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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턴'과 의사 '인턴'
영화 '인턴'과 의사 '인턴'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6.01.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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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황건 인하의대 교수 
수정해 투고한 원고가 또 '대폭수정요함-게재보장 못함(major revision-no guarantee of acceptance)'이라는 메일을 받아 마음이 무거운 날이다. 머리도 식힐 겸 가족과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인턴>을 선택했다.

아내가 로버트 드니로의 팬이기도 하고, 10년 전 유학간 아들이 졸업하고 인턴 1년을 마치고 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곧 군복무를 시작하게 되므로 그 전에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영화에서 여 주인공 줄스(앤 해서웨이)는 인터넷 의류 판매업을 창업하고 1년 6개월 만에 220여명의 직원을 거느릴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로 나온다. 반면에 남주인공 벤은 42년간 전화번호부 제작 회사에 종사해 부사장직까지 지내고 은퇴했고, 중학교 교장을 지낸 아내와 사별한 70세 꽃할배이다.

줄스의 회사 '어바웃 더 핏'에서는 사회 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65세 이상 인턴을 몇 명 모집한다. 입사원서로 동영상을 찍어 제출하고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벤은 6주간 인턴사원으로 일하게 된다.

그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에서 크고 작은 일의 중심에 서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의 원숙함은 회사 일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의 개인사에도 큰 도움을 주는 결말로 영화는 끝났다.

성숙하고 사려 깊으며,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여 적절한 조언을 해 주는 벤의 배역을 맞은 로버트 드니로와 나를 비교해 보았다. 나도 십 이년 뒤엔 그의 나이가 될 터인데 그와 같은 것이라고는 키 크기일 뿐.

아들은 만 27세에 의무병으로 가게 됐으며, 제대 후에도 어디서 수련을 받아야 할 지 고민이 많다. 그 아이 앞에 어떤 시련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지? 애비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때로는 실패해 후회스럽고, 때로는 성취해 자랑스러운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일 터인데….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받은 원로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원숙하고도 노련한 연기를 보고 집에 와서는 몇 달 전 그가 뉴욕대학(NYU) '티시(Tisch) 스쿨' 졸업식에서 후학들에게 전한 연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았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엿 됐습니다(You made it, and you're fucked). 화려한 졸업식이 끝나면 여러분 앞엔 '평생 거절당하는 인생'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흔히들 '현실 세계'라고 부르는 영역이지요." "우리는 늘 꿋꿋하고 당당하게 다음(Next)을 외치며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늘 거절당하더라도 주눅들지 말고, 다음, 다음, 또 다음을 외쳐야 합니다."

문득 마태복음 13장 12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마태효과'(Matthew effect)가 생각났다.

과학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서, 유명한 연구자의 원고는 부족하더라도 학술지에 실릴 가능성이 높으나 무명 연구자의 원고는 내용이 아주 좋아야만 겨우 게재되거나, 명성이 없으면 게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론(Merton RK, Science 1968)과 같은 맥락이다.

마태효과에 따르면 로버트 드니로같은 유명배우는 원하기만 하면 어느 영화에나 출연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배우이자 감독인 그조차도 여전히 수없이 '거절당함'을 경험하고 있다는 말에 놀라기도 하고 또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의학학술지편집인 협의회에서 주관한 논문작성 워크숍에서 250명의 후학들에게 나의 경험을 이야기 해 줄 기회가 있었다. 청중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중 게재불가를 경험한 분이 계십니까?" 반수가 넘게 손을 들었다.

"혹시 100번 이상 게재불가 되어보신 적 있는 분은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호기 있게 말했다.

"100번 이상 게재불가 돼봐야 백전노장이 됩니다. 그러면 맷집이 생겨서 어지간한 게재불가 통보에도 가슴이 아프지 않습니다. 다른 학술지에 내면 되니까요."

다시 책상에 앉았다. '대폭수정'을 시작했다. 한 항목씩 소폭으로 고치다 보면 얼마 안가서 다 고쳐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 글은 <J Craniofac Surg> 1월호에 실린 것을 편집인의 허락을 얻어 한글로 번역한 2차 출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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