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간호사는 달랑 2명이었던 추억의 2001년 서울대병원
평생, 긍지를 갖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직업으로 만들 것
헌신적인 남자간호사가 바다 건너 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선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서 활약하는 남자간호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남자간호사가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2001년 1000명에서 10년만에 10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남자간호사 1만명 시대'를 맞이해 18일 오후 2시 서울대병원 101병동에 근무하는 장창섭 수간호사를 만났다. 조혈모세포 이식병동인 이곳은 면회금지 병동이다. 약속시간에 딱 맞춰 나타난 그는 한 손에 마스크를 들고 있었다. "혈액암 환자들이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는 병동이에요.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이라 의료진들은 다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보죠."
흰 재킷에 넥타이를 매고, 까만 구두를 신었다. 수간호사 3년차인 그는 더 이상 간호복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그도 고운 옥빛 차이나칼라의 간호사복을 입고 흰색 간호사화를 신던 때가 있었다.
장 수간호사가 서울대병원에 첫 발을 내디뎠던 건 2001년 10월. "그때만 해도 남자간호사는 병원에 저와 김장언 선생님(남자간호사회장) 둘뿐이었어요. 남자간호사 후배가 들어온 게 4년 후던가. 현재는 50명 정도인데 이렇게 인원이 늘어난 건 몇 년 안 돼요."
남자간호사가 흔할 때가 아니었다. 있더라도 거의 수술장에 배치됐다. 그는 서울대병원 처음으로 병동(신경외과)에 배치된 남자간호사였다.
"환자는 물론 동료 간호사들도 놀라고 당황해 했어요. 당시 수간호사 선생님은 신입인 절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셨죠. 남자 갱의실도 없었어요. 화장실이나 정신과 보호사분들이 이용하는 탈의실에서 갈아입었죠. 지금은 지하에 남자 갱의실이 있어요. 후배들에겐 '세상 좋아진 줄 알아라'라고 말하곤 하죠."
16년이 지난 지금은 환자도, 동료도 이전처럼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환영받는 든든한 존재가 된다. 남자간호사들은 힘이 좋고 겁이 없어 중환자실과 응급실, 정신과에 많이 배치된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는 많은 남자간호사들이 감염내과 병동에 지원해 활약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두려움 같은 감정이 덜하니까요. 신경외과 병동에 근무할 때는 보호자분들이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뇌종양·뇌출혈로 몸이 마비된 환자가 많은데, 이런 분들을 휠체어에 태우거나 침대에 눕히는 게 굉장히 힘들거든요. 그런 일을 도맡다 보니 보호자분들은 제가 언제 출근하나 아침부터 기다리기도 했어요. 또 젊은 남자간호사니까 할머니 환자분들한테 '손주' 취급도 받으면서 인기가 좋았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민망한 상황도 벌어진다. 민감한 신체부위를 다룰 때면 특히 그렇다. "여자환자들은 제가 소변줄 끼우는 걸 많이 거부하셨어요. 그래서 동료 여자간호사에게 부탁하곤 했죠. 지금도 남자후배들이 이런 상황을 상담해오곤 해요. 그런데 이건 남자도 똑같아요. 아무래도 남자들은 남자간호사가 소변줄 끼우는 걸 더 편하게 받아들이니까요. 그래서 남자간호사들은 비뇨기과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직까지 산부인과에 근무하는 남자간호사는 못 봤습니다."
취업 100%란 달콤함만 노리기엔 참 '극한 직업'
힘든 일. 쉽지 않은 일. 그는 1시간 남짓의 인터뷰에서 '간호사란 참 힘든 직업'이라고 스무 번 넘게 말했다. 그런데도 남자간호사가 2012년 5000여명에서 3년만에 1만명으로 급증한 이유로는 "구직란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남자간호사는 취업이 굉장히 잘 돼요. 후배들을 보면 군대 다녀와서 간호대에 진학하거나, 다른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간호대에 입학한 경우도 있어요. 30대에 들어오는 신규 남자간호사가 많은 편이죠. 미국은 남자간호사가 전체의 10% 정도 되는데 우리나라도 그 정도 선에서 형성되지 않을까요."
인원이 많아지다 보니 2013년엔 대한남자간호사회도 탄생했다. 그는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여자가 많은 직업군이다 보니 남자만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잖아요. 남자간호사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어요. 주요 계획으로는 공중보건간호사를 만들자는 정책을 몇년 전부터 추진 중입니다. 또 수술방이나 PA 근무가 많은 남자간호사들을 위한 맞춤형 보수교육도 진행하려고 합니다."
남자간호사회는 간호사뿐 아니라 간호대 남학생들을 대상으로도 영향력을 넓혀갈 계획이다. 간호대 남학생들의 축구대회 지원과 특강 및 간담회, 또 간호대 교수로 재직 중인 남자간호사들에게 논문 지원도 활성화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남자간호사에 대한 인식을 더 높일 계획.
"남자간호사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게 '가장으로서 이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을까'에요. 그만큼 사회적 인식을 신경 쓴다는 거죠. 간호대 남학생들도 비슷해요. '평생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느냐'를 가장 궁금해합니다."
지난 16년간 스스로에게도 수백 번은 던져봤을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성별을 떠나 간호사라는 직업군 전체를 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의사들은 임상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게 일반적인데 나이 든 간호사는 별로 없잖아요. 그만큼 굉장히 힘든 직업이에요. 이직률도 퇴사율도 높죠. 관리직인 수간호사가 되면 조금 다르지만 임상에 남아있을 경우 나이를 먹고도 응급상황에 손발이 빠르게 따라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되죠.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힘든 건 사실이에요."
워낙 소수다 보니 여자간호사보다 입사나 승진이 유리하지 않느냐는 후배들의 질문에도 "과거라면 몰라도 이젠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답한다. 유리해 보이는 점만 노리고 들어올 세계가 아니란 것이다. "진짜 임상을 할 수 있겠느냐를 생각하라고 조언해요. 육체적·정신적으로 간호사라는 게 쉽지 않거든요. 자신이 없으면 다른 걸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에 와서는 어려운 환자를 봐야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그는 남자간호사라는 말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남의사, 여의사란 단어 없이 모두 의사이듯 간호사도 남녀 구별없이 간호사라고 불렀으면 한다는 것이다. 또 더 나은 대우를 위해서라면 힘들어도 노력하길 바란다고 했다.
"소수이다 보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불만을 앞세우기보다 어렵더라도 지금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게 필요해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남자간호사들이 많아지면 병원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더 기울이겠죠. 불편하고 힘들어도 잘하다 보면 거기에 따른 배려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후배들에게 늘 강조해요."
1995년, 간호 '연구'를 하는 줄 알고 간호대학에 입학했다. 한 학년에 남자라곤 달랑 3명이었지만, 다른 길을 가기엔 두려웠고 막상 해보니 보람도 있었다. "간호사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벌써 16년 차네요. 간호사를 평생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어요. 제 진짜 포부는 임상에서 좋은 간호사가 되는 거예요. 환자들에게는 믿음을 주고 동료들에게는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간호사란 정말 힘든 직업이거든요."
인터뷰 도중 동료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개인사정을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그는 스케줄 조정을 알아봐주겠다고 다정하게 답했다. 그는 본원·강남·보라매의 3개 서울대병원에 근무하는 150명의 수간호사 중 김장언 남자간호사회장과 함께 단 2명뿐인 '남자' 수간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