서 우측 중대뇌동맥에 급성 뇌경색이 관찰됐다. 환자에게 뇌압 상승·좌측 부전 마비 증상이 나타났으며, 9월 12일경까지 혼수요법 치료가 실시됐다.

9월 20일경 갑자기 혈압 상승·의식 저하 증상이 나타나고, 뇌CT검사상 뇌출혈 소견에 따라 14:15분경 뇌동맥류 결찰술·감압성 뇌절제술·뇌혈종 제거술 등 3차 수술을 시행했다.

3차 수술과정에서 기존 뇌동맥류 인접 부위인 전두 분지 뒷쪽에 새로운 뇌동맥류가 관찰됐으며, 클립을 사용해 뇌동맥류 경부 결찰술을 시행하고 19:10분경 수술을 종료했다.

A환자는 중환자실을 거쳐 10월 17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며 재활치료를 받다 1차 수술 후 9개월을 넘긴 2012년 6월 27일 고도의 좌측 편마비·정신기능장애·미각 및 후각 기능장애 상태로 퇴원했다.

퇴원 이후 A환자는 4곳 병원(요양병원 한 곳 포함)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현재 좌측 편마비·보행장애·인지기능 저하 상태다.

A환자의 부인 C씨는 첫 수술(2011년 9월 1일) 이후 입원 기간이 9개월을 넘어서며 장기화 되자 2012년 6월 22일 B대학병원과 민사·형사·행정 상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민원 제기·언론 및 인터넷 등을 통한 호소·면담 강요·시위 등의 행위를 모두 하지 않는 대신 61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받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C씨는 신분증 사본·가족관계증명서를 첨부하고, 자필 서명과 함께 남편 A씨의 도장을 날인했다.

C씨는 B대학병원과 6100만 원의 합의금에서 병원 진료비 2582만 원을 공제한 나머지 3517만 원을 받아 퇴원했다.

하지만 B대학병원 퇴원 이후 A씨는 부인 C씨에게 대리권을 수여하지 않았으므로 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비파열성 동맥류에 대해 코일색전술을 시행하지 않고 침습적이고, 합병증이 위험이 높은 수술적 결찰술을 시행한 점, 수술상 술기의 부족과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점, 감시의무를 소홀히 한 점,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는 점 등을 들며 9억원 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우선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정한 '부제소 합의'가 성립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A씨가 부인 C씨에게 신분증과 도장을 맡기지 않았고, 퇴원 직전까지 합의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와 함께 A씨에게 장애는 있지만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거나 사리분별을 하지 못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에 무게를 실었다.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의 도장과 신분증을 부인 C씨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사물함에 있던 것을 가져갔고, 위임장과 같이 대리권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가져오지 않았으므로 대리권을 수여하는 표시를 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부인 C씨가 A씨의 동의서를 받지 않은 채 권한 없이 합의서를 체결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부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했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 의사로서 합리적인 재량 범위를 일탈한 것이라고 보기기 여럽다고 지적했다. 또한 감시 의무를 소홀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술적 결찰술과 코일색전술을 자세히 비교설명하지 않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주장도 이유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수술적 결찰술을 시행하면서 클립으로 동맥류 경부를 완전히 결찰하지 못한 과실이 있고, 그로 인해 지주막하 출혈 등이 발생해 악결과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의료진의 과실과 무관하게 다른 원인에 의해 악결과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의료진의 과실과 악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다만 비파열성 뇌동맥류를 치료하기 위해 수술이 필요했으며, 뇌동맥류의 크기가 커 수술의 위험성이 상당한 점, 1차 수술 후 이상 증상이 발생하자 즉시 응급수술을 하며 나름대로 최선의 조치를 하고자 노력한 점 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과실로 인해 장애가 남게 됐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모든 손해를 과실있는 의료진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을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념을 들어 배상책임의 범위를 60%로 제한했다.

손해배상 범위는 일실수입의 경우 여명종료일을 2038년 9월 1일로 보고, 노동능력 상실률 100%를 인정했으며, 가동능력은 19767년생인 A씨가 2011년 9월 1일 1차 수술을 받은 날부터 만 60세가 되는 2027년 8월 26일까지 월소득 276만 9000원을 기준으로 3억 8846만원으로 계산했다.

치료비는 합의금에서 공제한 B대학병원 치료비 2582만원을 제외한 기왕치료비 5553만원(B대학병원 74만원+D병원 1190만원+E병원 3799만원+F병원 453만원+G요양병원 35만원)과 손해배상액 계산표에 의한 향후 치료비(약대 및 진료비 1212만원) 등 6765만원을 기준으로 했다.

개호비는 4억 3589만원(기왕 개호비 2200만원+향후 개호비 4억 1389만원)을, 보조구비는 303만원 등으로 계산했다.

이에 따라 손해배상액은 재산상 손해액 8억 955만원의 60%인 5억 3703만원과 위자료 5000만원을 더한 5억 8703만원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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