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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의 '의도된 패배(?)'와 일동의 운명③
녹십자의 '의도된 패배(?)'와 일동의 운명③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15.04.0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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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이봐! 녹십자의 플랜A는 적대적 M&A가 아니야

일동제약은 불리한 전세에서 이번 지분 전쟁에 임하고 있다. 녹십자는 일동제약 지분 29.36%를 확보해 지난해 일동제약 지주회사 설립을 부결시킨 것과 사외이사 선임제안으로만 적지않은 시세차익을 올렸다.

시세차익도 그냥 시세차익이 아니다. 녹십자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일동제약 뿐 아니라 녹십자 주식도 올라가고 있다. 녹십자가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듯하다가 결국 협상으로 주식 매각을 결정하게 되면 도덕적인 비난도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일동제약 지분은 경영권과 묶여 있는 지분이다. 매각한다면 '역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일동제약에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일동제약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녹십자가 향후 있을 협상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녹십자가 파이프라인 강화를 위해 일동제약의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매각을 요구하는 경우의 수다.

일동제약의 대표 일반·전문약 요구한다면?

인수합병과 관련해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는 다국적 제약사를 보면 '회사 대 회사'간의 M&A뿐 아니라 '부서 대 부서', '품목 대 품목'간의 매각·매입이 활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BMS의 당뇨사업부 매각과 노바티스와 GSK의 사업부 맞교환 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1월 BMS의 당뇨사업만을 인수했다.

BMS 직원 30명 정도는 설연휴가 끝나는 대로 아스트라제네카로 출근했다. 사업부 인사로 양사가 동시에 개발했던 DPP-4억제제 '온글라이자(성분명: 삭사글립틴)'와 메트포민 복합제 '콤비글라이즈', SGLT-2억제제 '포시가(성분명: 다파글리플로진)' 등 5개 품목이 아스트라제네카로 넘어갔다.

올해 들어서는 노바티스가 백신사업부를, GSK는 항암제사업부를 노바티스에 보내는 맞교환을 성사했다. GSK는 52억 5000만달러(약 5조 7800억원)에 노바티스의 글로벌 백신사업부를 매입했고, 160억달러(약 17조 6200억원)에 항암제 사업부문을 매각했다.

회사 대 회사가 아닌 부서 대 부서 혹은 개별 품목 매입·매각만을 하는 이유는 M&A에 드는 부담스러운 과정과 비용 등을 최소화하면서 약점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녹십자가 녹십자의 상대적인 약점으로 지적돼 왔던 일반의약품과 몇몇 만성질환 전문의약품, 일부 개발 중인 유망 파이프라인 등을 일동제약으로부터 매입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게 된다. 회사와 회사가 통합하는 번거로운 과정도 거치지 않는다.

이런 빅딜이 성사된다면 녹십자는 적지않은 시세차익에다 역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기고 M&A에 따른 효과까지 '일석삼조'의 이익을 거두게 된다.

물론 다국적 제약사의 협상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이들 제약사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거쳤지만 일동제약은 '차·포' 떼고 장기판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본질적인 전쟁은 이제부터...장기전 가능성도

녹십자와 일동제약의 후속 협상 테이블에 무엇이 올라갈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양측은 서로 속내를 감추고 있고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향후 협상이 있을 것인지조차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워낙 민감한 문제이고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 예측할 수 없다 보니 말조심을 할 수밖에 없다.

녹십자는 일동제약 주총에서 패한(?) 후 언론을 통해 "주주의 뜻을 존중한다. 일동제약의 2대 주주로서 경영 건전성 극대화를 위한 권리 행사에 지속적으로 매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패자의 말이라지만 패배의 씁쓸함은 느낄 수 없고 지속매진하겠다는 뒷말에서는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녹십자가 밝힌 유일한 '패자의 변'을 통해 앞으로 전략을 전망하자면 일단 '닥공(입닥치고 공격)'일 가능성이 크다. 명분은 일동제약의 경영 건전성 극대화다. 녹십자는 2대 주주로서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매번 밀어붙일 것이고 일동제약측은 경영권을 위협받는다고 여길 것으로 예상된다.

일동제약은 상황이 복잡하다. 녹십자와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지만 쉽게 협상카드를 던질 수도 없고 이에 녹십자가 반응할 것이라는 전제도 없다. 녹십자가 먼저 협상을 제안할 가능성도 없다.

내부적으로 어떤 것까지 내줄 수 있고, 어떤 것은 안되는지 논의해야 하는 상황도 고역일 것이다.

일동제약이 할 수 있는 강력한 방어는 녹십자의 행보에 대한 도덕적인 비판 분위기를 키우는 것인데 이것조차 쉽지만은 않다.  녹십자가 후속협상 이후 지분매각을 하고 철수할 수 있는 퇴로를 살려두면서 몰아가야 하기 때문에 힘조절을 해야 한다.

이래저래 지뢰밭이다. 어려운 싸움이 예상된다.

후속 협상은 생각보다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녹십자의 대표적인 M&A 성과로 꼽히는 대신생명 인수건을 보면 녹십자는 대신생명을 인수해 매각하는데 8년을 공들였다.

이번 건은 이익규모 면에서나 양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대신생명 인수건보다 더 큰 건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조심스럽고 전략적인 행보를 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몇번의 공방이 이어지고 일동제약의 협상카드가 가시화되면서 녹십자가 협상테이블에 앉는 순간 적대적 M&A 시도로 보이는 지분 전쟁은 협상전으로 전환될 것이다.  2차 전의 모양새는  '녹십자가 얼마나 더 가져갈 것인가?' 혹은 '일동제약이 얼마나 덜 줄 수 있을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동제약에게는 더욱 치열하고 지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일동제약의 제72차 주주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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